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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초가 되는 사건은 '정여립의 난'으로 '정여립의 난'은 예전에 친구의 과제를 도우면서 덩달아 조사해 본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정여립의 난'은 당파싸움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 모 다큐멘터리에서 그 당파싸움을 부추겨 정적을 제거한 선조가 가장 흑막이라고 추측하는 설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이순신 장군 이야기도 보면 선조라면 능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황처사(배우 황정민 분)와 이몽학(배우 차승원 분)의 대립 중간에 이 선조(배우 김창완 분)와 동인과 서인들의 밀고 당기기가 존재하는데 이 장면이 너무 노골적이면서 개그 같아서 그들의 한심한 꼴에도 폭소가 일더군요. 극장 안에 사람들도 그 장면들에서 다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행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들인데 영화에선 정말 노골적으로 웃기게 묘사하는지라 여기에서 왕과 양반들의 품위고 뭐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과정을 요약하면 "전쟁 발발[사실 확정] → 한쪽이 전쟁 난다고 주장→저쪽에 맞춰주기 싫음→전쟁 안 난다고 주장→전쟁 안 난다고 자기들 멋대로 결정→정부는 무방비 하지만 민심은 이미 혼란→임진왜란 발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국가적 위기 앞에서 내부분열 일삼는 당시 조선의 모습은 영화적 허용으로 아무리 유쾌하게 그려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서인들은 동인들 제거에 이용하기 위해 정여립에게 역모 누명을 씌워 그들을 몰살시키고 동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사리기 위해 정여립 구명에 등을 돌리게 되는데요. 정여립이란 인물은 뭔가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느껴졌는데 어딘가 아나키스트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던 건 맞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일수록 조선시대 같은 경우 정 맞기 일쑤였겠고요. 다만 그 죽음-정여립의 자살-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황처사는 이몽학을 물고 늘어지고 이몽학은 복수를 한답시고 대동계 일원들을 이끌어 정여립 몰살을 주도한 한신균 일가를 제삿날 당일에 습격하여 남자란 남자는 모조리 죽여 없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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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신균의 서자인 견자(배우 백성현 분)는 자신을 멸시한 일가의 사람들이 죽는 꼴을 지켜보게 됩니다. (단 이복형은 툇마루 아래 숨어서 살아남음) 따지고 보면 견자의 결말도 비극이지만 일단 여기서 살아남은 뒤 이몽학에게 원한을 품는데 자기를 멸시해도 핏줄은 핏줄이고 아버지는 아버지란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견자의 아버지란 인물의 행동이 좀 특이했던 것이 비중은 크지 않지만 압박에 의해 살아가는 느낌의 남자 같더군요. 이몽학의 칼에 찔린 견자를 황처사가 구하고 꿈도 없이 자신을 소모하며 살아가던 견자는 이몽학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황처사를 스승으로 삼는데 황처사는 정말이지 혼신을 다하여 견자를 가르치고 그 와중에 견자는 이몽학의 연인이었던 백지(배우 한지혜 분)를 만나 나름 연민 혹은 동질감 내지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게 돼요. 아마 견자의 엄마가 기생이라서 그랬던 듯...
이몽학은 이몽학대로 대동계를 이끌면서 거대한 계획을 꾸미고 황처사는 그것을 눈치챕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일보 직전에 이몽학은 자기를 따라가겠다면 백지도 외면하고, 이몽학은 왜병에게 몰살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도 외면한 채 한양으로 진격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뭐.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만... 선조는 임진왜란이 터지자마자 한양을 떠버리고 이몽학이 이끄는 대동계는 너무나 허무하게 궁에 도달하게 되거든요. 결국 이몽학을 저지하려 했던 황처사는 이몽학의 칼에 죽고, 황처사의 보복을 위해 이몽학을 쫓아온 견자는 원하던 대로 이몽학을 죽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정으로 이긴 거라기보단 허망함과 허탈감에 빠져버린 이몽학이 정신줄을 놓으면서 틈이 생겼기에 견자가 운 좋게 이긴 거 같더라고요.
이몽학은 자신을 만나러 견자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온 백지의 품에서 죽고요. 이몽학을 따라온 대동계는 그래도 얻은 궁을 사수하겠다고 왜병의 조총에 맞서다가 몰살당하고, 마지막으로 견자와 백지도 왜병에 의해 죽임 당하게 됩니다. 경쾌함과 무거움을 잘 버무린 초중반에 비해 마지막 황처사의 죽음과 그 복수를 위한 견자와 이몽학의 대결구도는 약간 식상한 느낌이라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결말의 비극은 충격적이었던 편.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가려는 친구를 붙들고 끝까지 봤는데 왠지 마지막 크레딧 장면은 감독의 전작 『왕의 남자』의 엔딩을 연상케 하는 느낌도 많이 났습니다. 아마 저승이라고 연상되는 곳에서 등장인물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함께 휘영청한 달을 향해 견자가 몸을 날려 칼을 휘두르는 장면으로 끝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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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의 제목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인데 영화의 경쾌함과는 반대로 전 왠지 비극적인 쪽으로 영화를 해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왜냐면 등장인물들의 꿈꾸던 것과는 반대로 모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결말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란 제목은 한국만화사를 다룬 책에서 언급된 동명의 고전만화를 본 기억이 있고, 실제로 영화의 원작이 그것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튼 영화의 제목은 '구름을 벗어난 달'이라는 뭔가 희망적인 의미, 어둠을 밝히는 모습처럼 연상이 됩니다만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한 달은 낮달입니다. 구름을 벗어나더라도 눈부신 하늘에선 눈에 잘 띄지 않는 달이죠. 이런 낮달은 구름을 벗어나더라도 햇빛에 가려져 버리기 일쑤이듯이 뭔가 목적지향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도 결국 더 큰 흐름에 묻히고 가려져버립니다.
그 흐름이 시대적인 흐름이든 뭐든요. 달을 보고 싶다던 황처사는 맹인이었고 그것이 선척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그 소망을 이룰 순 없었어요. 정여립을 배신하면서 대동계를 차지하고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이몽학은 값지게 어좌를 차지하고 싶었지만 얻은 건 원래 주인이 버리고 간 자리였고, 이몽학을 가슴에 품었듯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싶었던 백지는 결국 이몽학에게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견자 역시 꿈도 목적도 없이 살아오다가 이몽학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그를 쫓지만 그를 죽여도 남는 것은 없었고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지요. 이몽학을 쫓아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들도 허탈감 속에서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고요.
그리고 초반에 죽은 정여립도 있을 리 만무했던 대동(大同)이란 꿈을 꾸다가 희생당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없을지도 모르는 것을 그리다가 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 허무함을 잘라버리기 위해 견자가 저승세상에서 달을 향해 칼을 날린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쩌면 영화가 이렇게 마냥 허무함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가 봤을 땐 이 영화는 꿈을 꾸다가 그 꿈으로 죽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이더군요. 『왕의 남자』와 비슷한 연출임에도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왕의 남자』는 멸시받아도 천대받아도 그래도 그것이 그들의 삶이라 행복해 보였던 이야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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