도서관에서 좀 시간 때우기로 재미난 소설을 읽고 싶어 신간 코너에 재미난 소설책은 없나 하고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책, 디자인을 보자니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책인데 것도 다름 아닌 스티븐 킹의 소설이더군요. 그것도 장편소설이 아니라 네 편의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실린 소설집이었는데 일단 황금가지에서 나오는 장르소설들의 두께가 상당한 것이 있어서 이번에 빌려온 『별도 없는 한밤에』의 실린 소설들은 한 편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중편에 가까울 정도로 분량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처음 책을 빌려올 때는 분량도 많겠다 어차피 반납일까지 기일이 상당히 남았으니 좀 여유 있게 읽어야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째 한번 책을 펼치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첫 번째 소설의 중반 분량까지 술술 넘기게 되었다는 것. 결국 이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오늘 하루 만에 소설을 독파하게 되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재밌게 읽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설들이 만족스럽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자면 영화 『미스트』의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서 구입한 단편집인 『스켈레톤 크루』의 몇몇 소설들은 다른 단편집인 『Night Shift』의 각 단편들에 비하면 완성도가 좀 못 미친단 생각도 들었었고요. 그도 그럴 것이 『Night Shift』 같은 경우는 스티븐 킹의 소설 세계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기도 한지라 나름 각별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고이 책장에 모셔두고 가끔 꺼내 읽기도 하는데 하여간 다음에 또 읽게 된다면 이 단편집과 같은 재미를 가진 스티븐 킹의 다른 단편집들을 읽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긴 내용의 장편보다 단편소설들을 선호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하여간 이 소설책이 신간으로 도서관에 들어오면서 나름 소원성취를 한 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책을 읽다 보면 이 단편집의 제목인 ‘별도 없는 한밤에’에 해당되는 소설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책 제목의 의미는 책의 마지막 후기 작가의 글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뒤표지에는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이 선사하는 복수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라는 홍보 문구가 실려 있는데 확실히 네 개의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복수’지만 그 ‘복수’가 행해지기까지의 과정이라거나 주인공들이 주변인들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등의 사연들을 보자면 작가 말마따나 캄캄한 밤을 걸어가는 인간들과 같다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책에 매료되게 한 첫 번째 소설 ‘1922’는 주인공 월프리드 제임스가 1930년도에 한 호텔에서 과거 1922년도에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게 된 충격적인 이야기를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월프리드는 아내 알렛이 장인으로부터 물려받게 된 땅에 농사를 짓고 싶어 하고 알렛은 그 땅을 축산 공장에 거금에 팔아 도시로 이사 가고 싶어 합니다. 땅의 처분을 두고 대립하던 월프리드와 그의 아내는 이혼 이야기까지 꺼내게 되고 분노한 월프리드는 아내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운 뒤 아직 14살인 아들을 끌어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들을 살인에 가담시키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본다면 이 월프리드란 작자가 제정신을 가진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데요. 물론 그의 아내도 술에 취해서 자기 아들더러 좋아하는 애랑은 섹스를 해도 임신은 시키지 말라는 소리를 -나름 옳긴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까지 노골적으로 들먹이는 걸 보면 이 여자도 제대로 된 정신머리라곤 못하겠지만은요. 하여간 자기 아내를 살해하여 우물에 매장하고 또 어머니를 죽이는 것에 가담한 이 부자의 앞날이 절대 평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게 금세 암시됩니다. 얼마 안 가 아들은 좋아하는 이웃의 여자아이 섀넌을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시키고 결혼을 시켜달라 떼를 쓰고 여자애의 아버지는 앞날이 창창한 자기 딸을 임신시켰다며 그들을 원망하면서 어떻게 수습을 할 수 있게 딸을 수녀원에 보냅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개판인 상황에서 월프리드의 아들 헨리는 좋아하는 여자애를 쫓아 수녀원으로 향하며 강도질을 행하고 섀넌을 수도원에서 빼낸 뒤 도피를 시도하면서 또 강도질을 벌이지요.
