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프라임』은 유명한 방송이라 검색을 해보면 아직도 관련 자료가 쏟아지기도 하는데, 저도 몇 번 캡처본으로 내용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정작 방송으로 접한 적은 없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요.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 『이야기의 힘!』은 아무래도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니까 나름 필요하다고 여겨서 빌려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더 눈이 가는 것은 책 표지에 'EBS 다큐프라임'이라는 글자였는데 한번 방송으로 나온 것들을 활자화한 책들은 일반적인 교양서적이나 학문류 서적과는 다르게 내용 이해가 편한 측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책의 내용은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이해가 쉽도록 내용을 전개해 가더군요.
책의 내용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시작하여 서사를 전개해 갈 때 필요한 갈등과정이나 캐릭터의 형성 측면이나,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성공한 사례나 광고 홍보 자료들을 제법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흔히 제가 생각해 왔던 것들이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더군요. 예를 들자면 주인공의 설정은 매력 있으면서 동시에 공감이 가도록 해야 하며 -이는 주인공이 인간들의 보편적 혹은 공통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내용을 이끌어가는 것은 극 내의 갈등이고-설령 잔잔한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서사에는 갈등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려면 주인공의 적대자/반대편의 캐릭터 내용의 한축을 크게 담당하므로 역시 매력적이면서 주인공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며 극의 개연성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므로 주인공의 성격변화는 응당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주인공이 적대자를 이기고 승리하는 결말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납득이 가게끔 해야 한다는 점 같은 것들. 그리고 현실에서 매력적이지 않고 혐오스러운 캐릭터라도 창작자가 주인공으로 잘만 활용한다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예를 들면 소설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같은 인물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리고 소위 떡밥회수라고 부르는 복선과 암시를 처음 내놓고 나중에 그것을 밝히는 일을 여기서 씨 뿌리기와 거둬들이기라고 칭하는데 이것이 효과를 보려면 너무 노골적이어도 안되고 너무 생뚱맞은 느낌이 들어서도 안된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결말을 빨리 짓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방법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한 적이 있으며, 지양해야 할 방법이라는 것도요. 이야기를 복잡하게 끌고 가다가 갑자기 나온 대단한 존재가 모조리 수습해 버리면 그동안의 과정은 의미가 없어지므로 그냥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이가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작품들이 있는데, 뭐 굳이 제목을 거론하지 않겠지만 모 만화는 주인공의 빠른 성장이나 캐릭터의 변화가 납득이 안 가게 그려진다거나, 막장 드라마 같은데서는 복선 같은 게 충분히 깔려있지도 않았으면서 출생의 비밀이 뜬금없이 등장한다거나,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처럼 기대하게 만들면서 정작 결말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들 등등... 사람들이 비슷하게 욕하는 작품들은 기본적인 틀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지 보는 이들이 야박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이 책 하나로만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참고는 되지 않을런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지적하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 모든 사람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며 그런 욕망을 이용해 사소한 것에서 나름 사연을 집어넣는다거나 서사를 넣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갈등구조가 살아있는 서사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경우는 반응이 좋았지만 그저 사물과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지루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이건 좀 다른 방향에서 다뤄야 될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아이들이 교과서보다 동화책이나 학습만화 쪽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실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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