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방영 당시 소설 『제중원』을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게 되었고 원작의 내용을 드라마 상황과 비교하며 리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마 귀신 납시오'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소설 2권의 초반부는 천연두의 창궐로 시작되는데요. 드라마에서는 시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의생생활을 시작한 황정이 이런 저런 오해와 공작으로 수난을 겪으면서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어갑니다. 드라마는 헤론이 등장하기 전 마마 창궐과 우두백신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소설에선 이미 1권 종반에 헤론이 등장하기 때문에 사건의 선후관계가 약간씩 다릅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던 몽총이 1권에선 아예 언급이 없다가 2권에서 가마꾼으로 등장하는데 딱히 큰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며 구식군인 출신도 아닙니다.
그리고 마마 창궐로 고생하는 두 남매 삼돌이와 꽃님이는 드라마상에선 몽총이 거둬서 보살피는 거지 아이들 중 하나로 나오는 반면 소설에선 부모를 잃은 고아로 마마를 앓는 꽃님이를 구하기 위해 삼돌이가 동생을 데리고 직접 제중원을 찾아오지요. 하지만 이미 꽃님이는 사경을 헤매는 상태라 제중원 원장인 헤론도 치료를 놓아버립니다. 역시 헤론은 원리원칙주의자로 꽤나 냉정해보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일단 꽃님이를 입원시키자는 황정의 청을 거절하는데 더 나서는 것은 드라마보다 더 치졸한 도양입니다. 환자를 돌려보내라는 명령도 무시하고 황정은 꽃님이 간호에 애쓰고 삼돌이도 마마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고름을 빻아 적신 후 흡입하는 예방책을 쓰는 반면 도양은 우두법을 자기 집 하인들에게 시도하다가 사촌 형 진양에게 들키고 꾸중을 듣지요. 진양이라는 인물은 소설 상에서만 등장하는데 드라마 속 도양의 모습은 이 진양과 소설 속 도양의 모습을 반반 섞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에게 직접 생체실험을 하는 소설 속 도양의 모습은 수혈 실험을 하다 친구 제욱을 잡을 뻔한 드라마 속 도양과 겹치는데 소설 상에서는 수혈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양을 만류하던 진양의 모습은 드라마에선 알렌이 대신하지요. 애련지 사건으로 미묘하게 불이 튀던 두 남자의 감정대립과 석란이 그 사건을 계기로 황정이 백정 신분이라는 것을 눈치채어 심정적으로 동요하던 모습은 드라마만의 이야기더군요. 드라마에선 우두백신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접종하는데 이 우두백신을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던 것은 바로 지석영선생의 방식을 보았던 황정이었지요. 드라마상에선 우두백신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황정의 모습을 보며 석란은 석란대로 도양은 도양대로 황정을 인정해나가지요. 캐릭터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드라마 쪽이 좀 더 흥미진진합니다. 뭐 연기자 분들이 워낙 연기를 잘하시는 덕도 있지만요.
소설 속에선 꽃님이를 멋대로 입원시켜 간호한 것 때문에 황정이 근신을 하게 되고 이 처분을 두고 알렌과 헤론이 대립합니다. 이 위기는 삼돌이의 기도 덕분에 수월하게 풀려가는데 어린아이의 소망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배려였죠. 꽃님이의 죽음은 소설과 드라마가 설정이 같으며 풍장을 치루는 것도 같습니다. 꽃님이의 시신을 매장해주는 것도 황정의 몫. 놀라운 것은 드라마와 달리 기생 출신 의녀 미령이 책 중반도 되기 전에 임무 태만 문제로 쫓겨나는 것이었는데요. 낭랑은 후반에 찬간 보조로 이름만 한번 등장할 뿐이며 드라마 속 낭랑의 이미지를 소설 속에서는 과부출신 박소사가 가지고 있더군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말입니다. 드라마상에선 헤론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알렌이 퇴장한 데 반해 소설 상에선 알렌이 좀 더 오래 등장하면서 황정의 편에 섭니다. 신분 발각 때까지도요.
