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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가시』 리뷰

by 0I사금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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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가시』는 개봉 전 당시 예고편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에 드문 장르의 소재인지라 흥미가 갔었습니다. 아마 같은 해 개봉했던 영화 중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라던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던가 외화가 꽤나 흥행했었기 때문에 약간 묻히는 감도 있었나 싶었는데 영화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제법 흥행한 편이더라고요. 저도 예고편만 봤을 때도 재밌을 내용이라는 생각도 했고 흥미가 생겨서 후에 찾아본 영화 리뷰들을 봤을 때 생각보다 호평이 많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한 번쯤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잊어버린 영화였는데요. 나중에 OCN에서 해준다는 것을 알고 TV앞을 사수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평을 해보자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의문의 발병(연가시 기생충의 등장), 가족의 위기와 그들을 구하려는 주인공인 아버지,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방향에서 뛰는 주역들이 고생 끝에 이 모든 사태가 돈을 노린 회사의 음모라는 것이 밝혀지는 등 소재만을 보면 많이 반복되어 왔던 이야기 같지만 당시 넷상에서 연가시가 기이할 정도로 인기 있던 유행소재였다는 점과 우리나라에서 드문 장르를 결합하여 잘 활용했다는 점이나 초여름 물놀이 관광을 앞둔 시즌에 제법 적절한 이야기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과 가상의 사건을 영화상에서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정말 저런 사건이 발생한다면 현실에서 저럴 법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몰입을 유도하여 당시 흥행과 호평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는 주인공인 재혁(배우 김명민 분) 놀이공원에 놀러나온 가족의 시종을 자처하여 무슨 아버지가 저런 취급을 받는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면서 시작합니다. 보면서 암만 가족이라지만 아버지를 저리 대우하나 하는 불만이 솟았는데 알고 봤더니 그들은 재혁의 친가족이 아니라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재혁이 거래를 위해 거래처의 병원 원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들의 가족이 놀러 나가는데 시중을 들어주고 있었다는 것. 재혁의 이미지는 한국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느낌인데 작중에서 부인인 경순과 자식들이 연가시에 감염되어 격리수용소에 떨어져 연락할 때마다 버럭 하면서 걱정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서 짠하더군요.


영화상의 주인공인 재혁은 화학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엘리트였는데 그 고생을 하는 이유가 동생 재필(작중 형사)의 꼬드김에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 재필은 형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형을 신경써주고 있었고 재혁은 아닌 척하면서도 가족한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물가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죽은 이들이 강원도 물가에 휴가를 갔다는 점을 알아낸 재필은 거의 억지로 조사를 떠납니다. 사람들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끝에 변종 연가시라는 게 밝혀지고 조사를 계속하던 재필은 강원도 산골의 이장으로부터 몇 년 전 수상쩍은 인간들이 물가에 개를 버리고 간 것을 목격했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마저 죽었지만 성수기가 가까워지자 입막음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정부는 이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감염된 환자들을 격리하는데, 변종 연가시가 원인이라는 것을 언론을 통해 밝히고 환자들을 수용하면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묘사가 영화의 압권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물가로 가도록 숙주를 조종하는 연가시의 특성대로, 사람들이 미친듯이 물가를 향해 달려드는데 단순 개천이나 강뿐이 아니라 근처의 분수대는 물론 횟집의 수족관에까지 달려들지요. 특히 치료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 병원에선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선보입니다. 물가에 닿은 사람들은 연가시가 빠져나가면서 급격한 탈수현상으로 죽음에 이르고 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 측에선 환자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하지만 후반 쯤 되면 연가시가 생존을 위한 발악으로 인간의 몸 밖으로 배출되는 등 생각보다 끔찍한 모습들이 나오는데 연가시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잠깐 비치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이 장면에선 너무 징그러워서 깜짝 놀랐달까요. 하천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수거하거나 구충제를 잘못 먹고 죽은 사람들의 모습, 혹은 감염되었을지도 모를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가 곳곳에 붙여있거나 정부의 행동에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여러 방면으로 보여주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와중에 조아제약의 윈다졸이라는 구충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이미 단종된 제품이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이를 비싼 값에 매매하는 브로커들이 생기는 등 혼란상이 야기됩니다. 여기서 답답한 것이 주인공인 재혁이 영업부 동료를 통해서 겨우 얻은 윈다졸 알약을 감염된 아기를 돌보던 엄마를 외면하지 못하고 나눠주다가 사람들에게 들켜서 그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약이 가루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솔직히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지만 자기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야 했나는 생각에서였어요. 주인공을 이기적이라고 욕할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적어도 영화 속에서 묘사된 상황 정도라면 말이죠.


