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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모파상 단편선 : 두 친구』 리뷰

by 0I사금 2025.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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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보게 된 책은 바로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의 단편집입니다. 모파상 소설은 읽고 나면 좀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게 많은데, 현재 소장하고 있는 서적인 『박제된 손』과 같은 단편집이 특히 그러합니다. 알기론 모파상이 정신질환을 일으켜 그것으로 고통받다가 죽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제된 손』과 같은 경우는 모파상의 분열증을 책 속에 옮겨놓은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소설도 있었고요. 일단 『박제된 손』 같은 경우엔 환상소설로 분류되는 내용들이 더 많은 탓도 있지만요. 하지만 이번에 제가 빌려온 책인 『모파상 단편선 : 두 친구』는 꽤나 대중적인 모파상의 소설들 제목의 「두 친구」나 「목걸이」, 모파상의 출세작이라는 「비곗덩어리」 등 유명한 소설들이 실려있어요. 총 14가지의 단편으로 역자의 글에 의하면 비관주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모파상의 전체 작품들 중에서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작품들을 골랐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읽어보면 미묘하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소설들이 태반입니다.

첫 번째 단편 「시몽의 아빠」는 오래전 금성출판사 청소년 문고본으로 접한 적이 있는 모파상의 단편 소설입니다. 모파상의 소설들 중에는 묘하게도 사생아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이 많이 보이는 작품들이 더러 있는데 시몽의 아빠가 그렇습니다. 미혼모인 어머니와 살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시몽은 필립 레미라는 대장장이를 만나 그에게 아버지가 되어주길 부탁합니다. 소설은 모파상 단편 중에서도 드물게 해피엔딩이 아닐런가 싶은데요. 주목할 점은 시골과 아이들에 대한 환상을 한 꺼풀 벗겨내어 아이들의 갖는 교활함과 미혼모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압박 등을 제대로 고찰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결말은 긍정적인 편이에요. 근데 시몽이 사생아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몇 세기를 지나더라도 왕따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

두번째 단편 「비곗덩어리」는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소설입니다. 보불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프러시아(독일)군에게 함락당한 도시를 바탕으로 보이는 인간들의 추한 모습이라고 할까요? 마차에 합승한 각양각층의 인물들(상인, 귀족, 수녀 등)은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매춘부를 경멸하면서도 그녀가 호의를 베풀어 나누어주는 음식을 받아먹습니다. 그나마 그것으로 그들의 어색한 분위기가 흩어질 무렵, 그들이 탄 마차가 프러시아 군에게 붙들리고 프러시아 군 장교는 비곗덩어리에게 동침하길 요구합니다. 비곗덩어리는 그것을 거부하지만 상황이 지체된 나머지 사람들은 그녀에게 프러시아 장교와 자도록 압박을 주지요. 결국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긴 비곗덩어리는 굴욕적으로 프러시아 장교를 받아들이고 마차에서 혼자 우는 것으로 결말지어집니다. 소설이 갖는 인간의 위선과 이기주의에 대한 풍자나 비판의 관점을 떠나서 다 읽으면 울컥해지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번째 단편 「피크닉」은 한 가족이 센강으로 피크닉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내용은 센강 부근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와 우연히 만난 청춘남녀의 불같은 사랑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불꽃같은 사랑은 잠시 뿐으로 다시 두 남녀가 만났을 때 여자는 다른 약혼자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는 불운한 결말입니다. 네 번째 단편 「침대」는 오래된 옷을 손에 넣은 화자가 옷 속에 숨겨둔 한 여인의 편지를 보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편지의 주인은 침대 위에서 죽어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썼는데 침대로 비유한 인간의 삶이라고 할만한 소설이었어요. 내용은 제법 짧은 편입니다.

다섯번째 단편 「전원에서」는 과거 금성출판사버전에선 「어느 시골에서 생긴 일」로 접한 소설이었어요. 비슷하게 가난한 두 부부가 이웃하여 살고 있고 어느 부르주아 부부가 나타나 두 집을 찾아가 아이를 하나 입양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튀바시 부부는 아들을 주는 것을 단연코 거절하지만 발랭 부부는 연금을 매달 타는 조건으로 아들을 하나 보내버리지요. 이 일로 두 이웃의 사이는 매우 나빠졌지만 몇 년 후 훌륭하게 성장한 발랭네 아들이 부모를 찾아오자, 힘들게 살아가던 튀바시 부부의 아들은 자신을 입양 보내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며 집을 떠납니다. 세상사의 답답한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자식을 입양 보낸 부부는 그 돈으로 잘 살게 되고 입양된 아들은 좋은 집에서 교육받으며 잘 성장했지만 오히려 부모로서의 애정에 충실했던 집안은 풍비박산 나는 현실. 읽으면서 가장 괴로운 단편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단편 「두 친구」는 제목의 그 소설로 막판에 숨 막히는 결말 때문에 충격적이라고 할까요? 역시 보불 전쟁을 배경으로 낚시가 유일한 취미인 두 소시민의 우정과 죽음이 내용입니다. 낚시를 나온 두 사람은 프러시아 군에게 붙들려 간첩으로 오인받아 (혹은 전쟁 동안 공격적이 된 프러시아 군이 애꿎은 두 사람을 홧김에 살해한 걸 수도 있고) 함께 사살당하지요. 작가의 반전주의적인 시선이 많이 묻어 나오는 소설입니다. 일곱 번째 단편 「고해성사」는 약혼자를 갑자기 잃고 수절하게 된 언니와 그 언니를 위해 자신도 수절하며 곁을 지키던 어린 여동생의 이야기로 오랜 시간이 지나 여동생이 먼저 임종을 맞으며 충격적인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남자에 대한 독점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동생도 섬뜩하지만, 그 사실을 모두 알게 된 뒤 그래도 그런 동생을 용서하는 언니의 모습이 감동적이더군요.