헤론은 드라마상에선 수혈 사건이 있은 직후 등장하지요. 드라마에서 알렌의 이른 퇴장 직후 유역관을 위기에 빠뜨린 유황 사건은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유역관 자체의 비중도 드라마쪽이 더 크더군요. 드라마에선 유황 사건으로 석란과 황정의 관계가 좀 더 진전이 되지요. 그리고 제중원 내에 의학당이 생기는 것은 중반의 일인데 상당수의 의생들이 탈락하거나 피를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빠져나가는 이야기가 약간이나마 추가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상에선 능력도 인성도 별날 게 없어 뵈는 의생들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서 불만이었는데 소설 속에선 이런 식으로 능력의 차를 보여줘서 만족스럽더군요. 드라마 속 윤제욱과 고장근의 이미지를 가진 의생들이 한번 씩은 언급이 되는데 윤제욱은 백도양의 친구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황정의 신분이 탄로났을 때 노발대발하는 꼬라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고장송이라는 의생은 황정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어 고장근의 모티브가 된 거 같지만은 큰 활약은 없고 화원 출신이 아니더군요. 의생들 역시 큰 비중은 없습니다. 그리고 마당개의 다리 절단 수술로 황정이 자기 신분을 밝히는 것은 드라마와 같습니다. 드라마에선 마마로 죽은 시신을 옮기던 마당개가 못을 밟는 복선이 있지요. 여기서 와타나베의 사진 떡밥은 등장하지 않아요. 일본 측의 제중원 흔들기는 좀 더 후반의 일입니다. 신분이 탄로났을 때 소설 속 도양의 반응은 드라마와 다르게 밉살스럽기까지 하더군요. 황정이 제중원에서 쫓겨난 뒤 호열자가 창궐하여 제중원 의사와 의생들이 치료를 위해 제중원을 빠져나가는 것도 같습니다. 그 빈틈에 큰 환자가 찾아오는데 드라마상에서 병조판서의 고명딸이 환자로 등장하고 소설 상에선 좌상, 즉 좌의정의 딸이 결핵성 늑막염으로 찾아옵니다.
여성의사 호튼이 있었지만 드라마상에선 인력문제로 빠져나간 반면에 소설 속에선 중전의 호출로 자리를 비우게 되지요. 물론 환자 측에서 양의라고 거절한 건 마찬가지예요. 그 위기를 해결한 건 황정이었지만 환자의 자살로 백정 신분임을 숨긴 것과 밀도살범이란 것까지 들통나 처형위기에 몰린 것은 드라마와 소설이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 소설에서 정포교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건 뭐 그냥 나쁜 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황정의 면천이 등장하는데 소설 상에서는 사관의 백내장 수술을, 드라마에선 러시아 공사관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하면서 기회를 얻지요. 다만 수술 부분에서 드라마가 좀 더 황정에게 무게 중심을 실어준 반면 (그렇지만 정작 수술씬은 생략되어 있었다는 게 특징) 소설에선 헤론이 순수한 호의로 자신이 중심이 되어 집도한 수술의 업적을 황정에게 양보하여 그를 살려냅니다. 소설에선 그걸 백도양만 눈치채지요.
