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는 제목을 보면 마치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이 떠오르는데요. 이 책은 집이라는 건축물을 통해 시대와 문화의 흐름을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을 제가 보게 된 이유는 맘먹고 작정해서 보려고 한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맘에 드는 책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와중에 누가 빼놓고 읽다 만 건지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였습니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한때는 배경 그리는 연습을 한다고 그림판으로 선을 죽죽 그어 집 그리기에 몰두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집이나 건축물에 관련된 책이라 흥미가 돋아서 빌려본 책이었습니다.
내용은 크게 4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사회에서 집이란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 집이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구분하게 된 역사, 다양한 사람을 한꺼번에 거주할 수 있게 된 아파트의 숨은 이야기, 백화점이나 종교건축물 등 '목적'이 있는 집들이 사람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 등을 재미있게 풀어줍니다. 집이란 것은 사람에게 안정된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 될 수도 있는데, 동서고금으로 집은 본디 갖는 안락함이라는 측면 때문에 모성-여성과 유사하게 비유되는 거 같더군요. 책에서 여성주의 시점으로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고찰할 수 있던 이유도 여기에 근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에게 필수적인 요소를 꼽으라면, 옷과 먹을 것과 집을 꼽는데 인간이 나고 사는데 집이란 뗄래야 뗄 수 없지요. 실질적으로 입고 먹는 것도 집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가능할 정도니 집이 인간에게 얼마만 한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즐거운 나의 집이란 동요에서도 '집'은 잃어버릴 수 없는 정신적인 고향, 가장 행복한 낙원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우리네 옛 얘기에서도 객사한 귀신이 불쌍한 귀신인 것처럼 집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인 셈입니다. 상당수의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가정의 파탄이나 개인의 붕괴를 묘사할 때 그 집에 놓인 물건과 그 집의 모양이나 집이 갖는 분위기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 책에서 특히 재미나게 읽었던 부분은 아파트가 탄생한 배경이었습니다. 아파트가 우리나라에 처음 설계되었을 때 중상류의 가정만이 머무를 수 있는 고급 건축물이었지만 실제로 아파트의 탄생은 볼품없었습니다. 최초의 아파트라 불릴 수 있는 녀석은 영국 산업혁명 당시에 탄생했는데, 녀석이 탄생한 계기는 다름 아니라 급격한 도시화로 대거 몰려든 빈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어요. 즉 좁은 땅 안에서 여러 빈민들을 채울 수 있도록 한 공간에 건물을 쌓아 올린 셈인데 그런 이유 때문에 초기의 아파트는 매우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의 서구 풍조는 어떤지 모르지만 과거 얼핏 보았던 미국의 시트콤에서 가난한 하류층의 사람들이 한 아파트에 살면서 벌어지는 우스운 이야기들을 다룬 게 있던데 아마 서양도 부자들은 아파트보단 궁전같은 개인 주택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끔 넷상에 올라오는 미국부자들의 집을 보면 확실히 아파트는 아니었으니... 이런 녀석이 시간이 흐른 후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도착했을 땐 그 의미가 사뭇 달라져서 고급건축물이 되어 부자들이 거주하는 건물로 변했습니다. 탱자가 물 건너니 귤이 된 셈. 재미있던 것이 초기의 아파트는 연탄으로 보일러를 가동했다는군요. 사람들이 가스중독을 걱정하자 설계사 측에서 직접 하룻밤 자고 나오는 실험도 했다고요.
이 아파트도 오랜 시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많이 갈라져 부자든 서민이든 누구나 사는 건물로 변모했지만요. 개인적으로 능력만 된다면 그 편리성 때문에 아파트에서 살길 바라지만 책에서 설명해 준 복도식 아파트와 계단식 아파트의 차이를 읽고나니 최근 아파트 단지의 범죄도 생각나서 생각보다 두려워지더군요. 베란다가 복도로 이어지는 복도식 아파트는 얼굴이 보이는 트인 공간이라 익명성에 의한 범죄가 덜 일어나는 대신 계단식 아파트는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범죄가 일어나기 쉽다는 설명이 나오더라고요. 그 외에도 아파트는 추락의 위험성도 많이 존재합니다만, 그래도 아파트가 편리하고 좋은지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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