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중에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감독한 『피노키오』가 있었습니다. 『호기심의 방』에 이어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두 번째 접하는 셈인데 메이킹 스페셜 영상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려나요. 원작 소설 『피노키오』는 읽은 지가 제법 오래되어 내용이 가물가물하기도 했지만 대강 큰 틀은 기억나는 게 있어 이번에 새로 나온 '피노키오'는 어떤 내용으로 어레인지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 하면 『판의 미로』라던가, 『크림슨 피크』라던가 『퍼시픽 림』 이런 작품들이 취향이었던 지라 과연 저 발랄한 원작을 어떻게 비틀었을까 기대하는 구석도 있었고요.
그도 그럴 것이 피노키오의 비주얼 자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과 다른 지라, 혹시 피노키오 원작에서 따온 잔혹동화 같은 게 아닐까 멋대로 상상했었습니다. 애초에 시대 배경이 전쟁 중인 이탈리아(피노키오의 원작이 탄생한 나라)고, 제페토 영감이 폭격으로 인해 하나뿐인 아들 카를로를 잃는 이야기로 시작하거든요. 오프닝부터 생각지도 못한 비극에다 전쟁이라는 배경 때문에 보다가 마음이 아픈 지경이었고, 숲속의 푸른 요정의 배려로 영혼을 가지게 된 피노키오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이 악마라느니 몰아세울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현실적인 면모를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완주한 지금은 내가 너무 편견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작품에서 흔히 보아올 기묘한 비주얼 - 일종의 크리처에 가까운 -의 존재들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원작의 틀을 지키되, 현대적으로 각색이 들어갔고 동시에 보는 사람 눈물을 짜낼 수 있는 여지도 알차게 들어갔더라고요. 보면 원작의 중요한 플롯을 2차 대전 이탈리아에 맞게 적절하게 바꾸었고 전쟁이라는 시대 속에 제페토와 피노키오 부자가 어떻게 말려들어가는지를 묘사하면서 반전적인 메시지도 같이 부각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피노키오가 멋대로 구는 인형이라고 적대하던 사람들이 인형은 죽지 않으니 병사로 쓸 수 있다며 소년병 캠프로 보내는 내용에선 약간 소름이 돋았을 정도. 더불어 피노키오를 속이고 자기 공연에 써먹으며 돈을 버는 서커스 단장을 통해 과거에는 미성년자의 인권을 지킨다는 개념이 없어서 아이를 속이고 착취하는 일도 번번이 벌어졌겠다 싶은 면모도 보여줬고요. 이 '피노키오'에서는 악당이라고 할 만한 캐릭터가 두 명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피노키오를 속여 멋대로 계약을 한 뒤 그를 착취하는 서커스 단장이고 하나는 전쟁에 나가 희생하는 것이 영광이라며 자기 아들과 피노키오를 소년병으로 내보내려는 시장(파시스트)이 그렇습니다.
마을의 시장은 피노키오가 죽지 않는 나무 인형이니 얼마든지 병사로 써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며, 자기 아들도 파시스트로 키우려고 하는 일종의 전쟁광으로 폭격으로 아들을 잃고 전쟁을 혐오하게 된 제페토 영감과 대비적인 위치에 놓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악당인 서커스 단장은 원작의 캐릭터와 달리 집착이 심한 탐욕가로 등장하는데 당시 총독인 무솔리니가 보는 공연을 피노키오가 멋대로 망쳤다는 이유로 그에게 보복하기 위해 소년병 캠프까지 쫓아오는 지독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 두 캐릭터는 전쟁과 탐욕 두 가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종종 이 작품에서 특정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어떻게 되었는지 미묘한 구석이 남기도 하는데요. 피노키오를 찾으려는 제페토에게 배를 내어준 선장은 거대한 물고기에게 삼켜진 뒤 어떻게 되었는지 묘사되지 않고, 폭격에 휘말려 절벽으로 추락하는 서커스 단장과 달리 소년병 캠프에서 폭격에 휘말린 시장과 시장의 아들 캔들윅은 생사조차 불분명하게 묘사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작중 묘사를 보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에필로그 부분에 후일담으로 이 부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약간 추가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이야기의 화자는 귀뚜라미이자 작가인 세바스티안으로 그는 처음 피노키오를 만든 소나무가 자신의 집이라며 피노키오의 곁을 지키려고 하다가, 나중엔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부여한 푸른 요정과 거래를 한 뒤 피노키오를 착한 길로 이끌려고 애쓰는 인물(곤충?)입니다. 하지만 서커스 단장의 농간으로 피노키오와 헤어지게 되면서 제페토 영감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이더라고요. 같이 올라온 메이킹 영상에서 세바스티안은 좀 오만한 성격이었다가 점차 피노키오에게 감겨든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면서 같이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중 피노키오는 숲속 푸른 요정이 생명을 부여했기 때문에 죽어서 명계로 가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처음엔 피노키오는 이것을 행운처럼 여기는데요. 하지만 이 특성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이용당하고 괴로운 상황에 처하는 데다 영생을 사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비극이 잠재해 있어 작중에서 이것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까 싶었습니다. 피노키오 개인만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저 구도를 어떻게 해결할까 했는데,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규칙을 깨면 영생을 버리게 된다는 명계의 신(푸른 요정의 언니)의 말을 듣고 영생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결말부에서 물에 빠진 제페토를 구하고 목숨이 다한 피노키오를 살리는 것이 바로 저 세바스티안인데, 세바스티안은 푸른 요정이 임무를 다하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을 이용해 피노키오에게 다시 목숨을 부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부여된 목숨이 인간의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었는데요. 메이킹에 따르면 피노키오의 아웃사이더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싶다는 언급도 있었고, '인간성'이란 특징을 반드시 인간의 비주얼로 고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피노키오의 성격과 행동만으로 충분히 인간임이 증명되기 때문이라는 작품의 메시지일 수도 있고요.
결말에서 다시 살아난 피노키오는 아빠인 제페토, 친구인 세바스티안과 서커스에서 동료가 된 원숭이 스파차투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제페토가 죽고, 세바스티안도 수명을 다하고 존재감을 자랑하던 스파차투라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바스티안의 말에 따르면 피노키오 역시 언젠가 '인간 아이'처럼 죽었을 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다시 부여된 목숨은 영생은 아니었던 모양. 비록 이야기가 등장인물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고 하지만 마냥 슬픈 비극은 아니며,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더라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피노키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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