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SBS에서 사극 『제중원』이 방영되었을 때 원작소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도서관에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당시 신간으로 들어온 소설을 발견한 뒤 빌려올 수 있었고 소설을 완독한 뒤 네이버 블로그에 드라마와 소설을 비교하는 포스트를 작성하기도 했고요. 일단 소설 1권의 프롤로그는 소설 2권의 에필로그와 이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중원 1권이 대출 중일 때 2권만 먼저 후다닥 살펴본 결과 2권은 만주행을 결심하는 황정으로 마무리되었고 1권은 만주로 떠나는 황정으로 시작되었는데 어째 프롤로그에서는 석란과 황정보다 도양과 황정이 더 애틋하던지... 그리고 소설 속의 소근개-황정은 백정 출신의 눈이 큰 미남 청년이라는 설정이며 배우 박용우씨 캐스팅이 딱 맞아 떨어지는 듯.
소설의 초반부분은 드라마 1-2화의 내용과 줄거리가 유사합니다. 다만 드라마에선 육손이란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소설엔 등장하지 않더군요. 어머니의 늑막염을 치료하기 위해 와타나베의 병원으로 찾아간 소근개-황정과 높은 치료비를 요구하는 와타나베, 결국 밀도살(허가받지 않은 소의 도살)을 감행하는 소근개-황정은 정포교에게 잡혀 어차피 사형당할 것이니 목숨을 살려주겠단 미끼로 성균관 유생이었던 도양의 해부 실험에 반강제로 협력하게 됩니다. 이후 그 비밀을 묻어버리려는 도양과 정포교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황정이란 양반 위장을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다시 정포교에게 붙들려 총에 맞고 물가에 떨어지고 그것을 석란이 발견하고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유역관의 집에 머물던 알렌이 그를 치료하게 되죠.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제가 본 석란의 회상씬에선 석란이 아버지와 함께 불꽃놀이를 준비하다가 물가에 떠밀려온 황정을 발견하게 되는데, 소설 속에선 무의식으로나마 살겠다는 황정이 알렌이라는 양의가 전에 고기를 납품한 유역관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죽을 듯한 걸음으로 유역관의 집으로 향하다가 달구경을 나온 석란의 일행들과 마주쳐서 살아나요. 그리고 정포교가 소설 속에서 황정을 총으로 쏜 뒤 등장하지 않는 반면 드라마에선 제중원이 처음 열렸을 때 황정을 위협하다가 머리가 깨지고 오히려 황정 덕에 목숨을 구한 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잠적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그런 것 없는 나쁜 놈으로 등장합니다.
드라마가 상당한 몰입도로 달렸듯이 소설도 하루만에 독파해버렸는데 이것은 소설이 빨리 읽히는 재미가 있어서였지만 드라마내에서 나왔던 부분적인 사건들이 상당히 축약되어 있거나 아니며 등장하지 않아서 분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듯도 싶습니다. 예컨대 석란과 황정 사이에 미묘한 기류는 드라마 쪽이 훨씬 더 무게가 있다고 봐요. 소설 속에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석란에게 거의 첫눈에 반하는 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반면에 드라마에선 좀 더 많은 사건이 두 사람 사이를 차지하거든요. 드라마에서 갑신정변 때 자객의 칼을 맞은 백도양의 아버지를 시술하는 것은 소설과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이것이 시간이 촉박하니 어떻게든 해보라며 매달리는 엉클의 부추김이 더 컸던 반면에 소설 속에선 황정이 직접 시술하겠다고 하더군요.
황정의 성격은 드라마보다 소설이 좀 더 적극적인 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참고로 친구 이곽의 본명은 소설 상에서 도야지라고 부르는데 드라마에선 배우의 이미지 때문인지 이름을 작대라고 바꾼 거라고 하더군요. 하여간 도양의 부친이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자 정신줄을 놓아버린 황정을 보며 도양은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날뛰는데 그의 시술이 완벽했다고 알렌이 확인시켜줍니다. 처음 해본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는 수술이라고요. 드라마에선 도양이 한술 더 떠 그를 포도청에 옮기겠다고 광에 묶어놓지만 이 사건에 자신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여긴 석란이 황정을 몰래 풀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황정은 도망치면서 세책가에 들려 의학서적을 뒤져서 도양의 부친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확인하고 석란을 찾아간 뒤 자신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거기에 석란이 황정에게 의지를 불어넣고요.
소설 속에선 석란과 황정의 감정이 좀 더 빨리 진행되는데 석란이 황정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일찍 삽입되어 있어요. '소 뷰티풀'이란 단어를 배우며 황정이 석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데, 아직 석란은 황정에게 순수한 사람이라는 호의 정도만 간직한 듯 싶습니다. 알렌의 조수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것도 소설 상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석란의 몫이라는 것은 똑같지만 이 다음에 보여지는 알렌의 행동이 다른데요. 소설에서는 알렌이 황정이 양반이면서도 (물론 가짜지만 알렌은 그것을 모르므로) 정중한 태도를 보여 받아들이는 반면 드라마에선 황정이 알게 모르게 사건사고의 중심에 놓일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간파하고 머뭇거립니다. 결과는 물론 긍정적.
드라마에선 수술이 끝난 민영익을 황정이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드라마에선 민영익이 가끔 얼굴을 드러내며 주인공들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끔 힘을 써주는 역할인데 반해 소설 상에선 굉장히 영민한 인물로 나옵니다. 단순히 중전의 조카라 줄을 잘 탄 사람은 아니라고요. 게다가 소설 상에서 자기 생명의 은인인 알렌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친근한 면모도 가지고 있더군요. 거기다 제중원 설립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걸로 나오는데 서양의학을 도입은 하되, 일본의 손으로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하는 소신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일본을 믿지 않는 면이 강해서 일본에 의존적인 개화파와는 적대적인 인물로 나오며 그 때문에 칼을 맞았고요.
