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 오브 파이』는 OCN에서 방영해 준 덕에 감상하게 된 영화로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거의 이야기가 지난 뒤 그것을 회상하는 어른이 된 파이와 그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작가 이렇게 액자식 구성으로 영화의 초반 부분은 인도인 가족인 주인공 파이의 가족들이 동물원을 운영했으나 사정이 어려워져 동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내용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가는 과정은 원활하지 않아서 종교 때문인지 채식을 하는 파이의 가족들은 배의 주방장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해 시비가 붙거나 하는 등의 일이 생깁니다. 그 와중에 깨알같이 자신을 불교신자라면서 파이 가족의 편을 들어주려는 건지 아니면 위로를 하려는 건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일본인 선원이 나오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모르고 볼 때는 현실에서 흔히 있을 어설프게 신경을 써 주는 인간이다 싶었지만 영화를 마저 다 봤을 때는 이 일본인 선원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되는지라 충격적이기까지 했다지요.

영화의 본격적인 내용은 삼십분 가량을 넘어서 폭풍우가 몰아쳐 배가 침몰하면서 시작되며 초반 밋밋하던 영화의 분위기가 이때부터 가속되기 시작하지요. 예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포스터만 보고 어린애가 호랑이랑 같이 배를 탄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 진행된다는 건가 싶었는데 그 면목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파이는 처음엔 애답게 폭풍우를 보고 즐거워하더니만 이윽고 자신의 가족이 선실에 갇힌 것을 깨닫고 패닉에 빠졌다가 다른 선원들에 떠밀려 배에 탔는데 이때 자신들 동물원에 있던 얼룩말이 뛰어내리면서 반동으로 구명선이 떨어져 나가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까지 배에 타게 됩니다. 동물들과 같이 배를 타게 된 파이는 나름 배를 뒤져 생존지침서를 찾아내 소형의 뗏목을 만들고 앞으로의 상황을 대비하던 도중 오랑우탄 '오렌지주스'가 바나나를 타고 떠밀려오는 것을 구합니다. 그런데 구명선 밑에 여분의 공간에서 갑자기 하이에나 '하리'가 튀어나오는데 왠지 맹수들이 주인을 못 알아보는 건지 파이에게 덤벼들어 긴장감을 유발하지요.

보면 영화에서 트러블 메이커는 이놈이다 싶었는데 배가 고팠던 건지 가만히 있는 얼룩말을 공격하여 잡아먹고 자신에게 덤비던 오랑우탄까지 물어죽여 충격을 안겨주지요.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일 때 구명선 밑의 공간에서 숨어있던 리처드 파커가 나타나 하리를 단박에 물어 죽이고 맙니다. 왠지 산 넘어 산이라고 할까요. 파이는 생존지침서에 적힌 대로 솜씨를 발휘하여 이것저것을 만들고 식량 여분을 챙기는데 영화 보면서 저런 솜씨가 없으면 저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내내 구명선의 공간을 두고 리처드 파커와 파이의 견제가 지속되는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를 질러대다가 호랑이 오줌까지 맞는 장면은 심각한 와중에서도 개그 그 자체. 보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아있던 동물의 사체들은 과연 어찌 되었을까 싶었는데 호랑이가 다 잡아먹은 건지 아니면 바다에 쓸려간 건지는 모호하더군요.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 곧 식량난이 닥치는데 이때의 상황을 타개하고 리처드와 파이의 대결에서 파이의 입지를 새기게 된 계기는 날치 떼 덕입니다. 이때 날치를 잡아먹으려던 참치 비슷한 커다란 생선이 배에 뛰어들면서 파이는 재빠르게 그것을 채가서 허기를 달래고 남은 것으로 리처드를 길들이게 되지요. 하지만 바다를 표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폭풍우까지 만나면서 점차 리처드도 쇠약해지고 파이도 사경을 헤매게 되는데요. 