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이 영화 『헌트』가 올라왔을 당시 영화 목록 중에서도 익숙한 제목이 눈에 보였습니다. 하나는 극장에서 보고 온 『한산 : 용의 출현』의 감독 확장판인 『한산 리덕스』였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영화 『헌트』였는데요. 하지만 『한산 : 용의 출현』 때와는 달리 『헌트』는 극장에서 보는 걸 놓쳤던 게 기억나네요. 괜찮은 영화가 나오면 극장에서 제때 봐주어야 한다는 후회가 매년 되풀이되는 느낌. 거기다 첩보물은 생각보다 내 취향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잘 찾아보지 않는 경향도 있었는데 예상을 깨고 최근엔 몇몇 장르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 장르가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일단 보고 나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헌트』의 줄거리는 안기부 쪽에 숨어든 북한 첩자 '동림'을 잡기 위해 서로 대립하던 안기부 해외팀의 박평호 차장과 국내팀의 김정도 차장이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다가 막판에 또 다른 음모를 맞닥뜨리는 내용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굉장히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배우들 실제 친분과는 반대) 심지어 김정도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던 박평호가 과거 의심을 샀을 때 김정도로 인해 손상된 왼손 신경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의 아내에게 언급할 정도로 껄끄럽다는 것을 보여줬을 정도. 어쩌면 이 둘의 대립이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렇게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지켜보는 구도라던가 포스터에서처럼 서로 마주 보며 적대하는 느낌의 연출이 많았는데 거울과 같은 구도를 통해 두 사람은 반대이지만 동시에 비슷한 인물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고 해석되더라고요. 동시에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다른 선택을 하면서 두 사람의 구도는 평행선에 가까웠다는 해석도 들었고요. 저 거울과 같은 연출이 그대로 극의 핵심이었다는 생각. 처음 극의 중심이 약간 더 박평호에게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박평호를 물고 늘어지는 김정도가 악역이라고 오해를 할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정도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며 선악 대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입체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더라고요.
영화의 장르가 첩보물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총격전이라던가, 테러와 같은 폭파씬 혹은 추격전 같은 장면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 장면들이 상당히 몰입도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중간중간 외국 거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은 저거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과연 어떻게 수습했을까 하는 생각도 자꾸 들더라고요. 시대 배경이 80년대 말이기 때문에 인터넷 이런 게 아예 없던 때라 저런 사건들이 새어나가는 것도 어떻게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리고 '동림'에 대해 수색을 해도 나오는 게 없이 의심만 커지는 상황이라 중간에 의심을 사고 끌려온 요원 말대로 '동림은 실체가 없고 너희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팩트가 아닐까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상을 깨고 실제로 '동림'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그 정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밝혀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영화의 가장 반전이자 긴장감이 돌던 부분은 부하인 방주경 앞에서 박평호 차장의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작중에서 김정도는 박평호가 자신과 목적이 같다고 생각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살려두지만 박평호는 김정도의 숨겨진 계획(베드로 사냥)을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지하게 됩니다. 결말에서까지 둘은 거울 구도 그 자체였지만, 마지막에 박평호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김정도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영화에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덕수 역할을 했던 허성태 배우가 김정도 차장의 부하로 나오면서 인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또 『신세계』에서 이정재 배우와 같이 출연했던 황정민 배우는 제트기 몰고 한국으로 귀순하는 리중좌로 등장하며 짧은 비중에도 깊은 인상을 새기고요. 영화 『서울의 봄』과 『모가디슈』에서 등장하여 각각 성격이 다른 역할을 소화한 정만식 배우라던가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중요한 역할로 나왔던 배우들도 등장하는 등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보이던데 찾아보니 우정 출연한 배우들 생각보다 많은 듯하네요. 아무래도 내가 놓친 장면들이 좀 많은 모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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