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령(원제 Haunter)』 역시 수퍼액션 채널(현 OCN movie 2 채널)에서 방영해 준 덕에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개봉한 한국 엑소시즘 영화 『검은 사제들』이 잘 나가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관련 홍보차 악령과 관련된 공포영화를 방영해 주었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일단 영화의 제목이 ‘악령’이라는 뭔가 묵직하고 강렬한 한 단어라 끌린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해 검색해 보니 특이하게도 캐나다 공포영화인 데다 원제는 'Haunter'이고 직접적으로 악마나 악령과 관련된 것이라기 보단 ‘haunt 귀신이 나타나다, 뇌리에 계속 떠오르다/ 문제가 계속되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더군요. ‘악령’이란 번역은 주인공들을 붙잡은 살인마의 영혼을 가리킨 것일 수 있지만 영화의 원제가 영화 속 주인공과 또 다른 혼령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어인지라 번역된 제목이 원 제목의 의미를 다 담지 못하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처음 영화는 주인공 리사의 이상한 상황, 계속 일요일 아침이 반복되며 다른 가족들은 이상한 것을 눈치 못 채고 혼자만 위화감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영화 초반엔 계속 이런 상황과 혼자만 붕 뜬 리사의 모습만이 비추어 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어 감도 안 잡히고 지루해졌는데 영화는 중반 들어 평소 반복된 것과 달랐던 부모의 행동에, 리사가 집안에서 이사 오던 날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배경이 85년도인지라 옛날에 쓰인 비디오테이프와 텔레비전, 당시 게임기들을 비춤)를 발견하고 위자보드를 통해 혹시 이 집안에 뭔가 유령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감지하게 되고 더불어 안개 때문에 전화가 혼선된 것을 고치러 온 수수께끼의 수리공이 남긴 이상한 충고로 인해 영화의 분위기가 변화하게 됩니다. 리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죽어서 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건가 추측을 하게 되고 지하실에서 발견한 위자보드를 통해 접촉을 한 유령이 실은 유령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란 것을 눈치 채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리비아라는 소녀와 제대로 조우하여 자신들이 이사 온 집에 대한 비밀을 깨닫게 되는데 바닥에 숨겨져 있던 신문 스크랩을 통해 다름 아닌 리사의 집은 소녀들을 연쇄 납치하여 살해한 에드가라는 살인마의 집이란 게 드러나고 지하 비밀 창고에 소녀들을 살해하고 불태운 흔적과 피해자들의 유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올리비아와의 접촉을 통해 이미 시간은 훌쩍 지난 올리비아의 방-즉 과거 리사의 방이었던 곳-에서 자신들의 가족은 85년도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모두 죽었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저번 리사의 아버지가 보였던 이상행동을 올리비아의 아버지가 보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집에서 죽은 영혼들은 악령인 에드가가 환상으로 지배하고 있어 벗어나지 못한단 사실도요. 올리비아와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확신한 리사는 죽은 자가 죽기 직전 가진 물건으로 그 영혼과 접촉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게 됩니다.
리사는 첫 번째 피해자인 프랜시스를 만나 그 역시도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다른 공간에서 빠져나가려 애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죽은 사람이 그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 직전 접했던 물건과 다시 접촉하여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 가족들도 한명 씩 현실을 깨달아 겨우 악령의 집에서 벗어나게 되고 가족들의 죽음의 실상에 대해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악령인 에드가가 아버지의 몸에 씌어 가족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현대에서 올리비아의 아버지를 이용해 그의 가족을 몰살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리사는 일단 가족들을 먼저 해방시킨 뒤 자신은 올리비아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남습니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몸을 통해 살인을 저지하려 드는데 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아직 지하에 남아있던 피해자들의 유품을 통해 그들을 깨우려 하지요.
처음 올리비아와 제대로 접촉하기 이전 리사의 행동은 악령이 가족을 담보로 협박하는 바람에 울부짖는 등 답답하기도 하고 너무 살인마에게 놀아나는 지라 과연 저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은 중반부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다 살인마가 만든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망자들을 깨워 악령이 생전 자신이 했던 방식 고대로 응징되어 보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함을 제공합니다. 영화에서 이렇게 약자로 취급받던 사람이 조금씩 각성하여 나름의 방법으로 위협적인 대상을 물리치는 것은 상당히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할까요? 다만 영화가 12세 등급인지라 생각보다 잔혹하거나 끔찍한 장면은 없이 암시정도로만 그치기 때문에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의 무서움은 적고 다만 소녀인 주인공이 악령의 덫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길 응원하는 심정으로 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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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한 추측이지만 작중에서 리사만이 먼저 죽음을 깨닫게 된 경위는 아무래도 죽기 직전 집안에서 불었던 클라리넷과의 접촉 때문이며 올리비아의 의식과 접촉하게 된 것도 생전에 잃어버린 목걸이만이 아니라 그것의 영향도 있지 않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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