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제션 : 악령의 상자』는 수퍼액션 채널에서 방영해 준 덕에 보게 된 영화로 제목부터 공포영화라는 것이 딱 드러나더군요. 혹여나 소재나 내용이 왠지 제 취향일 것 같아 검색을 해보니 인터넷 자료에 뜻밖에도 '샘 레이미' 감독이 제작한 영화라고 나오고요. 일단 영화의 서장은 공포영화 특유의 불길하고 암시적인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대개 공포영화들은 프롤로그에서 어떤 사건의 발단이 될 장소, 물건, 존재나 짐승 등을 보여주면서 그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건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이 『포제션 : 악령의 상자』도 비슷하게 어떤 중산층 정도로 되어 보이는 미국의 가정집에서 한 노부인이 불길한 낌새를 느끼며 내용의 중심이 될 '악령의 상자'에 조심스레 다가가 그것을 망치로 내려쳐 부수려 했다가 오히려 악령의 힘에 역공당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뒤늦게 돌아온 아들이 발견하게 되지요. 이렇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시작된 영화의 또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나레이션과 더불어 한 가정이 29일 동안 겪은 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공포영화 특유의 과장이나 클리셰가 좀 보이므로 어디까지가 진짜 실화일지 어디가 좀 더 영화답게 각색한 부분일지 구분을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파운드 푸티지라는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화라는 언급도 일종의 형식으로 보는 관객들로부터 공포감을 조장하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이와 비슷하게 쓰였던 것이 우리나라 공포영화인 『알포인트』가 있는데 영화의 모티브라고 하는 어떤 군인의 수기를 보고 진짜인가 공포에 질렸다가 아주 나중에서야 이것이 일종의 마케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보면 공포영화에서 이런 마케팅도 적지 않은지라 영화 속에 이것이 실화라는 나레이션 문구는 크게 생각지 않도록 했습니다.

영화는 초반 이십분 정도가 주인공 브레넥가의 가정 불화에 대해 언급하는지라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습니다. 서로 애정을 많이 상실한 것 같고 일종의 성격차이로 이혼을 한 클라이드와 스테파니 부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 낌새를 눈치채고 약간 반항기들을 보이는 딸들 한나와 에밀리의 사정이 설명되는데요. 아무래도 공포영화에서 이런 사전설명을 잘 넘겨야 흥미진진한 부분이 나오듯이 이 부분을 잘 참고 넘겼다니 영화 중반 부분부터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영화 평을 찾아보니 클라이드의 두 딸이 많이 발암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 솔직히 부모의 이혼이라거나 아버지의 무심한 태도 같은 것 때문에 실망을 한 것도 있고, 거기다 악령 소행 때문에 이간질이 일어난 것도 있지만 딸들이 트러블 메이커인 것도 사실이더군요. 특히 나방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난리 쳐놓고 그것을 때려잡으니 침대 더러워졌다고 아버지한테 찡찡거리는 것은 좀 짜증 난다 싶었달까요?
영화상에서 클라이드는 당분간 딸들을 데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 근방에서 바로 프롤로그 씬에 나온 죽은 노파의 아들이 남긴 물건을 파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그 문제의 상자를 사게 됩니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인 셈이었죠. 클라이드의 둘째 딸 에밀리는 그 상자에 흥미를 느껴 그것을 열어보는데 거기엔 말라죽은 나방의 시체와 온전하게 뽑힌 어금니와 일종의 조각상들이 섞여있었습니다. 이 물건들의 정체에 대해선 후반에 암시되는데, 바로 주인공 일행이 겪은 일을 누군가가 이미 한번 겪었고 상자 속 악령을 가두기 위해 자신들이 가장 접촉했던 물건 내지 몸의 일부를 주술의 방식으로 거기에 넣었다는 이야기였죠. 마지막 엑소시즘 씬에서 주인공 일행이 평소 아끼던 물건과 머리칼을 상자에 넣어 악령을 봉하는 데 쓰는 장면이 나오지요.

상자가 집안에 들어온 이후 나방들이 집안을 가득 메우거나 폭력적으로 변한 에밀리의 이상행동, 그리고 상자에 대한 집착 때문에 클라이드는 이 상자가 원인임을 직감하여 상자를 버리는 등 행동을 하나 오히려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거기다 학교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자 그 상자를 대신 보관한 여교사가 악령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는 상황까지 일어나지요. 클라이드는 이 상자가 원인이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이 일하는 학교의 관련 전문 교수에게 사정을 설명, 상자를 보여주는데 이때 비로소 상자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1920-30년대쯤 만들어진 폴란드 유태인들의 목공예 상자로, 이름은 '디벅'이며 종교적인 물건이고 대개 사악한 영혼을 가두는 용도로 쓴다는 이야기로 대개 이런 종류의 물건에 대한 전설은 동서양을 비롯해서 전해지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보면 영화 속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은 다름 아닌 이 상자의 유래를 설명하는 교수의 연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딸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지고 클라이드는 관련 사항을 검색하여 엑소시즘을 행할 수 있는 유태인 마을의 랍비를 찾아가 딸을 구해달라 부탁합니다. 그리고 랍비의 아들 쟈독이 그를 도우러 오는데 그는 악마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며 상자 내부 교묘하게 숨겨진 이름을 찾아냅니다. 악마의 이름은 '아비주'로 아이를 뺏어가는 자라는 것. 그리고 악마는 생명이 없으므로 그것을 대신할 아이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왠지 이 악마 상자의 유래를 보니 한때 인터넷에 올라왔던 일본 인터넷 괴담인 '코토리바코'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희생하거나 혹은 악한 영혼을 특정 물건에 가두어 저주를 받는 것, 이 악마의 상자는 일본 괴담 속에 등장하는 '코토리바코'가 그대로 떠오를 정도로 유사점이 많습니다. 둘 다 정체불명의 상자라는 점, 악령을 가두기 위해서라는 목적과 저주를 위해서라는 목적은 각각 다르지만 손을 대면 해당자가 큰 탈이 난다는 점도요.

하여간 쟈독은 에밀리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행하고 가족의 사투 끝에 악령을 물리치나 싶더니 막판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악마를 물리친 가족들은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그들을 도와준 쟈독은 대체 무슨 죄인가 싶더라는 결말이었어요. 쟈독은 엑소시즘이 자신들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 일행을 도운 셈이거든요. 그의 죽음이 순전히 사고인 건지 아니면 악령의 농간인지는 해석이 분분하겠지만요. 어쩌면 이런 것이 진짜 공포영화의 정석적인 결말일지도 모르겠고요.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이 영화의 전개에 비해 좀 작위적이지 않나 생각을 했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었다고 할까요. 이번 영화는 초반의 지루함을 잘 견디어내면서 나름 흥미진진한 공포영화를 한편 보게 된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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