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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리뷰

by 0I사금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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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가 중학교 시절 학교 독서실에서 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책이 뭐였냐고 한다면 중 바로 기류 미사오의 『위험한 세계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류 미사오 책이 애들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호기심 왕성했던 중학교 시절에 상당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었다는 이유 같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철이 든 이후 기류 미사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기류 미사오 책이 한번 읽으면 재미는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게다가 인간의 잔혹사나 기이한 행동에 대해서 원초적인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있었고요. 근래에 읽은 기류 미사오 책은 딱 두권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와 이번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인데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이번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에 비하면 제목에 비해 피비린내가 덜한 책이었어요. 처형대 세계사라는 제목에 비해 인간의 기행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었거든요.


이번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는 초반 부분에 다양한 처형방법과 살인 등이 열거되서 읽다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권의식이란 게 거의 없었던 고대사회의 잔혹사는 그렇다 쳐도 처형과 살인방법의 다양함은 역시 읽을거리는 못 되는 거 같아요. 여자의 유방 잘라내기나 소모양을 한 동상 속에 사람을 집어넣어 불로 쪄 죽이기, 능지처참과 같은 내용들이 거의 주를 이루는데 중국의 처형방법 분량에 삽입된 조그만 사진은 자세히 보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어서 괜히 공들여 봤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나치의 살인과 학살행위는 언급하면서 정작 일본군이 식민지와 전쟁터에서 벌인 학살 행위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기들 치부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의 중반에 넘어서면 잔혹한 이야기보단 인간의 기이한 행적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네요.

 

후반으로 갈수록 잔인함보다는 오히려 제삼자 입장에선 재미나게 회자할 수 있는 인간의 기묘한 행각들이 열거되는데 물론 잔인한 이야기도 포함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워도 이런 기묘하고 괴상한 행동들도 인간을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만큼 드러나는 특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후반 내용 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부족인 카리우나족의 전쟁방법과 대문호인 괴테의 어머니에 얽힌 일화였습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카리우나 족은 누군가에게 모욕을 받거나 싸워야 할 일이 생겼을 경우 칼이나 창을 들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호화찬란한 음식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 상대방에게 보내어 자신들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는데 그러면 싸움이 붙은 상대편 역시 자신들의 식량으로 호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상대에게 보내고 결국 누가 더 많이 음식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진다고요.

 

굉장히 독특한 전쟁방법이지만 현대의 살육전에 비하면 훨씬 더 현명해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음식을 많이 만드는 거야 고달프긴 하겠지만 사람 목숨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낫고, 결국 이기든 지든 사람들이 먹고 마실 음식은 많이 남게 되니까요. 마치 하나의 싸움을 축제로 승화시킨 느낌이 나더군요. 그리고 괴테의 어머니의 일화를 꺼내면 당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시대상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공포정치가 도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로 보내진 뒤에야 공포정치가 종식됩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사람들에게 남아 단두대모양을 딴 미니어처가 프랑스 아이들 장난감으로 유행하게 되는데 1793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 와중에도 국경을 넘어 아이들에게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이 장난감은 인형은 물론 새와 쥐같은 동물을 처형하는 놀이도구가 되는데 괴테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어린 아들을 위해 단두대 장난감을 사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 편지를 받고 괴테의 어머니는 답장을 보내며 불같이 화를 내는데 어떻게 살인과 유혈을 장난처럼 여기는 이런 장난감을 아이에게 사달라고 부탁하냐며 될 수 있다면 모든 단두대 장난감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불태우고 싶다고 쓰지요. 덧붙여진 일화로 그는 자신의 아들이 가난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고 자신의 며느리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고 하는데 역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그 부모부터가 남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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