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전권이 5권으로 다섯 권이 한꺼번에 들어왔었는데 대충 1권을 훑어보니 발레리노를 꿈꾸던 할아버지가 발레를 시작한다는 좀 색다른 내용이라 흥미가 생겨서 일단 1권부터 빌려왔습니다. 1권을 빌려온 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연재 플랫폼이 다음 웹툰이었고 이미 완결-유료화 수순을 거쳤더군요. '나빌레라'라는 제목은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승무'라는 시의 한 구절인데 처음 제목을 보면서 저 구절의 원뜻이 뭐였더라 하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아무래도 문제지 같은 데서나 시험에서도 '나빌레라'가 무슨 뜻인가 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엔 '나풀거리다'였나 싶다가 나중에야 '나비-일레라(정확한지는 확신이 안 서지만)' 대강 이런 뜻이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아무래도 제목을 유명한 시구에서 차용한 것은 사람들이 딱 들으면 알 수 있는 시의 구절이라는 점과 만화의 소재인 발레,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비에 비유한 것, 또는 주인공인 심덕출 할아버지와 발레리노 지망생인 이채록의 현재 상황과 그들의 꿈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1권이 담고 있는 내용은 만약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 보는 것이 뒤에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심덕출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우연히 발레를 접하고 동경을 키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반쯤은 단념했던 것으로 애초에 할아버지의 유년과 젊은 시절은 전쟁을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먹고살기에 바빴던 데다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관념이 강했으므로 애초에 시대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현재에도 심덕출 할아버지는 발레를 하고 싶다는 뜻을 보이지 마자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결국 포기한다는 것의 고통 정도야 모를 사람이 없고, 시도도 못하고 평생 미련을 남기기보단 시도라도 해 보는 것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까요.
반면 또 다른 주인공 이채록이 원하지 않는 운동을 하면서 자질이 없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등 괴롭게 지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발레를 했었고, 자신 역시 발레에 소질이 있고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큼 되지 않아 괴로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만화 속에서 이 만화를 읽는 저와 상황이 제일 비슷해 보여서 공감이 가고 안쓰러워 보이는 캐릭터가 바로 이채록이었다고 할까요.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호락호락할리는 없고, 그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요.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도 그것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1은 심덕출 할아버지처럼 여건이 되지 않아서, 2는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원하는 만큼의 보상과 결과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대리만족에 불과하더라도 이 만화에서는 왠지 심덕출 할아버지와 이채록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심덕출 할아버지의 꿈을 반대하기도 하고 또 지지하기도 하는데 반대한다고 해서 그 주변 사람의 심리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특히 큰 아들 같은 경우) 그래도 이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못된 인간들은 아니라 후반부에는 결국 조력자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만화를 보면 힐링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엔간한 캐릭터들이 다 공감이 가고 정감이 가는데 유일하게 X같은 인간이 있다면 이채록 고등학교 시절 그를 괴롭힌 이름도 기억 안 나는(이름이 나왔던가요?) 노랑머리인데 은근 이런 놈들 현실에 많더라고요. 자기는 뭐 하나 내세울 거 없으면서 남 깔아뭉개는 것으로 자기 자존감 충족하는 것들이라죠.
하여튼 1권을 읽고 나서 만화에 반해버려서 좀 못 기다리고 검색을 통해 다음 웹툰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분량까지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료로 공개된 분량을 대강 계산해보면 2권까지의 내용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 노랑머리는 잊을 만하면 얼굴을 들이밀어 불쾌감을 양산하다가 이채록이 발레 하는 것을 보고 현타가 왔는지 자리를 피하는 모습에서 상당히 사이다가 왔습니다. 애초에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는 인간들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자기 우월감 확보하는 인간들은 그런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뭔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도 없을 테니까요. 심덕출 할아버지한테 당구로 꼴좋게 패배당한 것 이후로 사이다 장면이었어요.
'책 > 소설과 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빌레라』 3권 리뷰 (0) | 2024.11.21 |
---|---|
『나빌레라』 2권 리뷰 (0) | 2024.11.20 |
『악몽을 파는 가게』 2권 리뷰 (0) | 2024.11.07 |
『악몽을 파는 가게』 1권 리뷰 (0) | 2024.11.07 |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리뷰 (0) | 2024.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