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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중세의 뒷골목 풍경』 리뷰

by 0I사금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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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란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비슷한 책이 도서관에 있어서 혹 같은 저자의 책이거나 같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온 책인가 해서 빌려온 건데 전혀 다른 출판사의 책이더군요. 하지만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사나 개인사등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조선의 뒷골목 풍경』과 많이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선시대와는 다른 유럽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좀 더 낯선 광경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면 흔하게 서양 판타지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고, 그 이면에는 유럽에 대한 동경이나 선망이 숨어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중세 유럽의 생활이 실제로 어땠는지 그 숨겨진 면이 어땠는지 자세히 아는 경우는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다루는 중세 유럽의 풍경이 놀라울 수도 있는데 보통 서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구질구질한 농민들의 일상이나 더러운 뒷골목 풍경 같은 것은 많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거든요. 다만 서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없지는 않은데 예전에 읽었던 소설 『향수』도 근대 과도기의 파리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그 도시의 악취를 활자로 전해주기까지 했습니다. 보면 『중세의 뒷골목 풍경』에서도 중세의 사람들이 목욕탕을 일종의 사교장소로 즐겨 찾았다가 후대로 갈수록 목욕탕이 윤락 업소로 변하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점차 목욕탕 산업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이 잘 씻지도 않고 향수를 마구 뿌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책에서 전달하는 그 모습은 (근대 과도기 시기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설 『향수』에서 그려내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과도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중세시대를 다루는 책답게 중세 유럽인이 가졌던 신앙의 문제도 굉장히 내용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그야말로 신앙이 지배하는 사회면서도 신앙을 받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앙이 허용하지 않을 전쟁을 벌이거나 매춘을 하거나 혼외의 자식을 만들거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아이를 버리거나 팔거나 하는 등의 일들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마녀사냥이나 교회관계자들의 어두운 면모, 위정자들의 비정함과 기만성도 책에서 많이 언급되기도 하고요. 


그외에도 전설로만 전해지는 여자 교황의 실체나 여성화가들의 활약이라거나 음모론 속의 철가면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요새 사람들이 많이 타락했다느니 문란해졌다느니 한탄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속성이란 그다지 변한 거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체제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옛날이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거나 하는 비교는 애초에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인간들의 명암이 뒤섞인 삶에서도 저자의 따뜻한 시선 엿보이기 때문인지 나름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고 거북하지 않게 보게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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