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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리뷰

by 0I사금 2025.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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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발견했을 때 꽤 단순한 이미지의 회색 표지에 옆에 놓인 다른 책들보다 좀 더 있는 두께도 그렇고 좀 어려운 책일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책을 빌려보게 된 경위는 『심리부검』이라는 큰 글자 제목 옆에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라는 부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인데 그 제목을 보고 좀 의아했거든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면 후회하는 심리를 토로하는 대상이 자살자여야 하는데 이미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은 실은 자살 시도를 하다가 미수로 그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록 같은 것이려나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심리부검'이란 다른 게 아니라 사건이나 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때 정확한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처럼 자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혹은 정말 자살이 맞는 건지 사건을 밝히기 위해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나 흔적, 주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더군요. 


이 심리부검 역시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며 책의 첫 단원에 심리부검 연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해놓고 있는데 이것이 뉴욕에서 1934년과 1940년 사이에 일어난 자살 사건들이므로 적어도 미국과 같은 경우에서도 이런 연구가 시작된 것이 몇 십 년 안팎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자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나 이미지라고 할지, 서양이라고 해서 이쪽으로 관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은데 책에서 설명해주는 실제 사건들 중 자살로 위장하거나 오해받은 사건을 제외하고 보면 어떤 사건들은 자살자가 충분히 정신과에서 상담을 하기만 했어도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을 굉장히 문제 있는 것으로 여겨 그로 인한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경우였고 법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거나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어느 정도 원인을 해소할 수 있었던 사례도 없지 않아 있어 안타까움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해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조금의 도움이라도 있었다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심리부검의 또 다른 중요성으로 책에서 알려주는 것은 종종 인용된 사건들 중에 자살이 아닌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들을 밝혀내는 데에 이것이 유용함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살을 미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자살을 매우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 자살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숨기거나 관련되려고 하지 않는 상황도 없지 않다고 보이는데 만약 특정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 살인 사건일 경우에는 그 사건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라고요. 또한 심리부검에 또 다른 이점으로는 자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유족이나 주변 친지들 같은 경우에 강한 트라우마나 죄책감이 남겨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자살자의 유족이나 친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인 경우는 많지 않지만요. 적어도 이들에게 심리부검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면서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적어도 유족들의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것이 심리부검의 또 다른 목적이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나 더 책을 보면서 놀란 점은 생각보다 자살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며 책의 문장을 인용하면 '사람들이 수사 드라마 등을 보고 갖게 되는 선입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처리하는 변사 사건 중 90퍼센트 이상이 자살, 사고사, 돌연사, 병사이고 극히 일부만이 타살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중 상당수는 자살임이 판명이 되는데 다른 범죄 수사 관련 서적에서 사회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고 여겨지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나 착각이며 실제 통계에서는 옛날보다 범죄율이 줄어들고 있고 다만 범죄 신고율이 예전보다 높아졌거나- 예전에는 사람들이 피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수면 위로 떠올랐거나- 혹은 언론에서 사건을 과장하여 다루는 게 많아 그렇게 여겨진다고 지적하며 비판한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또한 심리부검과 그 사례만이 아니라 자살과 자살자들에 대한 편견을 교정해주고 있고 책의 앞뒤 부록으로 자살 위험 체크 리스트들이 실려 있어 책을 읽기 전이나 읽고 난 후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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