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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미궁에 빠진 조선 :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 리뷰

by 0I사금 202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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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을 다시 읽고 그 책을 리뷰한 바 있고 그보다 전에는 『조선기담』을 리뷰한 바 있는데 이번에 다루는 『미궁에 빠진 조선 :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는 오래전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을 리뷰하면서 언급한 바 있는데요. 책 자체가 흥미로운 지라 이번에 다시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세 책을 리뷰하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사건들을 비슷한 기록에서 취하다보면 겹치는 이야기가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종시대 유아 발목 절단 사건은 『조선기담』, 『미궁에 빠진 조선』 두 책에 모두 실려있고, 정조시대 시어머니와 조카가 간음을 저지른 걸 며느리한테 들키자 며느리를 살해한 사건은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이번 『미궁에 빠진 조선』에 둘 다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려있지 않지만 소현세자의 유복자 행세를 한 요승 처경 이야기는 『조선기담』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에 실려있지요. 이번 『미궁에 빠진 조선 :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은 '일성록'이라는1760년부터 1910년도까지의 국정 전반을 기록한 사료에서 살인사건을 선택하여 구성한 책입니다. 여기에 실린 사건은 총 14가지인데 어떤 사건은 현대의 원한 살인과 유사하지만 어떤 사건들은 벌어진 이유가 당시 조선사회의 배경과 어우러져서 참으로 특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유달리 여기서 많이 언급되는 정조인데 아무래도 사건을 골라낸 사료집이 1760년대부터인지라 정조의 즉위 기간과 상당수 겹치기 때문이며, 거기에다가 정약용이라는 걸출한 수사관이 기록한 『흠흠신서』 역시 자료의 배경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실린 사건들 중에서 정약용이 직접 수사한 사건은 세가지가 되는데 여기서 두 가지는 예전 수사관 시절 정약용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이미 다뤄준 바 있어 흥미롭게 봤던 사건들입니다. 거기다 정약용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것은 사건이 지지부진하게 해결이 되지 않자 유능한 인물로써 정조가 직접 정약용을 부른 것이었으며, 거의 해결을 합니다. 의외로 정조같은 이상적인 임금 즉위 기간동안 살인사건이 많이 벌어진 이유를 당시 시대가 생각보다 혼란스러워서가 아니라 정조 시절이 그만큼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체계가 잡혀있었고, 정조가 그만큼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라고 예전의 리뷰에서 쓴 바 있습니다. 실제로 정조는 벌어진 사건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난 사건이라도 다른 증거가 있거나 주장이 있을 수 있으니 세심하고 신중하게 조사하라고 엄명을 내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사고관에서는 당시 인물답게 보수적인 측면이 보이는데요.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맞아죽었다고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를 죽여 창자를 꺼낸 사건에서는 효행이 돋보인다고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나, 과부와 눈맞은 남성을 과부의 집안 사람들이 때려죽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잘못이 크다고 결론 내린 것을 볼 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의 사건과 같은 경우 정약용은 『흠흠신서』에서 '복수는 할 법 하지만 방법이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비판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는 법률이 엄격하면서도 의외로 살인을 허용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효행에 의한 살인이나 열부의 살인에는 관대하게 여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살인도 어느 정도 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을 넘어서면 처벌했다고 하지만요. 살인사건의 이유도 단순히 치정이나 원한만이 아니라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적서간의 차별과 갈등이 원인이 되어 살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었고, 묫자리를 잘 써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남의 무덤에 투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살인으로 발전하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살인사건들이 있습니다. 


거기다 음주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 정조시대에는 금주령이 생겼을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는 현재에도 일어나는 법인지라 사람 사는 거 참 변한 거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에선 사건과 사건 사이에 당시 조선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는데요. 사건들을 연구할 수 있는 사료들이나, 궁중에서 번번히 일어났던 절도사건의 모습들, 조선 인구의 서울 집중화로 서울의 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증가하면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사고들, 조직폭력배인 검계의 등장과 고리대금업의 폐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순조실록편에서 언급되었던 상인들의 쌀값을 올리기 위해 곡식을 숨기면서 야기된 미곡폭동, 조선시대의 문서 위조 사건 등 암울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실려 있습니다. 이런 면면들은 조선시대가 예의군자의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안에서 끊임없이 여러가지 변화가 휘몰아치며 다사다난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랄까요. 아무래도 조선후기 들어갈수록 기록 자료들이 많아진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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