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사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이 책 『그래픽 노블로 읽는 에드가 앨런 포 단편선』을 인터넷 문고에서 발견하고 결국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픽 노블 하면 대개 DC나 마블 쪽의 히어로물이 많고 그쪽을 떠올리기 쉽지만 더 찾아보면 그에 못지않게 외국 작가의 일상물이나 캐릭터 만화 같은 느낌의 작품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또 예전에도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텍스트로 된 단편소설집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학습용으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나름 읽을 만한 만화책을 발견한 기억이 있었거든요. 만화책의 분량은 매우 짧은 편이었지만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도 만화로 그리면 그 분위기를 소설 못지않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일단 글로 된 작품보다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책이 좀 더 읽기 수월하다는 것도 있어 소장할 생각을 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구매하게 된 이 단편선은 기존의 그래픽 노블과는 달리 컬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펜선과 먹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좀 더 고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작가도 이미 고인이고, 작품도 좀 오래전에 나온 것을 알 수 있어서요. 인쇄 기술이 지금만 못 했던 옛날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흑백으로 처리된 작품들이 보기 더 낫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포의 작품들이 대개 칙칙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단 것을 생각한다면 화려한 컬러보다 차라리 흑백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이 더 어울리긴 어울린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포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여덟 편인데 일단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검은 고양이’의 만화 버전을 볼 수 없단 것은 좀 아쉽긴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포의 단편들이 있어서 재밌게 읽긴 했습니다.
실린 단편들은 순서대로 ‘한스 팔의 환상 여행 / 리지아 / 어셔 가의 몰락 / 깡충 개구리 / 적사병 가면 / 페스트 대왕 /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 /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입니다. 일단 포의 소설들 중 상당수가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이라 여기 만화로 실린 작품들도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긴 한데 일단 만화라는 특성상 소설의 상세한 묘사는 어쩔 수 없이 줄어드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과 만화라는 매체가 차이가 있는데 포의 소설들 중 중간중간 작가 철학을 이야기하거나 묘사가 지루할 정도로 긴 경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축약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을 테고요. 그런데 포의 소설들을 읽어본다면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같이 오싹한 내용들 말고도 작가가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내용을 쓰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 실린 작품들 중 ‘한스 팔의 환상 여행’ 혹은 ‘페스트 대왕’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실린 단편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바로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라는 작품이었는데 다른 단편들은 제가 어렴풋이 다른 포의 작품선에서 본 기억이 나는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이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라는 작품은 이 단편선에서 처음 접하는 이야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내용은 다름 아니라 내기를 매우 좋아하는 주인공이 더 이상 자신과 내기하는 사람이 없자 갑작스레 나타난 묘한 인물과 내기를 하게 되는 내용으로 제목을 보거나 전개를 봐도 알 수 있듯 이 인물은 바로 악마라는 것이 암시되며, 주인공은 이 인물과 내기를 하며 즐거워하다가 평소 내기를 못하게 되면 심심해서 하던 말인 ‘악마에게 목이라도 걸겠다’는 말처럼 그 수상쩍은 인물과의 내기에서 져서 목이 잘리게 된다는 섬뜩한 내용입니다.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 전개이긴 합니다만 블랙 코미디처럼 시작했으면서 섬뜩한 반전을 주는 것이 포 특유의 분위기랄지 그런 게 잘 살아있는 단편이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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