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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리뷰

by 0I사금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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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입니다. 이 책을 도서관에 처음 발견했을 때는 양장본이 상당히 너덜거려서 표지가 거의 뜯겨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그건 사람들이 이 책을 엄청 빌려봤다는 증거였겠지요.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곤 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다른 작품들인 『콘트라 베이스』나 『좀머씨 이야기』 같은 책을 보면 이 작가의 특징이 뭔가 말을 엄청 쏟아낸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것이 지루하지 않도록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끔 스피드가 있다는 느낌이에요. 흔히 관념적인 소설들의 단점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건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 베이스』나 『향수』는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페이지를 휙휙 넘기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향수』는 후각에 관해서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천재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기묘한 삶을 살면서 가공할 만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을 살해하여 그 체취를 훔쳐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향수의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고 붙어 있긴 하지만 부제에 해당할 법한 살인 이야기는 책의 후반부에 실려있는 정도고 책의 대부분은 죽음 속에서 겨우 살아난 그르누이가 혹독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향수 도제가 되고 자신의 목적을 찾아가는 줄거리예요. 그 목적이란 게 앞서 말한 가공할 만한 향기의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처음 향수를 읽었을 때 하나의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광기 어린 천재가 그 광기에 버금가는 향수를 만들고 또 그것으로 살해당하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니까 이 책의 주제는 일종의 탐미 내지 허무주의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데 처음 읽을 때 느낀 그 생각은 제가 순전히 책을 겉핥기 했기 때문에 든 생각이고 좀 더 소설 깊이 들어가면 이 책은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 싶더라고요.


일단 주인공의 탄생 부분 부터가 그러한데, 가만히 있었다면 그대로 죽어갔을 그르누이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립니다. 뭐, 자기 존재를 알린 대가로 어머니의 목숨을 처형대로 보내게 되지만요.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존재에 대한 반응에서 안도를 느끼는데 모 심리학 책에서 본 바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이들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일찍 죽을 가능성이 거의 높아진다고도 하더군요. 타인의 반응으로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측면이라는 점이라는 것. 물론 『향수』의 주인공인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혐오스럽고 그에 걸맞은 감정과 정신상태를 가져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것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받지 못합니다. 책 후반에 나오지만 그는 인간들을 증오하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확인받고 싶었다고 나오지요. 물론 이 목표는 수포로 돌아갑니다만...


더더군다나 뭇 인간들을 뛰어넘는 후각을 지닌 그루누이에게 자기만의 향기가 없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극도의 두려움에 질리는데 체취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의 기이한 행동이 사람의 시선을 끌기는 하지만 그건 특이한 행위 자체가 사람의 시선을 끈 것이지 그르누이가 인간들 틈 사이에 섞였다고는 보기 힘들더군요. 그의 혐오스런 모습이나 행동이 사람의 시선을 끌어도 그것이 인간 사회 자체에 받아들여지거나 한 일부라고 여겨져서는 아니며 그르누이는 사회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인간들과 떨어지거나 고립된 존재와 마찬가지였던 셈. 그리고 후반의 그의 심정대로라면 증오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행위도 결국 인간 사회의 일부가 되는 셈인데 그르누이에겐 이것도 허락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만든 향수를 그르누이가 암만 몸에 쳐바른다고 해도 그르누이 자체는 없는 인간인 셈이니까요. 이미 서장에서부터 그르누이는 역사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덧없는 존재였다는 설명으로 시작되지요. 결국 그르누이가 자기 방식대로 자기 존재를 사람들(사회)에게 알리고 자신 역시 그에 맞는 반응을 받고 싶었던 것은 존재(생존)를 위해서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르누이의 기괴한 삶으로 소설이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다른 소설들도 다른 소재와 내용을 택했지만 결국 주제가 이쪽으로 통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관심을 받고 싶다는 공통점은 그르누이처럼 초탈한 천재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더라는 것. 근데 요새는 비뚤어진 방식으로 관심받고 싶다는 사람들 참 많은 듯... 그르누이만은 못하지만 말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서 그르누이와 얽힌 인물들 중 초반에 가볍게 스쳐지나간 사람을 제외하고 그의 생존이나 목적을 위해 긴밀한 관계가 되었던 사람들은 처음 그르누이를 통해 이득을 봤을지라도 그르누이와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르누이의 악마성과 그 운명을 드러내는 극적 장치 같은데 보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도 파멸의 열쇠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게 보이긴 합니다만. 나중에 기회가 되어 영화 『향수』를 볼 수 있었는데 보면서 놀라운 것이 바로 그르누이 처형씬에서 펼쳐진 난교씬이었습니다. 소설에선 딱히 읽기 거북한 장면은 아니고 오히려 어떤 의미로 웃기기까지 한 난장판이었는데 영상에서도 이걸 살려냈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난교씬 자체보단 그런 일을 싹 다 잊어버린 인간들이 더 놀라울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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