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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그로테스크』 리뷰

by 0I사금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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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중 예전에 읽었던 『아임 소리 마마』는 캐릭터의 기괴함이나 작가가 눈여겨보고 중시하는 부분이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세계를 찾아보면 어느 소설이든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점은 다 비슷하던데 개인적으로 『아임 소리 마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느 소설이 먼저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이 『그로테스크』가 『아임 소리 마마』처럼 꿈도 희망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요. 그럼에도 『아임 소리 마마』는 주인공이 워낙 상식을 뛰어넘는 인간인지라 좀 거리를 두면서 읽을 수 있었던 데 반해 『그로테스크』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고 다만 주인공의 동생인 유리코에 한해서만은 꽤나 난해한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유리코는 '괴물처럼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날 때부터 창녀'이지만 '세상을 가지는 방법은 알았다'라고 하는 유리코는 좀 이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왠지 『아임 소리 마마』의 '아이코'를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전에 『아임 소리 마마』를 리뷰하면서 작가가 계급의 문제를 언급한 인터뷰를 인용했었는데 이번에 읽은 그로테스크는 전면에 이 계급의 문제가 언급되고, 이것들이 어떤 식으로 한 여성의 삶을 파괴했는지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여성의 삶에 치중되어 묘사되고는 있으나 이 계급의 문제는 전반적으로 사회에 깔려있는 것이기도 해요.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은 추하고 비루해보이기까지 하는 계급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런 점은 주인공이 회상하는 명문이라는 Q여고의 실상이나 모든 방면에서 노력했으나 그 결과에 배신당할 수밖에 없었던 가즈에의 수기 그리고 살인자 장의 수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소설이지만 왠지 부정을 하지 못하는 정도였고요. 지금까지 읽은 일본소설은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 작가의 책처럼 그것을 생생하게 쓴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일본소설들은 어딘가 낭만적인 면이 강해서 현실 같지 않은 느낌도 나곤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소설을 읽으니 굉장히 놀랍고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책의 주요인물들은 아름다운 혼혈아 '유리코'를 중심으로 엮여 있으나 그 내용의 중심축은 가즈에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책이 말하려고 하는 모든 이야기는 이 가즈에에게 몰려 있다고까지 생각이 들었고요. 주인공은 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든 '주류'에 편입하려는 가즈에를 경멸하고 증오하지만 실상 가즈에의 욕망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고 봐야 하며 다만 가즈에는 그 욕망을 투박하게 드러냈을 뿐입니다. 어떤 의미론 가즈에의 이런 방식이 타협을 모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즈에가 자신의 노력에 배반당하고 끝내 분열 혹은 붕괴에 이르렀던 것을 단순히 불쌍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쌍한 게 아니라 어딘가 공감이 가면서 그렇기 때문에 막판에는 절망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가즈에의 수기가 여성의 외모와 젊음이라는 조건만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사회 구조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Q여고의 생물선생이었던 기지마의 편지나 막판에 주인공을 비난하는 미쓰루의 말은 완곡하지만 가장 정확하게 소설의 핵심을 짚었다고 보입니다. 


주인공은 그런 가즈에의 우직함과 투박함을 냉소하지만 실상 그에게도 강한 지배욕 혹은 주류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소심한 외할아버지와 가즈에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그들이 자신의 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는 게 잘 드러나거든요. 가즈에를 멸시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주시한 것은 가즈에가 결국에 자신의 선 밖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마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혐오한 이유도 사회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대신 가정 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을 가족들에게 과시했던 아버지와 가장 닮은 존재였기 때문은 아닌가 싶네요. 유리코를 증오한 이유는 단순히 비교대상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유리코에게는 자신의 영향력이 닿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한 가지 읽으면서 흥미가 있었던 건 살인마 '장제중'의 존재인데 소설 속에서 길거리 창녀로 전락한 유리코와 가즈에의 살인 혐의를 쓰고 있는 인물입니다. 소설에 실린 인물들 각각의 수기를 보면 살인마 '장'에 대한 정보가 불일치하는 구석이 있어요. 장제중 본인의 수기에선 자신은 빈농의 자식이고 이런저런 고생을 하다가 창녀가 된 여동생과 일본으로 밀항하였고 그 와중에 여동생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몇년 뒤 일본 거리에서 유리코를 만나지만 유리코가 자신과 여동생의 관계를 근친상간이라고 비웃자 분노하여 홧김에 유리코를 살해했다고 고백하지요. 하지만 가즈에의 수기에선 그는 자신이 몰락한 고위 관리의 자식이며 밀항 와중에 여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결국 여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장제중과 여동생의 관계를 근친상간이라고 이른 것은 가즈에였고요. 소소한 내용을 빼고 전반적인 부분은 꽤 일치하는데 아마 장제중은 주인공의 말처럼 엄청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가즈에처럼 분열증을 일으킨 인물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즈에의 수기 후반도 거의 분열상태에서 쓰여나간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가즈에의 수기 쪽이 좀 더 현실성 있다고 여겨지는 게 가즈에는 자신의 정신상태에 관해서는 과장된 서술을 하면서도 주위의 환경에 대해서는 꽤 객관적으로 써나갔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아마 장제중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기차에서 만난 가난하지만 친절한 인텔리 청년인 '동전'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장제중 본인의 의식이 갈라져나간 존재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로테스크』는 사회적인 면으로도 인간심리 쪽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인 듯 싶습니다. 다만 읽고 나면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인 듯해요. 현실을 인정사정없이 그려내면서도 결말에서조차 가차 없거든요. 『그로테스크』에 비하면 적어도 『아임 소리 마마』는 그래도 어느 정도 열린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모성신화에 대해 가차 없는 것도 『아임 소리 마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다만 『아임 소리 마마』처럼 노골적이지 않을 뿐이에요. 또 소설 상에서 유리코는 작문실력이 형편없었다고 나오는데 등장하는 세 가지 수기 중에서 가장 표현력이 없다고 여겨진 것도 유리코의 수기였던지라 작가가 등장인물의 성향을 잘 반영한 듯. 유리코의 아들이자 주인공의 조카의 문어체에 가까운 대사는 뭔가 어색하던데 아버지가 미국인이라서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다거나 일수도 있고 엄마를 닮아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천상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대화체를 넣은 거 같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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