정부측에서는 조아제약을 상대로 합성법을 밝히라고 강요하지만 오히려 제약회사 측은 정부에서 거액에 인수하라는 뜻을 밝히고, 한편 재혁 주위에서도 연가시 사건에 대한 의문- 동료직원이 연가시가 전염성인 것도 아닌데 급하게 약이 동난 것을 보고 누군가가 사재기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밉니다. 다른 곳에서 수상쩍은 것을 알아채고 사건을 조사해 나가던 동생 재필이 이 사건으로 급박하게 뛰어오른 조아제약의 주식투자정보를 캐내다가 주식을 사들인 이들 중 하나가 조아제약 회사원이라는 것을 알아내 그를 찾아가 족친다음 전말을 캐묻게 되는데요. 

그 결과는 놀라운 것으로 연가시를 통해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하던 연구팀의 회사가 매각되어 팀이 해체되자 관련 연구원들이 앙갚음 겸 돈을 벌 목적으로 변종연가시를 퍼뜨리고 그 약을 팔고 주식도 매매할 생각이었던 것. 결국 모든 것은 돈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남은 약이 있는 창고마저 불타버리자 절망하던 재혁은 원료가 같으면 굳이 윈다졸이 아니더라도 효능이 같다는 것을 깨닫고 차를 몰고 조아제약까지 돌진,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문을 열고 원료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원료를 가지고 다른 제약회사들을 통해 새로운 약을 만들어 시중에 유포하고 모든 사건의 전말이 까발려져 사건의 관련자는 체포되지요.


이 와중에도 긴장감있는 묘사가 따라오는데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의 체내에서 연가시가 빠져나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경순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버티다 화재경보기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미 다른 환자들도 한계에 다다라 수용소 내의 경보 버튼을 누르려하고 경순은 놀라울 정도의 의지로 그것을 참아내며 다른 환자들을 막아내지요. 밖의 창가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게 된 재필은 깜짝 놀라 수도를 차단하여 환자들의 몰살을 막아냅니다. 그리고 약이 만들어져 수용소의 사람들도 살아나게 되고 재혁과 가족들은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연가시 변종이 있을 수 있다는 떡밥이 남겨지면서 약간은 섬뜩하게 영화가 마무리되지요. 그런데 저 정도 사태가 벌어지면 한국은 진작에 입국금지국가가 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영화는 앞서 밝혔듯 패닉 상태에 빠진 군중들의 모습과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된 사회의 모습등을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기자들의 호연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연가시 때문에 어머니가 패닉에 빠졌을 때 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처량할 지경. 그리고 놀라운 건 작중 주연캐릭터 중에서 발목을 잡는 민폐 캐릭터가 없다는 점인데, 경순과 자식들은 애초에 환자라서 그 축에 넣을 수 없는 데다가 경순은 오히려 다른 환자들이 패닉에 빠졌을 때 필살의 의지로 막아서는 등 극 중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재혁도 동정심 때문에 일을 한번 그르친 것을 빼면 상당히 작중에서 구르며 활약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재혁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폐를 끼치거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요. 동생인 재필도 주식으로 형에게 폐를 끼쳤다는 언급만 있을 뿐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데 크게 공헌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는 재필의 애인도 틈틈이 연가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창고에 불이 났을 때 갇힌 형제를 구하러 차로 돌진하는 등 능동적인 여성상을 선보이지요. 작중에서 제대로 사회적인 민폐를 끼치는 것은 모든 일의 흑막이었던 조아제약 일원들이었고 이들은 어찌보면 갈등을 유발해야 하는 빌런이고 내용의 큰 축이라서 딱히 그 행보를 단순 캐릭터 민폐라고 해석하기는 어렵거든요. 어쨌든 주인공이 민폐를 부려야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해서 그런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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