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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십이국기 11권 : 제7부 화서의 꿈』 리뷰

by 0I사금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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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십이국기』 마지막권 '화서의 꿈'을 다 읽었습니다. 이번 7부는 뭔가 특별한 큰 내용이 아니라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어보면 그동안 주역으로 혹은 조연으로 활약했던 여러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고 할까요. 생각해보니까 여기 외전으로 실려있는 단편들 중 몇몇 일부는 이미 애니메이션에서 큰 줄기 안에 집어넣었던 게 기억나는데 예를 들자면 라크슌과 요코가 편지(새?)를 주고받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은 큰 이야기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들어가기에 앞서 나왔던 게 기억나고, '승월'의 쇼케이와 겟케이 이야기는 역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이 끝나고 '동의 해신 서의 창해'가 들어가기 전에 언급되었던 게 기억납니다. 애니메이션에선 왠지 쇼케이와 금군 장수인 칸타이 사이에서 뭔가 묘한 기류가 있어 서로 연정으로 발전하려나 싶었지만 소설에서는 딱히 그런 묘사가 나오지 않아 그 장면은 애니 제작진들이 일종의 2차 창작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름 맘에 들던 커플이라 좀 아쉽다고 할까요. 그런데 『십이국기』 소설을 읽다 보면 오히려 남녀의 연애보다는 여성들의 교류에 대해서 더 많이 나오는 느낌인데 요코와 쇼케이, 스즈의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에서 리사이가 걱정하는 인물들 중 주군인 교소우나 타이호인 타이키도 그렇지만 정말 잃을까 봐 두려워한 인물은 여성 추관인 카에이였던 점이라거나... 리사이와 카에이의 관계는 거의 연인 정도의 아련함이 느껴졌을 정도.

어쨌든 본편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이야기 '동영'은 바로 대국 타이키의 이야기입니다. 교소우의 명에 따라 타이키는 자신이 십이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렌린의 고향인 연국에 가게 되는데 십이국 내에서 독특한 왕이 많았던지라 연국의 왕도 꽤나 강한 개성의 소유자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십이국 내에서 왕이 될 자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그 나라의 호적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초반에 나왔었는데 경국에서 처음 케이키가 선택한 여왕도 평범한 민가의 여성이었던 것처럼 연국의 현 왕은 농부 출신이며 왕이 되어서도 과수원을 꾸릴 정도로 본업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데 생각보다 신분은 상관없이 왕기란 게 존재하나 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이란 게 있다면 경동국의 여왕은 평범한 출신이라 자신은 왕의 그릇이 아니라고 한사코 정치에 몸담기를 거부했고 연국 왕은 왕은 자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일단 경동국이 굉장히 혼란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왕이 무시당하는 입장이다 보니 여왕이 환멸을 느낀 결과라고 변명은 가능하지만요. 소설 속 내에 왕기란 것에 굉장히 아리송한데 '도남의 날개'에서 왕의 그릇이라고 일단 말을 한 -본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공왕 슈쇼우나 황폐해도 좋으니 백성과 나라를 원한다던 연왕 쇼류라던가, 역시 자신이 왕이라고 확신을 가진 걸로 보이던 태왕 교소우나 일단 이 셋은 왕으로써의 그릇이 보였고 왕기를 타고났다 해서 이상할 것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경동국 여왕은 자신은 왕의 그릇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했고 자신을 택한 케이키를 처음엔 원망한 데다 오히려 왕이 된 뒤 실책을 되풀이했는데 그가 한 그나마 제대로 된 행위는 케이키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양위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줄 안 것도 왕기에 해당된다는 걸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여왕 못지않게 왕으로 선택되었어도 미쳐버린 왕이나 처음부터 실책을 저지른 왕도 허다한 걸로 보이거든요. 왕기의 기준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진짜 판단하기 어렵고 전편인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에서 요코가 말한 것처럼 하늘도 실수를 한다는 의미인지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이런 왕기에 대한 의문은 이번 단편에서도 계속 제기되어 방국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데 방국의 봉왕은 공포정치를 편 왕이라 민심을 배반하고 결국 처형당하며 오히려 사람들은 주후인 겟케이가 왕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겟케이가 왕으로 선택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애니를 볼 때에도 다음 방국 왕은 겟케이가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승월'의 겟케이와 칸타이의 이야기를 보면 나름 봉왕에게도 왕으로서의 품격은 있었고 겟케이와 밑의 신하들은 봉왕을 누군가가 잡아주길 바랐고 그렇지 못한 자신들이나 오히려 그를 부추긴 왕후에 대한 혐오가 깔려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며 겟케이 같은 경우는 그런 점에 더불어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어 가왕이 되는 것을 망설이는 게 보입니다.