여덟 번째 단편 「목걸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굉장히 유명한 소설일 겁니다. 전 유치원 때 선생님이 이 소설의 내용을 구연동화 식으로 보여준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하는데요. 인간의 허영심이 가지고 올 수 있는 파멸이 주제인 셈인데, 어쩌면 여기 여자주인공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현재에도 있을 법하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읽으면서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이 다 끝난 후 막판 옮긴이 해설에 보면, 허영심을 던지고 10년 동안 빚을 다 갚은 여성의 끈질김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에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홉 번째 단편 「머리털」은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건 네크로필리아 초기 증상 아닐는지... 모파상 소설 중에서 당대 실제 있었던 인물을 모티브로 한 사건이라고 하더군요. 소설이 좀 더 완화된 표현이고요. 열 번째 단편 「유산」은 한 부부가 친구의 죽음을 맞아 그가 남긴 유산을 받으러 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유언장에는 남편이 아닌 부인의 앞으로 유산이 남겨져 있는데 이 때문에 남편은 부인이 죽은 자와 정부 사이가 아닐까 추궁하지요. 소설은 다만 그런 추측만을 남길 뿐 확실하게 결말을 짓지는 않습니다. 당대에는 재산을 물려받을 때 여성은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고 하는데 남편은 유산을 반씩 나눠갖기로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짓습니다. 당대 여성들의 부당한 처지와 사람들의 위선을 한꺼번에 꼰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말은 정말 미묘합니다.

열한 번째 단편 「집 팝니다」는 한 남자가 우연히 매물로 나온 집에 들어가 그 집 안주인으로 여겨진 여성의 사연에 대해 알게 되는 내용입니다. 「피크닉」처럼 주변 사물에 대한 묘사가 더 주가 되는 소설인데, 알지도 못하는 여성의 사진과 이야기만을 듣고도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길 기대하는 화자가 좀 황당하기도 하더군요. 집을 판다는 제목의 그것은 원래 집주인의 사랑이 깨졌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듯. 열두 번째 단편 「산장」은 설원이 넓게 펼쳐진 알프스산의 산장지기가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입니다. 환상과 공포를 오고 가는 소설이라고 할까요. 산장지기 중 한 사람인 가스파르 노인은 산에서 실종되고, 그를 찾지 못한 청년 울리히는 동료를 찾지 못한 죄책감과 혼자 남았다는 공포심 때문에 산장 안에서 절망하며 미쳐갑니다. 그가 겪는 환청이나 착각은 어떤 의미에선 유령과도 같은 느낌이 나서 여기 실린 소설 중에서 이 소설은 공포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모파상의 정신질환 암시일지도...

열세 번째 단편 「구멍」은  읽으면 모파상 소설 중에 물가와 관련된 소설이 많은 거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물가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다룬 소설도 있는 반면에 물가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다룬 소설도 있고요. 이 단편은 일종의 블랙 유머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낚시터의 고정 자리를 외지인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불만스러워하던 부부가 결국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한 부부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와중에 상대방 부부 중 남편이 물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다른 남편은 자기 아내가 상대편 여성에게 맞는 걸 막다가 그것을 못 보고 내버려 두지요. 결국 상대 쪽 남성은 익사하지만 정상이 참작되어서 살아남은 남편은 무죄가 됩니다. 현실에도 있을 법한 사건이라는 걸 생각하면 좀 오싹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익살스럽습니다.

마지막 단편 「안락사용 안락의자」는 제목부터 찜찜한데 화자가 신문에서 자살자들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기사를 보고 그들의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옹호하면서 길가는 내내 안락한 자살을 돕는 단체를 상상하게 되지요. 그가 상상에서 깨어났을 무렵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는데, 그는 강에서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떠나는 중이라고 대답합니다. 책 뒷부분의 작가 연보를 보면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모파상도 자살을 시도한 전적이 있다고 나오는데 어쩌면 이 소설은 모파상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와 바람이 들어간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결코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위나 배경을 설명함에 따라 그들이 사회에 치이거나 압박을 견디다 못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지요.

이렇게 해서 모파상 단편 소설을 읽을 수 있었는데 확실히 모파상의 소설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읽기에는 좀 꿀꿀한 내용이 많은 편입니다. 이 것은 모파상 특유의 사실주의적 성향 탓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절망적인 느낌은 생각보다 강하게 들지는 않습니다. 모파상이 인간들의 이기적인 면모나 어두운 부분, 뜻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그린다고 해도 그것인 인간에 대한 냉소보다는 연민에 가깝다는 생각이에요. 주워듣기로는 모파상은 이 세상에 대해 '어둡다'라고 평했다고 하지만 그 작품은 단순히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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