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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그림자 밟기』 리뷰

by 0I사금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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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에 한번 흥미를 갖게 되어 도서관에서 있는 것들을 한번 뒤적거려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기이한 소재가 등장하거나 미스터리 풍의 분위기를 풍기는 단편들인데, 실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시대 배경을 과거로 옮겼다 할 뿐이지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만한 것도 많은 편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보다는 기담 풍의 소설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잠시 보류해두고 이번에 빌려오게 된 것은 바로 『그림자 밟기』인데 소설 뒤표지에는 '눈물이 나는 괴담' 운운하는 문구가 실린 것으로 보아 제가 원하던 내용일까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 무서운 것을 기대하면 안 되고, 요괴나 기묘한 현상들에서 소재를 끌고 오긴 했으되 좀 잔잔한 이야기들 위주라고 할까요? 이야기의 무거움 정도를 비교하면 전에 읽은 '흑백의 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괴담 모임 시리즈가 더한 편이라고 판단...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전염병의 조짐을 알려주는 그림과 그 그림의 전조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스님의 항아리', 불행하게 죽은 소녀의 그림자가 아이들과 놀기 위해 나타난 '그림자밟기', 예전에 일본 작가들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한번 미리 읽은 있는 (당시 번역된 제목은 '혈안') '바쿠치간', 이래저래 부정한 과거가 많은 부유한 상가의 아들을 둘러싼 음모가 독특한 방법으로 풀려가는 '토채귀',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 피해자의 영혼을 덮어씌워 속죄하게 만드는 기묘한 빙의술을 다룬 '반바 빙의', 요괴들의 부탁을 받아 사람을 해치게 된 나무망치 요괴를 해치우는 이야기인 '노즈치의 무덤' 이렇게 총 여섯 편이 되겠습니다. 이 중에서 '바쿠치간' 같은 경우는 실려 있는 소설들 중에서 상당한 분량을 자랑함에도 안타깝게도 이미 예전에 한번 읽은 소설이란 것을 알고 좀 맥이 빠지기도 했고요. 이건 소설 자체와 상관없이 제가 이것저것 다 빌려보는 바람에 생긴 일이긴 합니다만...

책의 내용 중에서 인상적인 소설들을 꼽자면 '토채귀'나 '반바 빙의'와 같은 독특한 민속신앙에서 소재를 끌고 왔을 법한 단편이었습니다. '토채귀'에서 '토채귀'는 빚을 돌려받지 못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이 채무자의 혈육으로 태어나 어떻게든 해를 끼친다는 귀신으로 이해할 성 싶은데 실은 이 토채귀 이야기를 끌어들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사기꾼 승려와 그 사기꾼의 계획을 알아채어 저지하려는 학교 선생의 이야기로 이렇게 보면 사기꾼 승려가 일방적인 악인 같아 보이지만 그 승려도 실은 나쁜 목적이 아니라 그 상가 주인의 아이를 밴 자신의 누이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을 뿐 주변 사람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묵은 원한이 많은 주인의 설레발 때문이었고요. 묘하게도 이 에도시대 시리즈에는 남녀의 치정 그중에서도 임자 있는 사람을 뺏으려고 하거나 빼앗겨서 원한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싶었는데 뭐 현대에도 비슷할지 모르지만 묘하게도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에 이런 것을 많이 접하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에도시대에 권력으로 남의 애인을 취하는 일이 많은 건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반영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비슷하게 '반바 빙의' 이런 삼각관계의 비극에서 벌어진 일이 원인인데, 한 남자를 두고 지방의 유력 가문의 아가씨 두 명이 대립했고 결국 이것은 한쪽이 살해당하고 맙니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반바 빙의'는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의 영혼을 불러 가해자에게 씌우고 가해자의 영혼을 없애어 피해자로 살게 하는 주술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 소설 속에선 이것이 진짜 그러한 주술이라기보단 일종의 최면술에 가깝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인간의 반응인데 미약한 집안 출신이고 종마나 다를 바 없는 데릴사위로 들어와 대접받지 못하는 남자가 그저 부인이 예쁜 것 하나로 참고 살다가 그 앙금을 깨닫고 이 '반바 빙의'를 겪은 장본인을 만난 뒤 이 방법을 터득한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앙금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다는 점이에요. 이는 암만 좋은 조건을 갖다 붙여도 동등하지 못하고 단적인 애정 관계의 결말은 파국밖에 없다는 것을 조심스레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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