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은 집에서 다른 영화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유플러스 영화 목록에서 발견하고 보게 된 된 영화였습니다. 2020년에 개봉한 영화였지만 이때가 코로나 때문에 시끌시끌했고 그래서 극장 자체를 가는 걸 자제하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결국 극장에서 보지는 못하고 한시적으로 무료 서비스되길래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극장의 큰 화면으로 봐야 진면목이 느껴지겠다 싶었던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 염두를 내지 못한 게 아쉬웠을 정도였는데 이런 식으로 극장에서 보면 좋을 영화를 나중에야 접하게 되는 케이스들이 종종 있는 편이에요.
영화는 주인공 스코필드와 그 친구 블레이크가, 독일군을 공격하려는 영국분 부대(데본셔 연대)에게 그것은 독일군의 함정이니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고 그곳까지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만 쓰면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작중에서 그려지는 주인공 앞에 찾아오는 상황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중반 블레이크는 독일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며, 오로지 명령서를 전달하는 임무는 스코필드 혼자서 감당하게 됩니다.
거기다 전쟁터의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고 사망 플래그가 도처에 있기 때문에 스코필드에 이입해서 보는 순간 보는 관객들도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주인공들이 시체가 쌓인 참호를 넘어가는 고요한 장면 또한 앞에서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안겨주었을 정도. 영화 초반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독일군이 막 철수한 참호까지 도달하는 장면이 끊어짐 없이 쭉 이어지고, 다른 인물들의 등장이 적어서 처음에는 저런 식으로 두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에서 블레이크는 추락한 독일 공군 병사를 구해주려다가 오히려 그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블레이크가 왜 적군 병사를 굳이 구해주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가 원래 사제를 지망했던 사람이고, 적군이긴 하지만 산 사람이 불에 타 죽는 꼴을 보자면 트라우마가 남으니 그랬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선행의 대가로 블레이크는 목숨을 잃고 마는데 차라리 편하게 죽게 하자는 스코필드의 주장이 옳았다 싶었을 지경. 그런데 이 블레이크의 형이 주인공들이 도착해야 할 부대에 있었기에 스코필드에게는 원래 임무만이 아니라, 동생인 블레이크의 전사를 그에게 알려야 하는 사명감이 부여되는 절박한 장치였던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영화 마지막 장면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만나 그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이 극 중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블레이크의 죽음 이후, 홀로 남은 스코필드를 발견하고 그를 도와준 다른 부대의 장교였습니다. 이 장교와 부대가 스코필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부대와 스코필드가 같이 가는 장면과 후반 폐허가 된 강 근처에서 피난민인 여성과 아기를 만나는 장면이 그나마 불안했던 연출 가운데 마음이 놓이는 장면이었다고 할까요. 중반 폐허가 된 목장에서 스코필드가 우유를 챙겨가는 장면은 여기서 회수되어 쓰이더라고요.
보면서 놀랐던 것은 스코필드가 명령서를 전달해 주어야 하는 인물인 매켄지 중령을 맡은 배우가 다름 아닌 마블 영화 시리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인물은 그렇다 쳐도 왠지 이 배우만은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거든요. 메켄지 중령은 전령을 전달한 스코필드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하는 말 중에서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전쟁에서 희망이야말로 위험한 것이라는 의미의 대사나 어차피 여기서 중지 명령이 떨어져도 전쟁은 이어질 것이라는 말 등...
영화 내내 스코필드는 부비트랩이 폭발하여 갱도에 묻힐 뻔하거나 독일군의 저격을 받기도 하고, 강에 빠지기도 하는 등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 임무를 완수하긴 합니다만 영화의 엔딩 자체가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전쟁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영화는 끝나니까요. 다만 그래도 엔딩에서 스코필드는 그 고생을 하면서 살아남고 그 와중에 임무를 완수한 것도 용하다 싶을 지경이었고, 그에게 이입하면서 보는 내내 이제 그를 좀 쉬게 해달라고 빌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토록 주인공 입장을 따라가면서 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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