그 둘이 탄 배는 바람에 휩쓸려 어떤 기묘한 해안가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제 구조되나 싶더니만 해안의 형태는 땅이나 바위가 아니라 늪지대의 그것처럼 나무의 뿌리로 엮인 곳이고 미어캣들이 바글거리는 기묘한 섬이었는데 파이와 리처드는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어른이 된 파이가 회상하길 그 섬은 일종의 식충섬으로 신기한 꽃 속에서 사람의 치아를 발견하고 표류하던 누군가가 그 섬에서 살다가 죽었고 그 섬이 그의 시체를 녹여 흡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상에서 이 섬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비출 때 일반 섬이 아니라 마치 여자가 누워있는 듯한 기묘한 모습으로 비추는데 그것이 섬의 존재를 더 신비하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매력은 TV 화면으로 봐도 놀라운 영상에 있는데, 하늘의 변화를 비추는 바다의 표면에서부터 야광으로 빛나는 물고기 떼의 움직임과 어쩌면 죽어가면서 본 것일지도 모를 파이의 환상까지 신비로운 이미지로 가득 찹니다. 특히 하늘의 변화를 비추는 바다의 모습은 마치 물이 너무 맑은 나머지 물의 깊이가 얕은 거라고 사람들이 착각하여 자주 빠져 죽는다고 외국의 모 호수가 떠오르던데 물론 영상 속의 바다는 투명하긴커녕 불투명하게 그 밑을 알 수 없게끔 기기묘묘한 이미지를 들어채 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당장 물에 들어가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물에 빠지더라도 고통스러울 것 같진 않다는 착각을 TV 밖에서 보는 저에게도 심어주었는데 그래도 만약 저 상황에서 저 풍경에 넋을 잃고 물속에 들어갔다면 바로 주위를 배회하는 상어 떼의 밥이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바다의 이미지는 가히 영상 혁명이다 싶었을 정도. 그렇게 사지를 넘긴 파이와 리처드는 겨우 멕시코 해안에 도착하고 리처드는 해안가에 도착하자마 파이를 돌아보지 않은채 정글 속으로 몸을 숨겨버립니다. 나름 정을 주었던 파이는 그 모습을 보고 서러움에 울며 사람들에게 구조되면서 영화가 끝나나 싶더니 여기서 또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의 침몰 원인과 사고 규명을 하기 위해 찾아온 선박회사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을 취재하러 온 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당시의 파이에게 듣고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하며 좀 더 제대로 된 사실적인 이야기를 요구하는데 그 '사실'이란 게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실은 구명선에 탄 사람은 파이 혼자만 아닌 네 사람으로 파이, 파이의 엄마, 주방장, 일본인 선원으로 일본인 선원이 발을 다치자 주방장은 그의 발을 자르고 그의 시신을 물고기를 잡는데 미끼로 썼고, 결국 파이의 엄마는 주방장과 다툼이 생겨 그에게 살해당하여 시체는 버려졌으며 주방장 또한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파이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영화 상에서 작가의 입으로도 언급되듯이 다친 얼룩말=어정쩡하게 착한 일본인 선원, 하이에나=나쁘게 묘사되던 주방장, 오랑우탄=파이의 엄마 그리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파이였다는 이야기인데 영화를 전부 봤을 때 결국 진실은 마지막 파이의 고백에 더 가깝다고도 보이더군요. 파이와 리처드와 함께 살아난 것은 당시 급박한 상황이 만들어낸 일종의 야수성이 생존을 도왔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글 앞에서 리처드가 파이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목숨이 위협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파이를 살게 한 리처드가 필요 없어진 상황을 비유했다고도 해석될 수 있겠네요. 영화 마지막에 두 가지 이야기를 전부 작가에게 말해준 어른인 파이는 호랑이 이야기가 더 맘에 든다는 그의 말에 신을 믿는 것 또한 그렇다는 대답을 해주는데 믿고 싶은 것만을 골라 믿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거나 혹은 그렇게라도 해야만 삶이 편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영화의 결말이 아련하면서도 실은 섬뜩하기도 하고 미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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