소설 상에선 드라마와 달리 황정의 의생수난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긴 드라마의 황정 수난기를 글로 다시 읽으려면 괴로웠을지도... 그런고로 의생시험은 등장하지 않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도 없습니다. 의생수난기가 없는 덕에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제욱이는 소설 상에 나오지 않고요. 물론 일본 끄나풀인 김돈도 등장하지 않는데 꼴뵈기 싫은 의생들 꼬라지를 안보니 좋긴 좋더군요. 하지만 드라마에서 알게 모르게 황정에게 도움을 주는 화원출신 고장근도 나오지 않는 건 아쉬웠습니다. 또 소설과 달리 드라마에서 민영익은 석란의 남장과 엉클의 비리로 탈락한 황정으로 인해 꼬여가는 제중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로 나오지요.
이후 제중원의 문이 열리면서 대게 이야기는 수월하게 흘러가는데요. 드라마에서 크게 중점을 뒀던 양귀비 루머 사건은 소설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시위와 치질 수술의 성공여부를 두고 황정의 손을 날릴 뻔한 조마조마한 사건 역시 소설에선 나오지 않고요. 보기엔 안타깝지만 이 극적인 장면이 다음편까지 드라마를 보게 붙든 덕이 있었거든요. 소설 속에선 사람들이 처음에 소문 탓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다가 처음 제중원에서 제웅의 눈이라는 인형의 눈을 팔던 꼬마가 진료를 받고 난 뒤 환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수근거리다가 제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사람들이 많아지자 스스로 많이 찾아오게 되지요. 드라마와 같이 소설 속에서도 백내장 할머니가 나오는데 다만 나오는 의미가 좀 다르더군요. 드라마내에선 허물없는 황정의 인성과 의술을 증명하는 존재로 나오는 반면 소설 속에선 경직된 조선의 남녀관을 드러내기 위해 남자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와요.
그리고 이 할머니 덕에 석란에게 부녀과 여의사가 되어야만 하는 당위를 심어주게 되지요. 아직 호돈 의사는 등장하지 않는데 그 덕택에 제왕절개를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혹시 2권에 나올려나요? 제중원 내부의 사람들도 소설과 드라마가 차이가 있는데 일단 황정의 친구 도야지(드라마 상에선 작대)가 문지기 노릇을 하는 건 같습니다. 하지만 작대와 짝을 이루는 구식군인 출신 몽총은 나오지 않더군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도양의 부탁으로 들어와서- 사사건건 황정을 방해만 하던 오주사와 백주사 대신 평범한 주사들이 등장합니다. 여자 환자의 진료가 힘들어서 기생 출신 의녀들을 들이는 것은 같은데 그 중에 낭랑은 보이지가 않습니다.대신 미령의 나이가 열 여섯으로 설정되어 있고 황정의 뒷담을 하는 성질머리를 보입니다.
석란 아씨가 알렌의 통역과 여성환자의 진료를 돕기 위해 샤프롱으로 제중원에 들어오는 것은 같습니다. 소설 상에서나 드라마 상에서나 석란이 굉장히 진취적이고 깨인 여성이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비중으로 따지면 드라마 쪽 석란의 역할이 더 크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소설 상에선 알렌과 도양의 대립씬이나 혈액 실험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양이 멧돼지에 공격받은 부자를 수술하다가 중간에 환자가 과다출혈로 죽는 이야기는 드라마상 이야기였고요. 아마 드라마는 황정과의 대비를 위해 이런 내용을 삽입한 듯 합니다. 더불어 수혈을 위해 혈액실험을 하게 되는 인과관계를 위해서요. 수혈 이야기가 빠지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석란이 왕궁 내에 애련지에 빠져 위험해지는 이야기는 나오진 않아요.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소설 상에선 헤론이 일찍 등장합니다. 백도양이 황정에게 적개심을 품고 헤론을 찾아가 자기를 조수로 써달라며 머리를 자르는 것도 같더군요. 다만 드라마에서 황정과 도양의 갈등이 석란을 사이에 둔 애정의 라이벌이라는 측면도 강한데 비해 소설 상에선 그 부분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크게 애정관계가 진행되진 않거든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도양이 지나가듯 황정에게 털어놓은 비극적인 가족사가 일찍 드러납니다. 도양이 아버지와 절연을 선언하면서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내쫓은 과거를 탓하지요. 제가 볼땐 소설 상의 도양이 드라마 상의 도양보다 좀 더 치졸해보이기도... 소설 1권은 그렇게 헤론의 등장으로 마무리되는데 소설에서 몽총이 등장하지 않으니 헤론의 맹장 수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더불어 알렌은 헤론이 오자마자 바로 퇴장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일단 드라마와 소설의 기본적인 뼈대는 같습니다.작가가 같은 분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뭐... 두권 분량의 내용을 현재 20부 가까이 끌고 오면서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빠지지 않게, 그러면서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면서 그것이 극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 게 대단할 나름입니다. 약간 사족이다 싶은 점도 없지 않지만 첨부된 내용 중에서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잘 묘사하는 모습도 많은 듯 해서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잠깐 언급된 폐병 환자 유생이 나오는데 소근개의 일가가 보살피고 소근개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그 분이 아무래도 지석영 선생 그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2권에서 마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분에 대한 이야기나 소근개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언급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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