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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쿵푸허슬』 리뷰

by 0I사금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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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영화 『쿵푸허슬』을 본 숫자를 세어보자면 너무 많이 본 지라 계산하기 민망할 정도인 듯한데 어째 볼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보게 되더군요. 하지만 다시 볼수록 영화는 의외로 꿀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찌질하고 궁상맞은 주인공들의 행색은 단순 개그적 설정으로 보기만도 그렇고 1940년대라는 미묘한 시기가 배경이다 보니, 주인공의 루저 행색도 그냥 주인공이 바보 같은 인간이라 그렇다고 보기는 그랬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웃고 넘어간 장면들이었는데 말이죠. 주인공이 루저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내용이야 흔한 거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주인공이 사탕가게를 열고 히로인과 재회하는 씬은 나름 감동적이었어요. 어찌 보면 정석대로의 결말 같기도 하지만 초반의 한심한 행색에 비하면 정신적으로 성장을 하고 그런 가게를 갖는 것도 대단한 발전이라는 생각. 

이 영화에서 상대역인 히로인의 비중은 미미하지만 의외로 영향력은 큰 편인데 일단 주인공과의 인연도 있고 이 영화에서 남주나 여주나 둘 다 계층이 비슷하여 신분 상승 욕망이 없어 보인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보통 영웅물 형태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존재감이 얄팍한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히로인은 비현실적으로 남성을 구원하는 성녀나 무력한 포로 같은 역할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주인공에게 각성의 계기를 준 것을 보면 전자에 가깝지 않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성녀에 해당하려면 귀한 신분에 설교를 해야 할 성싶은데 일단 여기서 히로인은 말을 못 하는 노점상이라는 설정. 거기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이 맘을 바로 잡는 것은 히로인과의 재회 포함 여러 가지 계기를 겪은 후에야 가능했으니 말이죠. 거기다 둘 다 어린 시절에 괴롭힘을 받던 동질감이라는 게 있어서 왕따들의 성장기 같기도 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영화상에선 주인공들의 저런 행색 말고도 군데 군데서 암울함이 비치곤 하는데 도끼파의 사주를 받은 맹인 암살자들에 의해 돼지촌 숨은 고수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반적인 색채에 묻혀서 그렇지 상당히 놀랄 장면이었습니다. 여러 유파의 고수들이 정체를 숨기고 가난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도 뭔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같은 것을 암시해주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만 영화가 자기 장르를 확실히 알고 있어서 그 비극성에 매몰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비극적인 사건이 한낮 웃음거리로 전락하지도 않는데 영화에서 이런 균형을 정말 잘 맞추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비극의 균형을 잘못 맞추는 작품도 허다한 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본 점은 이 영화에서 남발되는 각종 만화적인 효과인데, 영화의 톤이 밝은 편이라 과장된 표현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단순 영화 장르가 코미디니까 이런 게 어울린다가 아니라 이런 효과 역시 제때 배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영화들 중 나름 실험정신이랍시고 만화적 효과를 남발했다가 도리어 어색함만 남기는 경우들도 있던데, 이런 효과들을 실사 배경과 인물과 괴리되지 않도록 만든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영화 흐름상 클라이맥스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후반 화운사신과의 결전보다 맹인암살자들과 돼지촌 주인부부와의 결투 씬이었습니다. 또 다른 고수의 등장이라는 일종의 반전은 물론이거니와 그때 쓰인 효과들이 가장 볼만했다는 생각.

개인적으로 돼지촌 바깥주인의 태극권이 인상적이더군요.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화운사신과 고수 부부의 싸움에 끼어든 대가로 처맞은 주인공이 그 와중에도 나무쪼가리로 반격을 가하던 씬입니다. 그것 때문에 주인공이 또 엄청 처맞긴 하지만요.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피로 사탕 그리던 씬보다 먼저 주인공의 성장여부를 알려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맥이 뚫렸다 해도 어떻게 별 가르침도 없이 무공을 깨쳤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초반에 주인공이 동전 몇 푼에 샀던 무예서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에 얻어터진 뒤로 영웅 되는 것을 그만두었다더니 의외로 허투루 읽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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