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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오! 당신들의 나라』 리뷰

by 0I사금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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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는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책이 발간되었을 시점 미국의 돌아가는 세태를 다방면으로 꼬집어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니다. 표지의 그것처럼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이 되어가는 세태를 전쟁/정치/소비/음식/주거/인종/노동/산업/종교 다양한 주제별로 나누어 지적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다양한 주제를 나눈 덕택에 긍정주의 신화의 허점을 지적하며 한 가지 주제로 밀어붙인 『긍정의 배신』에 비하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주제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느라 한 챕터의 이야기가 짤막한 칼럼들을 모아두었다는 느낌도 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거기에다 미국의 실태를 지적하는 글이라 모든 문제를 현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이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냥 흘려들을 것이 아닙니다. 1% 독식자 계층의 사치에 가까운 삶을 위해 나머지 계층에게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익을 빼앗아오고 있음에도 그것을 교묘하게 가려서, 빈곤/질병/범죄의 문제를 개인의 생활방식의 문제로 돌리는 기만책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지적하고 있는 점은 시스템을 고도로 복잡하게 만들어 여러 부분에서 수익의 일부를 떼어가게 만들면서도 그 편의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돌아오게는 힘들게 한다는 거지요.


이 부분을 지적하는 글을 읽었을 때 바로 생각난 것이 존 스타인벡의 걸작인 『분노의 포도』의 서장 부분이었는데요.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는 은행에 의해 토지를 독점당해 쫓겨난 농민들이 하소연을 하기 위해 혹은 책임을 묻기 위해 관리자들을 찾아가면 그 관리자들은 각각 조금 더 높은 다른 기관을 들어서 자신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내려온 맡은 임무를 다 할 뿐이라는 말로 농민들을 기만한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가는 주체는 있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집을 수 없게끔 만들어놓은 현실을 그려냈다는 점이지요. 거기에다 플러스로 새로 도입된 기계들이 원래 농민들의 소유였을 땅에다 철심을 박아대고 땅을 헤집어대는 모습을, 마치 대지를 강간하는 것처럼 묘사해 놓아서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의 암담함을 배로 부풀리게 만들고요.


즉, 미국의 대다수 사람들이 겪는 현실은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그려낸 당대 농민들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 저서의 주제가 다양한 미국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빈곤층 '워킹푸어' 쪽으로 좀 더 치우쳤다면 이런 현실을 그려내는 방법이 더 또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오! 당신들의 나라』에서도 이 워킹푸어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른 심각한 주제들도 많아서 좀 묻히는 감이 있는 것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로운 개념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는데 계급화가 심해질수록 '신분주의(rankism)'라는 이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한 몇몇 나라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나라들은 국민들에게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주고 평등을 강조하지만 빈부격차와 계급화의 발달로 인해 평등이념은 무색해지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특권으로 삼아 추태를 부리는 인간들이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런 추태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울타리가 있느냐 하면 책의 결론은 '없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 같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다른 점은 용서받아도 된다는 흔한 관념이나 현재의 상황은 오로지 개인의 무능 탓이라는 사고방식은 이런 행위를 용납하게 만들게 되고, 결국 평범한 사람도 운 좋게 지위를 얻게 되면 마찬가지로 추태를 부릴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고요. 그리고 책에서 '수치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오랜 격언과 같이 실업에 대해 경멸을 보내는 현상에 대해-설령 그것이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도- 언급하고 있는데 실업의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개인에게 수치를 주어 어떤 식으로 일자리를 얻게 하는 방식은 결국 일당은 변변찮으나 몸은 힘든 일을 하게 하여 사람들의 건강을 깎아먹게 만들거나 극단적일 경우 자살이나 범죄로까지 몰고 갈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의료혜택이 적은 나라라는 점이 있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춘은 아름답다느니 그래도 노력하면 된다느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길이 열린다느니와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책이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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