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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노크하는 악마 :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마 이야기』 리뷰

by 0I사금 2025.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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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R 파익의 『노크하는 악마 :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마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빌려오게 된 책입니다. 별생각 없이 빌려오게 된 책이 내용이 알차거나 충격적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부제목과 같이 이 책은 심리학적 안목으로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악(惡)의 개념을 살피기 위해 역사적으로 벌어진 잔혹한 살상 사건들을 사례로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여섯 단원으로 나누어 첫 번째 단원은 종교와 철학자들이 규정한 악의 관념을 살피고 있는데요. 인간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상 밖의 자연재해를 악마의 농간으로 인식한 것에서부터 고대의 종교와 중세 종교에서 규정하는 악과 철학자들이 규정하는 악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지요. 종교에서는 교리에 어긋나는, 즉 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을 악으로 규정한 반면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지에 따른 행동과 부도덕성을 더 꼬집습니다. 후대에 정신의학이 발달하면서 악은 유전적인 특성으로도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만 확실하게 악은 이런 것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는데 이것은 분야마다 자신들이 규정하는 악의 관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 역시 악으로 규정한 고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자연재해가 악을 징벌하기 위한 신의 벌로 인식한 종교인들의 관념은 엄연히 차이가 크며, 또 이런 종교인들의 관점은 자연재해는 물리적인 재앙에 불과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선호하는 철학자들과 먼 거리에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악이 발생하는 이유도 달라지는 경향이 있으며 문제는 뒷장에 열거될  인간들이 벌이는 악의 처단이나 처벌이 일반적인 '선(善)'과 도덕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경향이 크지요. 두 번째 단원은 바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악의적인 행위들이 다양하게 열거됩니다. 기독교에서 규정한 악의 관념과 모습, 그리고 악과 이단 퇴치라는 명목으로 벌어진 '마녀사냥'이 이 단원의 큰 틀을 이룹니다. 아마 이 단원을 읽게 된다면 진짜 악은 마녀가 아니라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인간을 성고문하고 학살한 종교인들이야말로 악이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마녀사냥이 마녀사냥이라는 호칭이 붙게 된 이유는 희생자의 대다수가 거의 여성들이며, 대개 사회적으로 약자에 처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혹은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노려 누명을 씌운 뒤 재산을 갈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마녀사냥의 배경은 기독교 내부에 자리잡은 금욕주의와 여성혐오라는 심리적인 원인과 과도기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흐름과도 연관이 아주 깊습니다. 또한 집단 히스테리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물론 당시 유럽인들이 전부 맛이 간 것이 아니라서 이 마녀사냥의 비도덕성과 비합리성을 고발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으나 그 힘이 미미했으며 그런 사람들마저 마녀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마녀사냥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고요. 세 번째 단원은 전쟁과 이념과 그리고 독재에 의한 대량살상사건들을 다룹니다. 전단원의 마녀사냥에 이어 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된 학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단원 첫 번째 부분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는데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윤리와 도덕을 중요한 가치로 삼기는 하지만 온화하고 자비로우며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상을 배출하지는 않았다'라고 하는데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구절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학살의 쌍두마차를 달리고 있는 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며 이 두 종교는 극렬하게 대립하면서 포교를 위해 테러와 학살에는 스스럼이 없고 다른 종교를 무조건 사탄으로 규정하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학살대상은 대개 유대인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인 경향이 크며 이 대상은 종교전쟁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현대에 와서 반복됩니다. 이 단원에서 주요깊게 읽은 부분은 정치적 살해, 독재자들의 단면인데 로베스 피에르,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와 같은 역사에 대해 잘 몰라도 이름은 누구나 알아볼 유명한 독재자들이 자행한 다양한 학살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의 공통점은 소수민족과 외국인 학살만 자행한 것이 아니라 권력독점을 위해 자국민을 가차 없이 숙청하고 학살한 점입니다. 그리고 독재자들의 출신성분과 개인적 성향은 각각 다르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 자신의 신앙화와 세뇌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한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독재자들의 이런 점은 종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행한 방법과도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네번째 단원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살인범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대량살인범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찰스 맨슨과 같은 패거리부터,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무차별살인, 사이코패스 서적에 등장할 법한 연쇄살인마들, 그리고 적은 수를 차지하지만 사람들을 경악케 했던 여성살인마 그리고 엽기적인 식인살인마들에 대해 열거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단원은 이런 살인마들의 성향을 살펴보면서 다방면으로 근원적인 원인을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공격가정설, 양심부재설, 살인억제가 타고나게 혹은 후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설, 정신이상설, 두뇌이상설 등 여러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는데요.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든 그들의 잔혹한 행위와 비도덕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불행한 환경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이유는 될 수가 없다고 마무리짓지요.


마지막 단원에서는 앞단원에서 확실히 결론짓지 못한 것에 비해 좀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타고난 폭력과 교육의 부재 말고도 나치의 생체실험을 예로 들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정상적인 사람도 살인이 습관이 되면 감정이 무뎌지고 다른 삶을 비참하게 짓밟는 힘과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 즉, 습관성을 강조합니다. 현대의 자극적인 매체 역시 사람들을 자극적인 사건에 습관이 되게 하면서 감정을 무디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악습에 의한 범죄와 살인은 다양한 나라에서 비슷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판국인데 습관의 무서운 점이 익숙한 것에 대해 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어요. 여기서 언급되지 않지만 이 습관이 권력을 옹호하는 도구로 쓰일 때 벌어지는 잔혹한 행위들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또 심리학적 측면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기 위해 위험한 상황을 직간접으로 경험하여 면역성을 키우려는 인간의 본성적 측면의 영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살인마에 대한 옹호와 모방살인을 저지르는 비극적인 경우가 더러 있고요. 『노크하는 악마』는 다양한 사례들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정확하게 악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구하진 못합니다. 왜냐면 악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노력은 과거에서 지금까지 현재진행 중이며 책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은 그 단면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다만 이 책을 통해 악은 어떤 식으로 사회에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제도나 체제에 의해 그 악이 옹호되는 경향이 많다는 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 속에 등장한 전쟁범죄자나 살인범들 중에선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어요. 아마도 선이라는 명분 아래 악을 옹호하는 모순적인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봅니다. 악도 인간성의 한 단면이라면 그것을 무 자르듯 정확하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자기 내면 안에 숨어있을 악을 제대로 통제하고 바로잡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인간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으며 적절한 교육과 처벌의 필요성은 사회적 책임 역시 크다는 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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