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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리뷰

by 0I사금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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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2021년 추석 특선으로 OCN에서 방영해 주는 걸 알고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일단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의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쉽게 판단이 가지 않았는데요. 그나마 제목과 포스터 등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여성 배우들이 주역이며, 주인공들이 삼진그룹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라는 것, 그리고 '영어 토익반'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어를 배우는 인물들이라는 점인데 이런 것 때문에 혹시 여성 사원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 영화일까 싶었습니다.

 

포스터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처음 영화를 접하기 전에는 시대 배경에 대해선 판단도 하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 등장하는 소품이나 배경 또한 9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들이더라고요. '영어토익반'이라는 소재도 주인공들이 진급을 위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라는 배경 설명이 등장합니다. 이 설정이 나중에 활용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영어 공부가 중심적인 소재는 아니며, '영어토익반'이라는 설정은 세 명의 주인공을 좀 더 깊게 엮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는 생각.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배우들 중 이자영 역의 고아성 배우는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 윤순경으로 접한 기억이 나더라고요. 복고풍 드라마를 이미 봤기 때문에 이자영의 모습이 친숙했던 느낌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강에서 죽은 물고기 발견하는 장면은 왠지 영화 『괴물』이 떠오르기도?) 정유나 역의 이솜 배우는 드라마 『구해줘2』에서 영선 역으로 등장했던 것도 기억났고요.


시대배경상 아직 핸드폰이 도입되기 전이라 삐삐나 전화, 펙스를 위주로 연락을 한다던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장면이 많았고, 심지어 90년대 당시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었던 차별 등이 빠지지 않고 다뤄지면서 밝은 톤이긴 해도 답답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오프닝 또한 주인공 셋이 커피 비율을 맞춰 타 가거나, 다른 동료 사원이 임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그려지며,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이 힘들다는 점이 언급되는데 처음엔 주인공들이 불합리한 상황을 이기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내용일까 지레짐작했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는 맞는 추측이긴 했지만...

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했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 회사의 페놀 방류 사건과 그와 관련된 음모를 주인공들이 저지하는 내용입니다. 세 주인공은 자신의 회사가 저지른 비리 때문에 애꿎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것에 자신들이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을 깨닫고는 진실을 밝히고 주민들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발로 뛰는 이야기인데요. 세 명의 주인공은 페놀 관련 서류를 조작한 인물이 누구인지 추리도 해보고 추적까지 감행하고 - 이 와중에서 소소한 반전도 드러나고 - 증거물을 찾아내어 기자에게 제보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합니다.


일단 배경이 여러모로 답답한 시대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가 그다지 꿀꿀한 분위기는 아니요, 어느 정도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시킵니다. 특히 주인공 세 사람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이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몰입을 유지하는 편인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맹해 보였던 심보람(배우 박혜수 분) 캐릭터가 알고 보니 수학 천재에 사내에서 키우는 금붕어 람보에게 애착을 가지는 등 귀여운 모습을 보여줘서 인상적이더라고요. 람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중간에 위기 상황이 오기도 하는데 이 장면도 어찌어찌 잘 넘어가더라는 거...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는데, 처음 주인공들이 뭉치게 된 계기였던 회사의 페놀 방류 사건은 외국계 회사의 강제 합병 문제가 언급되면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희석되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이 페놀 방류 사건조차 회사가 강제 합병당하는 발판을 위해 써먹는 도구가 되면서 초반 주제가 좀 무너진 것 같달까요.  막판 강제 합병을 막기 위해 다른 사원들과 협력하여 빌런인 사장과 맞서는 장면의 연출이나 대사는 그동안 영화가 보여준 다른 장면들에 비하면 작위적인 분위기가 강했다는 점도 있었고요.


하지만 영화 자체는 꽤 훈훈하게 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좋았던 것은 성격이 아주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이 협력을 하면서 누구 하나 민폐로 전락하는 모습도 없고, 외부적인 압력에 좌절하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등 여성들끼리의 유대를 잘 보여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 페놀 방류 사건을 세상에 밝히고 회사가 강제 합병 당하는 것을 막는 - 비협조적으로 보였던 회사의 남자 동료들을 포섭하는 방향까지 좋았고요. 특히 억지스러운 러브 라인 같은 게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 주인공들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도 없고 비중이 축소되는 경향이 없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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