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왠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고 싶어져서 찾아보게 된 단편선입니다. 예전에 『베이커가의 살인』이라는 셜록 홈즈 단편집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서 코난 도일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작가들이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고 내용 중에는 재밌는 것도 있지만 취향에 안 맞아 지루한 것도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순수하게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들만 있어서 만족스러웠다고 할까요? 책 자체가 두꺼운 편이 아니라서 실려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실려 있는 건 총 7편의 소설로 「얼룩무늬끈」, 「두 번째 핏자국」, 「보헤미아의 스캔들」, 「빨간 머리 연맹」, 「마지막 사건」, 「빈집의 모험」, 「춤추는 인형」 이 순서. 이중 「얼룩무늬끈」은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처음 접했던 『셜록 홈즈』 단편이었는데, 어릴 적 집에 굴러다니던 아주 낡은 소설집에 이 이야기가 실려있던 게 기억납니다. 내용도 생생하게 기억하는지라 어떤 반전을 기대하면서 읽기는 힘들고 옛 추억을 회상하는 정도로 무난하게 읽었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핏자국」 역시 예전에 읽은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기억날락 말락 하던 소설이었습니다. 사라진 귀중한 편지, 정치적 스캔들이 일어날 법한 정보가 실려있는 편지가 도둑맞고 그것을 찾아내는 이야기인데 이걸 보니 예전에 읽은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라는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이 편지를 숨기고 찾아내는 데 어떤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 단편은 예상 못하는 여성들의 행동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느낌이었어요. 「보헤미아의 스캔들」은 내용이 좀 낯설었는데 개인적으로 홈즈가 굴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던 단편이었습니다. 사건을 다 해결해 놓았는데 사건의 중심에 놓인 여자랑 그 애인이 눈치채고 도망을 가버리거든요. 물론 그들이 도망친 이유는 홈즈가 무서워서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왠지 홈즈가 한방 먹은 것 같은 느낌.
「빨간 머리 연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땅굴 트릭은 만화 같은 데서도 많이 등장하는데 예전에 외국 어디서 진짜 이걸 실행하다가 땅에 갇힐 뻔한 얼빠진 도둑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본 기억이 났습니다. 은행이 숨겨둔 막대한 돈을 노리고 땅굴을 파는 이야기는 당시에 흔했던 건지 아니면 『셜록 홈즈』 시리즈가 그 전형을 만들어놓은 건지 궁금해졌어요. 특이하게 범인이 왕실의 핏줄을 타고난 녀석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이 소설에서 범죄자는 사기꾼과 비슷한 느낌도 나는데, 땅굴을 파기 위해서 건물주인의 시선을 돌리려 다른 돈벌이가 있다고 속이는 부분에서 '살인'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 단편에 등장한 범죄자가 가장 사이코패스다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을 위해 철저히 계획을 짜고, 대담한 행동을 하는 데다 거기에다 경찰들에게 자긴 왕실 출신이니 제대로 대접하라고 거만하게 구는 점도. 사이코패스 특징이 사기꾼기질에 자기 과시적이라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요.
「마지막 사건」은 당시 발표되었을 때 충격과 공포를 몰고왔다는 그 이야기 홈즈의 '죽음'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아마 제가 알기론 작가가 홈즈 소설을 완결 짓기 위해 이 이야기에서 홈즈를 죽이려고 했으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다음 편 「빈집의 모험」에서 홈즈를 부활시키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셜록 홈즈 소설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흑막 모리어티 교수가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지만요. 「춤추는 인형」은 「빨간 머리 연맹」과 함께 맘에 든 소설인데요. 『셜록 홈즈』 소설 역시 남녀의 애정과 관련된 사건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그 구도가 꽤 신파스러우면서도 신파적이지 않아서 좋아합니다. 이 부분은 애정묘사가 좀 적은 편인 탓도 있긴 하겠지만요. 예전에 읽었던 한국의 추리소설 중에서 잘 나가다가 애정 이야기로 빠져서 빌려보다가 화가 난 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셜록 홈즈』 소설은 애정문제가 등장하더라도 결코 그 주제가 추리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좋더라고요. 추리 소설은 어떤 소재를 갖고 오더라도 추리 그 본질을 흩어버려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녀의 애정이 가지고 온 비극을 잘 소화한 이 단편을 좋아합니다.
단편들은 대개 다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그동안 셜록 홈즈에게 가졌던 의문점도 해소가 되었고요. 왓슨은 본업이 의사라지만 대체 홈즈는 어떻게 먹고살까 그게 가장 의문이었는데 단지 취미로 탐정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탐정일도 본업인 셈이더군요. 사례를 받되, 사건이 해결되면 받는데 홈즈의 관심 자체가 사건에 더 치중되어 있어서 사례 부분은 생략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더라고요. 왕실이나 정치적 사건을 해결했을 경우가 보상이 더 크고요. 참고로 홈즈의 형의 이름도 등장하는데 전면에 부각된 적 없지만 홈즈가 왓슨과 함께 가장 의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인물의 이름은 마이크로프트. 자꾸 마이크로소프트가 연상된다고 할까, 제가 아는 홈즈의 가족 구성원은 아버지와 형 정도로 알고 있어요. 아마 홈즈의 가족들도 홈즈 만만찮은 지성일 텐데 이들이 등장하는 단편은 없나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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