그 와중에 섀넌은 임신한 상태에서 저항하는 점원의 총에 맞아 죽고 헨리는 그 시체 옆에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월프리드는 아내의 시체를 갉아먹고 살이 오른 쥐 떼의 환영과 아내의 혼령을 보며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또 쥐에게 공격을 받아 왼손을 절단하기에 이릅니다. 거기다 아들의 죽음 이후 자신의 땅에 거부감을 일으키며 떠나려 하지만 이미 땅의 가격은 떨어져 헐값에 팔게 되는 등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지요. 하지만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월프리드는 후에 직장을 옮기고 사서로 취직한 뒤에도 자신을 갉아먹으려 하는 쥐 떼의 환영에 시달리다 온몸이 물어뜯기는 죽음을 맞게 되지요.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떠오른 이야기는 바로 러브크래프트의 ‘벽 속의 쥐’였습니다. 그 소설에서도 저주받은 피를 이은 주인공이 쥐들이 모든 것을 갉아먹는 환상에 시달리다 미쳐버리고 마는데 러브크래프트의 영향력을 본다면 어느 정도 영감은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드는 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인 월프리드의 맛이 간 정신 상태가 초장부터 드러나는지라 막판 끔찍한 죽음이 진짜 유령의 쥐 떼가 벌인 소동인지 아니면 그가 죄책감 때문에 미쳐버려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좀 모호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소설 곳곳에 그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데다 아내의 시신 상태를 스스로 상상하여 겁에 질리는 등 상상력이 풍부할 법한 묘사가 여기저기 있어서요. 그리고 이런 막장 남편의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에 실린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되풀이됩니다. 네 번째 소설인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정말이지 평범하고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여성 다아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인 밥이 실은 주위를 떠들썩하게 하는 살인마 ‘비디’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두려움에 질리는 내용이지요.
하지만 이 ‘행복한 결혼 생활’이 첫 번째 소설 ‘1922’와 다른 점은 여성이 마냥 희생자로 전락하지만도 않는다는 사실인데 주인공 여성인 다아시는 남편이 저지른 짓에 대한 증거를 알고도 상황을 눈치챈 남편의 추궁에 처음엔 모른 척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남편의 살인 고백에 대해 경악을 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음에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다아시는 그가 언젠가 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또한 그가 살해한 피해자들 중엔 아직 어린아이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분노하여 그를 안심시키는 척하면서 계단에서 떠밀어 사고로 위장하여 그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싶을 무렵 남편의 정체를 눈치챈 은퇴한 경관 램지가 나타나 어느 정도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위로를 얻는 것이 소설의 결말인데요.
일단 이 두 소설에선 두 남편의 죄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그들의 죄에는 제재가 행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껄끄러움을 날려버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최후 덕분으로 이런 음침한 속 시원함은 캐리 때를 연상시키는 그런 구석도 있어요. 그런데 스티븐 킹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한때는 피해자였으나 자기 손으로 상황을 구제하는 여성형은 자주 있는 듯한데 좀 비뚤어진 시선으로 본다면 『캐리』 역시 무지막지한 피해를 가지고 온 것은 사실이나 자신을 압박한 환경에 복수를 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응징’이 좀 더 긍정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로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있는데 이 돌로레스나 ‘행복한 결혼 생활’의 다아시와 같이 약한 피해자였다가 응징을 하는 여성 캐릭터로 변화하는 것이 두 번째 소설 ‘빅 드라이버’의 주인공 ‘테스’입니다.
소설가 테스는 지역 도서관에서 강연을 한 뒤 사서가 가르쳐준 지름길을 이용하다 살인마의 덫에 갈려 잔인하게 강간을 당하고 배수관에 버려지지요. 다행히 범인이 그녀를 죽었다고 착각한 덕에 그나마 목숨은 건지는데 테스는 자신이 강간당한 사실을 끔찍해하면서 신고하는 것을 망설입니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면 분명 자신의 책이 나올 때마다 그 사실 또한 기레기들이 어필할 것이라거나 범인을 못 잡을 경우 그놈이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만족해할 것이라는 등 끔찍한 연상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테스를 움직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배수관에 버려진 참혹한 여성들의 시체들로 그 여자들의 원한을 풀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움직일 필요성을 느낀 테스는 소설가로서의 감각과 인터넷 등을 동원하여 강간범에 대한 단서를 쫓습니다. 그리고 그 강간 살인범에게 형제가 있고 바로 자신에게 지름길을 알려준 사서가 그와 공범이며 어머니라는 것도 알아챈 그녀는 복수를 준비하는데요.
