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전에 한번 읽었던 책으로 이후 구매를 하게 되었는데 구매하게 된 책의 사이즈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보단 굉장히 작은 사이즈라서 내용이 축약되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것 없이 열여섯 가지 다양한 사건이 죄다 실려 있었는데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서는 『무원록』으로 『무원록』은 원나라 왕여가 편찬한 것을 세종 때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다시 편찬한 책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앞서나간 사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설명해 주는 시체의 검시방법에서 드러나지요. 그리고 사건의 조사도 제법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관리가 미흡하게 처리한 것이 발각될 경우 파직당하거나 처벌당하는 등의 일도 있고요.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건의 용의자가 좁혀질 경우 고문이 쓰이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의 수사방식은 절차를 중요시했는데 시체검시 - 목격자들의 증언 수집 - 용의자가 잡혔을 경우 그 처벌을 어떻게 할지 왕과 대신들이 의논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해나갑니다.
근데 보다보면 최종적인 결정은 왕이 내리게 되는데 아무래도 신분제 사회여서 그렇지만 이 왕의 결정이 대신들의 결정을 뒤집을 수도 있고 따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는 대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다 싶을 때도 왕이 뒤집는 케이스가 있는데요. 정조시대에 명예훼손과 같은 피해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여성인 경우 그 피해로 겪는 심적 고통과 증오심은 이해가 가지만 무고죄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가 아니므로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적인 복수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대신의 결정이 그래도 머리로는 더 맞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반면 왕의 주장 쪽이 옳다고 여겨져도 대신들의 반발에 처벌이 약화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는 최종결정은 왕이 내린다고 하더라도 왕의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겠죠. 시대가 시대라서 그럴까요? 이 사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시 지배층의 모순이나 어두운 면모가 드러나는 사건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권세가의 자식들이 부녀자를 납치하거나, 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처벌을 미약하게 받는 사건도 제법 있었습니다.
물론 노비의 목숨도 목숨이라 인정하긴 했고, 왕이 나서서 여종이 살해당한 사건에 충격을 금치 못해 처벌의 강도를 세게 요구하는 케이스도 있었지만 보통 천민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인 경우 가해자가 지배층인 경우가 많아 사건을 처리하는 계층 역시 지배층이라서 일종의 감싸주기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시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현상 같지만요. 거기다 명예살인과 같은 여성 입장에서 억울한 살인사건도 있는데 이것은 여성의 정조를 극단적으로 요구하다 보니 확인되지 않는 소문만으로 여성을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으로 그 사건 자체로 처벌이 정해져야 할 만한 일임에도 가해자가 권신과 관련이 있어서 정치적인 비화로 발전하여 당파싸움화 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신분이 낮아서 보호받을 수 없는 인물들이 누명을 쓰는 억울한 사건도 벌어지곤 합니다.
따지고보면 시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도 빠질 수가 없는데 이건 시대를 막론하고 참 보기 뭐 한 일이고요. 그 외에도 당시 시대가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는 사건 예를 들어 임꺽정과 같은 천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도적질을 하면서 나라를 뒤흔든다거나, 소현세자의 자식이라고 거짓말을 쳐서 한몫 잡으려는 사이비가 있거나, 범죄에 빠진 사람들이 거대한 범죄조직을 만들어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등의 사건도 있는데 이런 사건의 배경에는 당시 시대가 마주한 혼란이나 모순점이 그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저자 역시 지적하는 바입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굳어진 신분제가 백성들의 삶을 옥죄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도적이나 검계의 출현은 당시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례랄까요. 심지어 사관들마저 임꺽정의 사례에서 보이듯 백성들이 도적질을 하는 것은 관료들의 부패 탓이라고 비난할 정도였으니까요.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가 어느 왕의 시대였느냐는 것입니다. 맨 첫 장의 사건은 선조에서 시작해서 정조까지 참으로 다양한 시기가 등장하는데 세종대왕이나 정조처럼 존경받는 왕의 시대가 제법 많이 언급됩니다. 이것은 그 시대가 생각보다 살기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경우 이것을 면밀히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잡힌 시대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지어 신분제의 최하층에 속한 사람이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왕이 직접 사건에 깊이 관여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종시절의 사건과 정조시절의 사건이 특히 그러한 면모가 많이 보입니다. 이는 존경받는 왕들일 경우 백성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느냐가 드러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사건이 적은 시대는 사건이 유야무야 잊히는 시대였고, 백성들과 관련된 기록이 적은 시대야말로 현실을 고발하는 입이 닫혔기 때문에 괴로운 시대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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