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기회로 어린 시절 읽었던 명작 소설들을 몇 편 정주행하게 되었는데 문득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를 생각하다가 뭔가 예전과 다른 생각이 들어서 정리해 보는 포스트예요. 『검은 고양이』는 미국의 추리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인데, 어린 시절 읽었던 아동용 공포/추리 소설 단편집에서 이 소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순진했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알코올중독에 포악한 성격이 된 주인공은 자기가 키우던 애완동물들을 학대하고 특히 아끼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쪽 눈을 칼로 찔러 애꾸로 만들고 만다. 플루토는 그날 이후로 주인공을 피하게 되고, 나름 죄책감을 느끼던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자 결국 고양이를 집 마당 나무에 목 졸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얼마 후 주인공의 집에선 화재가 일어나 주인공은 재산을 잃고 아내와 함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주점에서 플루토와 닮은 그러나 목 부분에 기묘한 흰 무늬가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하여 데리고 오게 된다. 그러나 곧 고양이에게 이상한 혐오를 느낀 주인공은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고양이가 발에 채여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 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도끼를 들어 고양이를 죽이려고 한다. 그때 아내가 고양이를 죽이는 걸 말리게 되고, 주인공은 도끼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아내를 죽인 것에 기겁한 주인공은 그 시신을 지하실의 마르지 않은 벽에 매장하게 되고 며칠 뒤 아내의 실종을 수사하러 경찰이 찾아온다.
하지만 경찰들은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려 하자, 괜히 의기양양해진 주인공은 집의 튼튼함을 자랑하며 시체가 매장된 벽을 손으로 치게 되는데 그 순간 안에서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주인공은 공포로 얼어붙고 경찰들은 그 벽을 부숴서 그 안에 매장된 아내의 시신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아내의 시신 위에 검은 고양이가 있다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시신을 매장할 때 고양이를 같이 매장한 것, 고양이 목에 있는 털이 교수대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으며 공포와 절망에 젖는다.」

소설을 다 읽으면 공포소설에 한때 유행했던 "고양이의 복수!" 서양권에서 유행하는 "검은 고양이=마녀의 상징!"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던 소설입니다. 단순하게 줄거리만 살펴보면 검은 고양이가 무서운 존재인 것 같으나, 다시 줄거리를 면면하게 살펴본다면 실제로 검은 고양이가 주인공을 타락으로 이끌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실제로 소설 속 검은 고양이 중 먼저 나온 플루토의 삶을 요약한다면 플루토는 줄곧 동물 학대를 당하다가 한쪽 눈이 찔리고 최후에는 목이 졸려 비참한 형태로 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나온 검은 고양이가 플루토의 환생이라는 보장은 있을 수 없어요. 검은 고양이 형태는 잘 모르는 사람에겐 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는 거고요.
소설은 일인칭 시점이라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가 되는데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를 겹쳐 본 건, 어디까지나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린 주인공의 망상에 가까운 편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검은 고양이가 자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을 유도하고 교수대로 인도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아내가 죽은 건 주인공의 분노 조절 장애 때문이예요. 고양이가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라고 그를 세뇌한다거나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며 두 번째 고양이의 존재에 혐오와 분노를 느낀 건 그가 과거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압박감을 느낀 탓이지 고양이가 뭔가를 시도해서는 아닙니다.

심지어 그가 알코올 중독이 된 뒤 아내를 학대했다는 언급도 간간이 나오는 편. 주인공이 알코올 중독에 절제력이 부족한 성격이라는 것은 소설 여러 군데에서 묘사되고 있고요. 주인공은 스스로의 입으로 어린 시절에는 착하고 순진했다며 자신을 포장하지만, 실제로 그가 그런 성격이었다기보단 남에게 자기주장을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그 분풀이를 가까운 만만한 이들에게 푸는 유형의 타입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도 그런 연유일 수도 있는 거고요.
소설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은 시신이 매장된 벽 속에서 고양이가 나왔다는 장면이며 그래서 주인공은 고양이를 마치 자신을 징벌하러 온 괴물과 같은 존재로 동일시킵니다. 어떻게 고양이가 같이 매장되어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적으로 주인공은 자기 아내를 살해하고 시체를 매장한 흉악범이며 그의 범죄가 드러나 처벌받는 것은 제삼자들이나 사회 입장에선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특히 죽은 아내의 시점에서 본다면 고양이는 복수의 대리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고양이의 복수에 초점을 맞추며 끝까지 자기 탓이 아니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현실 범죄자들의 남 탓하는 심리와 유사한 구석이 있어요. 어떤 프로파일러 책에서 이 소설 『검은 고양이』가 인용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저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 심리가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너무 유사하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프로파일러가 지적한 부분은 바로 소설 속의 주인공이 고양이 탓을 하며 자신을 희생자로 합리화하려는 심보, 그것을 두고 그런 건지도 모른다. 작가인 에드거 엘런 포가 이런 해석까지 염두에 둬가며 소설을 쓴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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