하지만 면천이 모든 해결책은 아닙니다. 면천이 되고 난 직후에도 여러가지 시련이 황정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백정 신분에 대한 편견이라든가 시대적 혼란이라든가 헤론의 죽음이라든가... 소설상에선 면천 후 아버지 마당개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진 않습니다만 드라마에선 병조판서의 딸 자살 사건 때문에 원한을 산 나머지 아버지가 맞아죽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병조판서는 끝내 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가장 화가 났던 부분. 또 드라마에선 헤론의 죽음 이후에 도양이 잠적한 것과 달리 소설 상에서 도양은 황정의 면천과 제중원 귀환으로 속이 상한 나머지 일찍 잠적을 해버립니다. 소설 상에선 헤론의 임종을 지키는 것은 황정이며 백도양을 부탁한다는 유언도 직접 듣게 되지요. 드라마상에선 간발의 차로 황정이 임종을 지키지 못한 데다 그 유언을 잘못 이해한 도양이 충격으로 제중원을 떠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어쨌거나 소설이든 드라마든 백도양의 잠적으로 황정이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신분 문제와 백도양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석란에게 거리를 두는 것도요. 드라마에선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된 위험성도 더해지지요. 거기에다가 헤론의 죽음 이후 구심점을 잃은 제중원이 휘청거리고 일본의 술수에 황정이 백정 출신이란 점을 걸고 넘어지는 환자들로 계속 위태롭다가 4대 원장 에비슨이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지요. 드라마상에선 5년을 타임워프하면서 여러 정치적인 사건들과 위기들이 생략이 되었습니다만 소설에선 그간의 설명이 추가되었더군요.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을미사변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시대배경으로 설명이 되는 반면 드라마상에선 나름 중요하게 묘사됩니다. 일본 측 병원인 한성병원이 열리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사가 바로 잠적한 백도양인데 드라마는 백도양이 동경에서 수모를 겪으면서 의술을 터득하는 모습이 나와있지요.
다만 드라마상의 백도양이 수모를 겪으며 황정의 처지를 이해할 지도 모른다는 성장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반면에 소설 속 백도양은 특유의 오만함을 쉽게 버리지 못하며 석란과의 만남 이후 여전히 황정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웁니다. 그런 점 때문에 와타나베는 위암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선뜻 도양을 믿지 못하지요. 와타나베의 눈으로 봐도 제중원 쪽 의사인 황정이 백도양보다 우월한 위치라는 거... 하지만 황정에게 수술을 받는다면 한성병원 입장에서 거슬리는 제중원의 의술이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과가 되므로 와타나베는 망설이게 됩니다.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은 황정을 납치하여 수술을 하게 한 뒤 그를 살해하는 것. 그의 계획대로 황정은 납치되어 와타나베의 수술을 반강제로 하게 되는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원수를 살리는데 망설이지만 끝내 의사로서의 사명을 택하여 수술을 집도하게 됩니다. 도양은 그의 수술을 지켜보면서 황정과 자신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데요.
그건 바로 인술, 사람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였죠. 그걸 깨달은 도양은 수술이 끝나고 살해당할 위기에 놓인 황정을 도망치게 해 줍니다. 그리고 혼란스런 와중에도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고 제중원은 그곳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사람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모두요. 하지만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의 역사가 끝나게 되지요. 한편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인 이근택이 도양의 사촌형 진양이 이끄는 결사대에게 습격을 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도양이 수술로 구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은 도양은 환멸을 느끼고 다시 제중원 - 세브란스 병원으로 돌아오게 되고요. 또 고종의 강제폐위와 의병들의 봉기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던 황정은 의병대장 허위 장군을 문진하고 돌아온 뒤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지요. 마지막에 황정과 에비슨이 주고 받는 편지로 에필로그를 장식합니다.
소설을 읽고나니 드라마 속 백도양을 좀 더 호의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건 드라마 백도양의 캐릭터가 더 복합적인 면모가 잘 살아나서인 듯.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사건을 와타나베의 수술로 장식한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이웃보다 보살피기 힘든 자기 원수를 살려주다니... 어쨌든 이것으로 황정은 의술로든 인술로든 굉장히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된 셈이니까요. 그리고 안타깝지만 드라마와 달리 소설에서 석란과 황정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황정이 석란의 미래를 위해 그 마음을 단념하는 엔딩이에요. 반면 드라마의 석란은 소설보다 비중이 크며 자기 꿈과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고, 결말 또한 황정과의 사랑을 이루며 같이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다는 암시가 나옵니다. 또한 드라마에선 석란의 아버지인 역관 유희서도 비중이 커지고 희생을 하면서 주인공들이 앞으로 가야 할 바를 알리는 등 각색이 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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