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영화나 뮤지컬로도 많이 각색되어 온 유명한 소설이며 이미 어린 시절 금성출판사의 청소년문고판으로도 재미있게 읽어본 책입니다. 나중에 이 책을 기억하고 다시 빌려보게 되었는데, 청소년 문고판 비전과 비교하면 분량이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다들 알다시피,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위치의 헨리 지킬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선과 악은 서로 싸우면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약을 만들어 하이드라는 자신의 안에 숨겨진 악을 겉으로 구현시킵니다. 자신이 억눌러왔던 욕망과 악의의 화신인 하이드를 반가워했던 지킬은 하이드의 악행이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또 약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격심한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오랜 친구인 어터슨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하지요.
이 소설은 마치 현재 널리 알려진 정신질환인 이중인격을 으스스한 내용으로 실체화한 것과 같은 느낌의 소설이랄까요? 다만 좀 아쉬운 게 하이드라는 악한 인물에 대해 좀 더 묘사가 적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보는 것만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자기와 부딪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짓밟고 선량한 신사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가 저지른 불쾌한 행동과 악의에 대해선 소설이 너무 요약해서 보여주는 느낌이라 개인적인 감상으로 진정한 악의 화신 정도로 와닿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하이드에 반해 지킬 박사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이 소설의 후반이 거의 지킬의 심리로 풀어나가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지킬박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잘생긴 얼굴과 훌륭한 체격을 가지고, 좋은 교육을 받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며 본인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의 존경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결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과 일종의 우월감,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욕망을 거리낌 없이 풀어내고 싶어 하는 야만적인 부분도 간직한 인간으로 나오지요. 하지만 고결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과 본능적인 쾌락과 악의를 맘껏 풀어내고 싶다는 욕망은 상충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거의 분열적인 상태에 이르러 지킬로 하여금 '금기의 약'을 만들고 그것으로 하이드를 이끌어낸 셈이지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도 은근히 지킬박사와 비슷한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받고 찬사를 받고 싶어하면서 폭력적인 일면을 숨겨놓은 작자들이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인간은 어느 쪽도 극단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이 책의 또 재미난 점은 부록으로 실려있는 작가 소개와 당시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삽화 그리고 소설이 처음 나왔을 무렵의 비평가들의 반응을 실어놓았다는 점입니다. 칼뱅주의적인 엄격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 소설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공부를 많이 한 신사지만 자기 집안의 교리적인 분위기에 반항하여 하류계층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을 뿐 아니라 젊은 시절에 방탕한 짓도 많이 한 인간이라고 나오는군요. 아무래도 지킬박사의 모티브는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본인이 아닐까 싶더라는 것.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성공작인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그가 꿈 속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을 아내의 비평에 따라 다시 써낸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의 성공은 작가를 파산상태에서 구제해 줬을 뿐만 아니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정도로 화제작이었던 모양이더군요. 재미난 것은 이 소설이 미국에서 무판권으로 25만 부나 팔리는 바람에 그 엄청난 성공의 결과를 작가가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무판권 해적소설로 이득을 취한 회사들 중에는 디즈니도 있다는 거... 또 부록으로 실려있는 삽화들은 19세기 후반의 영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보면 왠지 『셜록 홈즈』의 배경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소설이나 그림 속의 19세기 영국의 분위기는 묘하게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이건 제가 영국 배경의 소설을 많이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삽화들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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