이런 걸 본다면 암군에게도 나름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는 있고 왕으로서의 무언가는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만약 봉왕이 맛이 가지 않았다면 겟케이는 사람들의 기대를 굳이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을까요? 경왕인 나카지마 요코가 여왕 대부터 이어져 온 경국의 혼란과 밑의 신하들의 폭주를 보다 못해 각성한 것과 비슷하게 왕기도 처음부터 있기도 하겠지만 이것도 점차 성장할 수 있거나 시간이 흘러 터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린의 선택이 자꾸 미뤄지는 것이라는 뜻인지... 그렇다면 결국 왕기란 것은 고정적인 것이라 하긴 어렵고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는 결국 환경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 말하는 건지 좀 해석이 여러 갈래로 갈릴 거 같습니다. 심지어의 왕의 그릇이라고 믿어졌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보이는 것이 이번 7부의 제목을 장식하는 '화서의 꿈' 이야기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재국 왕 시쇼우는 표풍의 왕이었고 누구라도 의심할 바 없는 왕의 그릇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지나치게 이상주의에 빠져 현실적인 안목을 갖추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재를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심지어 주위의 사람들도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 했고 - 못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외면한 걸로 보이더군요- 그것이 또 재의 황폐를 가속화시켰는데 막판에 시쇼우가 아버지와 동생마저 죽이고 자신이 왕의 그릇이 아님을 깨달아 양위를 선택하는 결말이 됩니다.

어쩌면 자신이 왕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왕으로 십이국에 등장한 왕 중 두번째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단편 '화서' 이야기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여왕과의 차이점이라면 여왕은 처음부터 자신은 왕의 그릇에 못미친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시쇼우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는 차이점 정도가 있는데 어쨌든 이 둘은 계속 실책을 되풀이했어도 막판에 제대로 된 선택을 하면서 그나마 왕으로써 명예 회복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쇼우의 숙모로 등장한 태부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객관적인 말을 하고 있어 이 사람이 더 왕의 자질이 있어 보인다 느꼈는데 『십이국기』 자료도 찾아보고 이름도 알아보니 바로 다음 재국 왕으로 '바람의 만리 새벽의 하늘'에서 스즈를 도와준 이라는 것을 알겠더군요. 이런 사람이 버젓이 있음에도 선택받은 사람은 시쇼우라는 점이나 겟케이가 더 훌륭함에도 선택받은 왕은 봉왕이었다는 점은 역시 아이러니한데 왕기를 가진 사람이 여럿이라도 환경이나 시기에 따라 적합한 왕을 고른다는 걸까요? 그나저나 다음 방국 왕이 겟케이가 되지 않는다면 하늘은 정말 안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것 같군요.

이번 7부 서비스라고 해야 할지 삽화들이 꽤 맘에 들었습니다. 애니에서도 비중은 적었지만 청순한 미녀 느낌이라 맘에 들었던 사이린. 그런데 실도의 병이 기린에게 얼마나 아픈 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어요.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온 연왕 쇼류와 주국 왕자 리코우 삽화. 리코우는 애니에서 볼 수 없었으니 안타까운 캐릭터라고 할까요. 마지막 단편 '귀산'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물은 이 둘이지만 실질적으론 류국의 이야기가 중점이라고 할지... 류국 왕도 기린인 류우키도 굉장히 미스터리 하다는 점에서 류국 이야기는 좀 많이 궁금점이 생깁니다. 새로 나온 단편 중에 류국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못 보게 되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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