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나스레딘 호자의 우화 모음집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도서관에 들렸을 때 마땅한 책을 찾지 못했던 와중에 눈에 익은 이름이 들어왔는데 예전에 읽은 밋밋한 양장본 책과 달리 삽화가 들어있는 새책이라 빌려오게 되었거든요. 나스레딘 호자는 13세기 터키에서 살았던 현자로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 일화의 대다수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보면 우리네 민담과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것은 전설적인 인물에 붙여진 이야기들을 생각해 내는 사람들의 사고관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하기 때문인 듯.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나스레딘 호자의 일화 중에 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모두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황희 정승 일화와 유사하고 옷차림을 보고 사람들이 대접을 하자 옷에게 음식을 먹게 하는 일화 역시 우리 전설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철학자와 동그라미 그림만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철학자는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했다고 믿고 호자는 과자를 몇조각 먹었다고 여기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동화의 떡보 이야기랑 비슷하고요. 우리네 민담과 비슷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위트가 섞인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유쾌하면서 몇 가지는 한번 읽어보고 잠시 생각하여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외투가 떨어져서 큰 소리가 난 것은 자신이 그 외투 속에 있어서라고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금화를 빌려줬다고 거짓말을 하는 친구를 위해 은화를 빌려준 거라고 증언하면서 어차피 거짓말이니 금화나 은화나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산을 옮길 수 없다면 자기가 산을 향해서 걸어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 혹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고가 일어났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너무하십니다~라고 투정부리면서 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호자의 모습을 보면 왠지 긍정의 심리학을 그대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정말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호자와 같은 인물이 높은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책을 읽으면 호자는 자신을 바보로 여기는 어린 아이들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칠 정도로 쾌활하고 선량하면서,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되 그것이 불쾌하지 않게끔 지적하는데 이것은 호자가 스스로를 바보취급하면서 동시에 바보에게 충고받는 인간들도 바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형식이에요. 즉, 서로 불쾌하지 않게 만들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르는 것을 알게끔 하는 거지요. 요새는 방송이나 인터넷 같은 데서 노골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약점을 마구 지적하고 파헤치면서 보는 사람은 굉장히 불쾌함에도 그것이 재미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은데 이런 사람들은 이 호자의 우화집을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 호자의 고향에선 호자의 일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지 않나 싶은데 예전에 읽은 책과 다른 내용이 이번 책에 상당수 삽입되어 있더군요. 책의 말미에는 호자의 죽음이 실려있는데 이것은 제가 처음 빌려본 책에는 실려 있지 않아 미처 읽지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호자의 죽음 이야기는 죽음도 농담처럼 받아들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그 범상치 않음 때문에 왜 호자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현자가 되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삶에 초탈한 척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죽음 앞에서도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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