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보게 된 건 다름 아닌 당시 내린 폭설 때문이었습니다. 폭설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든 상황에서 넷플릭스에서 영화라도 볼까 했는데, 마침 찜해놓은 영화 중에 이런 게 있더라고요. 어디서 좀비 영화라고 듣고 찜해둔 것이긴 한데, 내용이 좀 병맛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거 없이 재생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공포물+좀비물 장르에 병맛 코미디를 섞는 방식은 은근히 흔한 것이라 취향에 잘 맞으면 킬링타임이라도 되겠거니 싶었거든요. 거기다 영화의 분량도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과 달리 1시간 반을 좀 넘는 정도라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았고요.
일단 영화의 오프닝은 폐건축물에서 좀비물을 촬영하는 배우들과 감독, 그리고 분장사와 스태프가 나오며 감독이 연기를 잘 못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나옵니다. 감독의 독선적인 태도와 혹평에 상심한 배우들에게 분장사가 말동무를 해주며 이 폐건축물에서 과거 일본군이 인체실험을 했었다는 등 괴담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잠시 자리를 뜬 스태프가 밖에서 좀비와 맞닥뜨리고는 그를 분장한 배우로 착각하는 소동이 일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요. 그렇게 공격당한 스태프는 좀비가 되어 안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고 진짜 좀비의 출현에 흥분한 감독은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되는데...!
공포 영화 촬영을 하다가 진짜 귀신/괴물/좀비가 나타났다는 설정은 실은 드문 것은 아니고 은근히 클리셰처럼 여러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장르가 그러하듯 끔찍한 묘사와 함께 중간중간 웃기고 과장된 코드를 넣는데 개인적으로 분장사인 나오 씨는 혼자 좀비들을 썰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포스를 자랑하며 후반부에는 좀비가 아니라 나오 씨를 피하여 주인공들이 도망칠 지경이 됩니다. 옥상 위에는 피로 그려진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주술진이 있었고 나오 씨와 좀비가 된 남주인공까지 쓰러뜨린 여주인공이 옥상 위로 올라가면서 엔딩.
어느 정도 내용 전개가 허술한 것은 사실이며 이런 장르를 감안하면 저런 허술함도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 싶었지만 전체적으로 저런 내용이면 좀 심심하다 싶을 지경에 아직 영화의 중반도 안 왔는데 갑자기 크레딧 영상이 올라가는 기이한 장면이 등장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영화 속의 영화이거나 혹은 파운드 푸티지 비슷한 구도거나 또 다른 '진짜 좀비 사태'가 등장하려나 싶을 찰나에 이야기는 한 달 전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건 영화 속에서 퇴장한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이었고요.
실은 중반부에 영화 속 내막이 드러나기 전 좀비가 들이닥쳤는데도 영화를 촬영하겠네 하는 감독이 미친놈이네 욕을 했는데, 감독은 알고 보니 상식인에 감독으로서도 애환이 많은 사람이었던 게 진실. 감독은 꼭 공포물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예능이나 광고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이로 보였는데 알고 보니 진실은 저 영상 자체가 좀비물 채널에서 원테이크로 찍어 시청자들을 잡자던 방송국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더라고요. 이것이 꽤 무리한 요구처럼 묘사됨에도 감독은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감독의 부인은 과거 배우였으나 지금은 은퇴한 인물이고, 딸은 아버지를 따라 감독을 지망한다는 사실이 나오는데, 부인이 바로 영화 속 분장사 역이고 딸은 후반부 직접 연기까지 하게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촬영을 지휘하는 역할이 됩니다. 원래 기획에선 저 영화 속에 출연할 감독 역과 분장사 역에 따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있었는데 둘이 사고를 당해 (어쩌면 일방적인 펑크일 가능성도 있고) 출연이 취소되면서 촬영 현장을 구경 왔던 부인이 분장사 역이 되고, 감독이 직접 감독 역을 맡게 된 것이었어요.
그렇게 영화는 얼레벌레 얼렁뚱땅 촬영되는 것 같으면서도 착실히 원하는 장면을 담아 가며 완성됩니다. 중간에 감독이 사사건건 스토리에 딴지를 걸던 남자 배우에게 화내는 연기를 하면서 '이 영화는 내 작품'이라며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찐으로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란 생각이 들어서 보면서 속 시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안약 없으면 눈물 연기 못하는 여자 배우도 촬영하면서 진짜 눈물을 쏟거나 감독의 부인은 역할에 과몰입하여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등 후반부에 터지는 장면이 많았어요.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영화 촬영에 임하는 인물들, 감독을 비롯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노력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보면서 좀비 사태보다 촬영을 끝까지 해내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더 역동적이었다고 할까. 초반 영화에서 나왔던 장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비하인드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비춰주는데 한 장면 촬영할 때 카메라 밖에선 정말 저러지 않을까 싶었던 부분도 있었어요. 처음엔 흔해빠진 장르물이려니 했는데 끝까지 보니 참신한 영화였고, 포기할 뻔한 장면까지 살려내는 등 그 끝맺음까지 훈훈했던 나름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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