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나빌레라』 3권입니다. 2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심덕출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드러났는데요. 어쩌면 할아버지가 일흔이 되어서야 꿈을 이루려는 행동, 더 늦기 전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이유와 절박함이 좀 더 확실해졌다고 할까요. 거기다 작품 상에서 잠깐 식이나마 드러났던 징후가 이번 3권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나 보는 사람마저 덜컹하게 만드니까요. 작중에서 이 사실을 현재 알고 있는 사람은 우연히 할아버지의 수첩을 보게 된 이채록 뿐으로 3권의 내용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채록이 이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이 주가 됩니다.
이런 심각한 전개 와중에서도 발레에 대한 캐릭터들의 열의라던가, 나름 개그 장면이 빠지지 않아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더라고요. 내용을 보면 이채록은 거의 할아버지의 선생님이 아니라 손주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랄까요. 이채록의 캐릭터는 입으로는 아닌 척 툴툴거리지만 은근 할아버지를 잘 챙겨주는 게 하는 행동을 보면 현실 남자애들 같으면서 츤데레 같아서 귀엽더라고요. 좀 의외라고 생각했던 저번까지는 나올 때마다 욕을 했던 이채록의 동창이었던 노랑머리는 짜증이 나는 캐릭터인 것은 맞지만 본성이 심한 쓰레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심덕출 할아버지의 알츠하이머가 진행되어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길을 찾지 못하는 증상이 더 자주 나오게 되는데, 이번에 가는 길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때문에 이채록에 대신 전화해주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이 장면 다음 이채록한테 할아버지를 괴롭힌다고 오해받아 한대 맞는데 억울한 장면은 맞지만 그동안 이채록한테 해 온 짓을 생각하면 은근 사이다인 복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 노랑머리는 만화에서 유일하게 맘에 안 드는 캐릭터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자꾸 얼굴을 들이미는 것을 보면 나중 전개에서 뭔가 한 건 한다든가 싶기도 하고요. 보통 이런 어그로를 끌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나중에 사이다를 연출하기 위해 주인공들한테 한방 시원하게 먹거나, 아니면 자기 목표가 확실한 주인공들과의 격차를 깨닫고 쭈구리가 되거나 어영부영 주인공들 친구인 척하는 개그 캐릭터 말고는 답이 없을 텐데 이외에 달리 써먹을 방도가 있을까 왠지 갑자기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목욕탕 장면에서 할아버지나 채록의 몸이 자신들보다 좋다고 현타오는 장면이 있던데 설마 얘도 갑자기 발레 한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이번 3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문경국 단장의 안내로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발레를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현재는 업으로 종사하지 않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받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심덕출 할아버지는 발레를 하고 싶어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를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이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낮은 모습을 은근히 보여주다가 이번 발레 모임에 참석하여 사고 전환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작가님이 발레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을 풍자한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는 부분이었고요. 말하자면 무언가를 좋아하고 시도하는 것에는 뭐 덕질이라도 상관없이, 거기에는 어떤 특정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특히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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