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TV에서 방영하여 보게 된 2010년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의 한 에피소드 중 여성들만 사는 나라의 여왕이 자신들의 나라가 무너지는 예감이 들자 그 나라를 바꾸기 위해 삼장법사에게 도와 달라 청하며 계속 곁에 있어주길 부탁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그 청을 거절하며 여왕에게 하는 말로 일단 어떤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하지만 만약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을 들려주지요. 이 말은 즉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려면 일단 노력을 해 봐야 되는 것이 맞지만 일단 그 노력에도 엄연히 한계가 있고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 바꾸기 어려운 것도 있는 법이니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일 텐데 사람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이야기는 실은 많이 찾기가 어려워요. 왜냐면 상당수의 매체들은 대리만족을 위해서인지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기 계발서 급의 내용들을 거의 세뇌 급으로 들이미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그래도 종종 찾아보면 제가 감명 깊게 본 저 드라마와 같이 현실을 깔고 들어가면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어서 희소가치도 있고 일단 전해주는 충격도 보통이 아니라 정말 인상이 깊게 남습니다.
영화 『더 그레이』는 이번에 LTE 비디오 포털(현 유플러스 모바일 TV)에서 무료로 서비스해 주는 영화들 중 하나라 보게 된 셈인데 실은 초반 20분 정도가 너무 지루한 나머지 그냥 보는 것을 관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기다 예전에 우연히 본 스포일러 중 이 영화의 결말 때문에 화가 났다는 둥 하는 글도 본 적이 있어서 영화가 그렇게 별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한번 보기 시작한 영화인지라 그 앞의 이십 분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보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행이게도 영화는 초반 20분을 넘어서 주인공 오트웨이(리암 니슨 분)가 비행기 사고를 당하면서 내용이 좀 더 긴박감 있게 전개되기 시작하더군요. 오트웨이는 과거 추측하기를 사랑하던 아내를 병으로 잃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남자로 평소엔 석유를 채굴하는 공장 근처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늑대를 잡는 사냥꾼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사람을 위협하는 야생동물들이 몇 없어서 좀 멀리 느껴지는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캐나다 같은 곳에서는 곰의 습격 같은 것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니 아마 이런 피해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것도 다 다를 텐데도 이 영화는 끔찍할 정도로 자연에 고립된 인간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무서울 정도로 잘 전달해주고 있더군요.
비행기 추락으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은 오트웨이를 포함하여 여덟 명이었지만 그중 한 사람도 추락시 입은 상처로 인해 과다출혈로 얼마 안 가 죽어버리고 나머지 일곱 사람은 절망하고 맙니다. 다행히 생존자들은 큰 상처는 없었지만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망망대해와 같은 하얀 설원이며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고 언제 구조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심지어 시체의 피 냄새를 맡고 야생 늑대 떼까지 몰려오고 맙니다. 그나마 늑대 사냥을 하면서 늑대의 습성을 알던 오트웨이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면서 상황에 대처하게 하지만 그 지역의 늑대들은 더 영악한 놈들이라 자신들 구역에 들어온 인간들을 하나씩 처리하려 들지요. 생존자들 중 망을 보던 한 사람은 늑대 떼에 습격당해 끔찍한 죽음을 맞고 오트웨이는 늑대들이 자신들을 먹이로 보는 것이 아닌 침입자로 규정하여 죽이려 든다는 것을 알고 이 자리에 있기보단 멀리 보이는 숲가로 도망을 가서 엄폐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이런 결정 와중에도 저 숲이야말로 늑대들의 소굴일지 모른다는 암시가 흐르는데요. 그리고 이것은 후에 여지없이 들어맞게 됩니다.
생존자 나머지 여섯 명이 숲으로 피신하려 가는 동안 뒤처진 한 명이 또 늑대에게 습격을 당하지만 숲으로 가서 불을 피우며 늑대들을 견제하던 일행은 그중 자신들을 공격한 늑대를 해치우는 쾌거를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일행 중 한 명이 저산소증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고 한 사람은 절벽을 건너려다 추락사하는 등 불운이 뒤따르지요. 이 와중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라 남 탓하는 인간도 있고 그 상황에서 분위기를 풀어보려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요. 영화는 허세의 본질이 실은 자신의 두려움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작 중 가장 갈등거리를 만들어낸 인물인 디아즈(프랭크 그릴로 분)는 무서움을 감추려고 사람들에게 거친 행동을 하고 항상 누군가를 탓하는 등 행동을 하다 오히려 얻어터지는 추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상에 암시로 보면 디아즈는 전과도 있고 가족도 없는 인간으로 작중에서 보는 사람의 부아를 돋우는 행동을 많이 하지만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디아즈는 일행들이 하나하나 늑대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와중에 기력이 다하자 자신은 더 이상 걸어갈 힘도 없고 살아나봤자 자신의 삶은 특별한 것 없다며 자살을 결심한 듯 강가에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이 디아즈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며 더 드러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들을 뒤따라오는 늑대들에 의해 죽을 것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가장 늑대들을 무서워하던 그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중얼거리지요.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며 초반 민폐를 끼쳐오던 그가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마치 잭 런던의 단편 소설 『불을 피우기 위하여』의 주인공과 유사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대책 없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 보지만 결국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자 죽음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처럼 받아들이는데 디아즈의 모습도 소설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후반 오트웨이에게서도 발견되는데 두 명의 생존자들도 상황이 순탄치는 못 해서 늑대의 습격을 받고 한 명은 강에 빠져 익사하고 맙니다. 그 모습까지 지켜보게 된 오트웨이는 보고 있으면 좀 도와달라고 신을 원망하며 숲에서 절규를 하기도 하고요. 막판에 오트웨이는 자신이 챙겨 온 희생자들의 지갑 속 신분증과 가족사진을 보며 마치 마음을 정리하려는 마냥 그것을 차곡차곡 눈앞에 포개어 놓는데 그 순간 오트웨이 앞에 늑대 무리들이 나타납니다. 즉 자신들이 안전을 위해 도망친 이곳이야말로 진짜 늑대들의 소굴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상황이었죠.
영화는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가려는 사람의 의지를 찬양한 영화인가 싶지마는 영화는 볼수록 감독의 의도가 그런 데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공포영화 뺨칠 정도의 으스스 한 분위기에서 늑대라는 무시무시한 야생동물의 끈질긴 습격이 이어지고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춥고 거친 환경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하나둘 죽어가는 상황이 그런 생존에 대한 의지를 찬양하는 내용일까 싶었거든요. 모든 일행들이 다 죽어 나가는 마당에 적어도 그런 의도를 만들어낼 것이었다면 주인공 오트웨이는 살려주었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오트웨이는 늑대 소굴의 중심에 들어가 늑대 무리의 알파(우두머리 늑대)와 마주치면서 작중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쯤 되면 오트웨이 스스로도 살아남을 생각을 한 것 같지도 않고요. 하지만 오트웨이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도 억울하다느니 죽기 싫다느니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조용히 칼과 유리병을 손에 감아 죽기 마지막 전에 자신들을 괴롭힌 늑대 알파에게 할 수 있는 복수를 시도합니다. 오트웨이의 생존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알파가 쓰러진 것으로 봐선 작게나마 복수는 성공한 셈이었고요. 영화를 보면서 오트웨이의 죽음은 슬펐지만 적어도 그는 노력은 했고 그것이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순 없다 해도 더 이상에 그것에 연연하며 추태를 부리지 않고 그 죽음을 자신 나름으로 의연히 받아들였기에 끝까지 오트웨이는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운명과 싸웠고 비록 끝은 죽음이라도 그가 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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