여성의 이야기인데다 성폭행이라는 최악의 상황, 그리고 힘도 덩치도 압도하는 남성을 상대로 무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몰입을 하면서 읽는 이마저 긴장에 차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좀 더 순화시키기 위해서인지 응징 방법을 찾는 테스의 심리는 내비게이션 톰과 고양이 프리츠와 가공의 대화를 하면서 소설의 분위기에 비하면 나름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편인데 이런 상상 속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전작인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와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결국 응징은 성공하고 유일한 증인일 여성 뱃시 닐을 만나 사실을 털어놓은 테스는 그녀 역시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하면서 한쪽 눈을 잃었단 것을 알게 되지요. 으레 소설에서든 영화에서든 약자에 해당되는 인물이 나름 머리와 방법을 써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고 악당들을 처치하는 내용은 꽤 전형적이라 하더라도 속 시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테스의 복수 자체는 드러나지 않아도 이 강간범 가족들의 죽음과 함께 살인사건의 실상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라는 암시가 있어 사건이 미궁으로만 빠지지 않으면서 나머지 희생자들의 분도 풀릴 것인지라 더 통쾌한 면이 강한데 여기서 자기 혼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나 여성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겪을 사회적인 문제 등을 지적해주는지라 남성 작가의 소설임에도 상당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피해자인 뱃시 닐의 사연을 통해 드러난 딸의 피해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을 강요하는 어머니나 강간범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사냥감을 알선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마냥 모성애를 숭고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데서도 참신한 느낌을 받았고요. 아예 소설에선 여성들은 같은 여성들 상대로 이런 짓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지적해 주는 부분도 나와 있는데 실제로 미국의 살인사건들 중 여성이 남성에게 협조한 사건도 적지 않다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이름 ‘테스’가 고전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의 주인공의 이름과 같다는 것 때문에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순결을 잃었단 이유로 남자들에게 계속 버림받아 결국 자신을 겁탈한 이를 살해한 테스와 ‘빅 드라이버’의 테스는 이름도 행적도 많이 겹치는 구석이 있거든요. 혹시 의도적인 작명일까요?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은 분량도 내용도 흥미진진하건만 세 번째 가장 짧은 소설인 ‘공정한 거래’는 그 소설의 전개 방향 때문에 가장 작가의 의도가 가장 궁금해지는 내용입니다. 복수라고 하기엔 너무 화풀이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기보단 자신보다 잘 나가는 친구 - 과거 좋아하는 여자를 뺏기긴 했지만 이미 현시점에선 다른 사랑하는 부인도 있어서 불쾌한 기억에 가까울 뿐인 - 에 대한 열등감으로 우연히 마주친 악마 엘비드와 거래하여 암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되 자신의 불운을 미워하는 이이게 옮겨 천수를 누리고 친구는 몰락의 끝을 보게 된다는 실려 있는 소설 중에서 찜찜함으로 따지자면 가히 최강인 내용이었거든요.
소설을 자세히 읽으면 혹시 그전에 잘 나가는 남편 친구 집안에 불운을 옮기는 거래를 주인공보다 먼저 주인공의 부인이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들었지만 확실한 암시는 없으며 결국 주인공은 악마와 거래를 한 대가로 행복을 누리는 결말이 나는 지라 나름 반전을 기대했던 제 입장에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마 친구의 몰락에는 친구가 먼저 절친에게 자신의 불운을 옮기는 거래를 했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와 일종의 자승자박 형태를 예상했건만 절대 그런 것 없이 내용이 전개가 되고 마니까요. 어쩌면 이 소설은 의외로 현실을 고대로 담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흔히 우리 사회에서 ‘소년 출세’는 좋지 않다는 말처럼 젊었을 적 남들보다 잘 나갔던 친구처럼 말년에는 그 운을 다 소진한 것마냥 불행해지는 경우도 실제로 없진 않으니까요. 반면 ‘공정한 거래’라는 제목과 다르게 소설에서 다뤄지는 불공정한 불행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알 수 없다는 것, 악마가 개입한 것 마냥 누군가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에 대비되어 빛날 수 있다는 것을 풍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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