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스핀오프인 『킹덤 : 아신전』 리뷰입니다. 이 『킹덤 : 아신전』까지 보게 되면서 넷플릭스에 올라온 『킹덤』 시리즈는 전부 완주한 셈인데, 여기까지 본 이상 3시즌이 언제 나오나 넋을 빼고 기다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네요. 스핀오프인 『킹덤 : 아신전』은 다음 시즌 빌런의 탄생뿐만이 아니라 생사초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조선에 퍼졌는지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빠뜨리지 말고 필수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조학주의 아들 조범일이라는 사실도 더불어. 이놈이 폐사군이라고 금지된 땅에 산삼 캐러 들어온 여진족들을 다짜고짜 죽이지만 않았어도 저 사단은 안 났겠다 싶더라고요. 국경 넘어온 인간들을 관대하게 처분할 일은 아니었지만 조범일이 저지른 짓은 국법으로 다스린 것도 아니고 순전히 지 기분 상했다고 사람들을 몰살시킨 거고, 또 그걸 덮겠다고 귀화한 여진족 부족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아신의 고향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사태가 생겨나게 되거든요.
이후 모든 사태를 알아낸 아신은 조선 정부에 원한을 품고 생사초와 역병을 퍼뜨리는 인물이 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킹덤 : 아신전』은 생사초의 비밀과 그것이 조선에 퍼진 과정을 설명하고 다음 시즌을 예고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사초가 본디 언골에 있던 식물이 아니라 국경 부근 폐사군 땅에 피어 있던 식물이며, 고대인들이 이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를 새기기까지 했는데, 그것을 발견한 것은 금지된 땅에 들어간 어린 아신 혼자뿐이라는 사실.
일단 『킹덤 : 아신전』의 오프닝은 생사초를 먹고 감염된 노루와 그 노루를 잡아먹고 감염된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는데요. 이 감염된 호랑이가 작중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본편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 중에 조선시대에 호랑이가 넘쳐났다는데 『킹덤』에서는 아예 호랑이가 없는 건가 하는 의문이 조금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존재가 없는 취급을 당한 건 아니라 좀비 사태에서 굳이 호환까지 집어넣을 이유가 없었던 모양. 실은 호랑이는 CG 처리가 힘들어서 안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 들지만.
일단 『킹덤 : 아신전』은 여성이 다음 시즌의 빌런이자, 주요 캐릭터로써 비중을 할애해 줬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해요. 계비 조씨는 정치적인 이유로 젊은 나이에 늙은 왕에게 시집을 왔고,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는 것은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대사를 이용해 간접적인 묘사로 그치는데 반해,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에게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왔다는 묘사를 후반에 터뜨리기 때문에 야망을 위해 자멸로 치닫는 악녀의 모습이 더 강합니다. 반면, 『킹덤 : 아신전』의 아신은 악녀보다는 시대의 희생자에 더 가깝게 서사가 부여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놀랍게도 이 『킹덤 : 아신전』의 주요 등장인물인 민치록과 아신의 관계는 본편의 주요인물인 안현 대감과 영신의 관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2시즌에서 안현 대감이 희생되고 그의 위치를 민치록 대장이 이어받을 거라는 예상은 한 적 있었는데 말이죠.
본편에서 민치록 대장은 중전 계비 조씨에 의해 희생당한 산모와 여자아기들을 구하려고 했고 궁에서의 좀비 사태 때 감염된 중전의 머리장식을 건지며 허탈함과 복잡함을 느끼는 연출이 나옵니다. 즉, 작중 중전의 야망 때문에 희생당한 여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역할은 오직 민치록에게만 부여된 셈이에요. 그러나 외전인 『킹덤 : 아신전』에서 민치록이 여진족 출신인 여성 아신과 그 부락을 이용하여 희생시킨 건 명백한 사실이며, 살아남은 아신을 남성들만 있는 군영에 방치함으로써 그녀를 성범죄에 노출되게 만든 건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돼요. (성범죄 부분은 민치록도 몰랐던 것으로 보이지만... )
적어도 『킹덤 : 아신전』의 내용만 본다면 주인공인 아신이 아버지를 사지로 몰고 부락을 희생시킨 민치록을 원수로 여겨 어떤 방법으로 복수한다고 해도 납득이 가는 수준. 또한 민치록에게 속아 아신의 아버지와 부족을 희생시킨 파저위 여진족 수장인 아이다간 역시 아신에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고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밀정 노릇을 하며 파저위 부락에 잠입한 아신이, 사지가 잘리고 고문당한 채 가축 취급을 받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장면은 작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충격적인 장면은 아신이 희생당한 자기 부락 사람들을 생사초로 살려 좀비로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괴롭힌 조선군을 식량으로 갖다 바치는 것까지. 이 장면이 은근히 사이다면서도 묘하게 착잡한 부분이었는데 영신과 유사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아신의 끝은 파멸일 거라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반면 『킹덤 : 아신전』의 민치록 대장과 아신의 관계와 비슷한 본편의 안현 대감과 영신의 관계는 나쁘지 않게 마무리된 편입니다. 일단 본편에서 수망촌의 병자를 희생하여 왜구를 물리치는 방안은 어디까지나 조학주가 먼저 낸 것이며, 안현 대감은 고민을 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수락을 한 것으로 연출이 되어 있어요.
이후 안현 대감은 수망촌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들의 묘비를 일일이 만들어주었고 수망촌의 병자들을 죽일 때도 안현 대감의 수하인 덕성이 가책을 느끼는 모습이나 죽기 직전 영신에게 사죄를 하는 모습, 또한 가노 대장이 3년 전 자신들이 한 짓에 죄책감을 느끼는 묘사를 넣어 그들이 비록 국가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는 행적을 벌이긴 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는 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캐릭터가 공과 과가 있어도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그 입체성이 안현 대감이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셈이고요.
어쩌면 안현 대감의 이런 인간성 때문에 영신도 더 원한을 품지 않고, 빌런인 조학주에게만 복수심을 불태운 것일지도. 안현 대감과 달리 조학주는 죄의식이라곤 없는 인간이었으니... 그리고 안현 대감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까지 했고요.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민치록은 안현 대감의 롤을 이어받은 것 같으면서도 그 묘사에서 한계점이 느껴지기도 해요. 본편에서 안현 대감과 영신의 관계가 화해에 가깝게 마무리된 것과 달리 - 안현 대감의 직접적인 사죄보단 그 휘하의 인간들이 영신에게 미안함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간접적으로 묘사됨 - 민치록과 아신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안현 대감의 역할이 민치록에게 대입된다면 민치록은 결국 다음 시즌에서 희생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있고요. 민치록과 아신의 관계가 화해가 될지 말지는 오로지 작가님 마음.
민치록 대장이 외전에서 보호해 주는 이 없는 여성(아신)을 희생시켰다는 행적과 본편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자들의 희생을 조사하고 그녀들을 기억하는 역할은 상당히 모순되기 때문에, 적어도 3시즌 내에서 민치록이 가진 아신에 대한 죄책감 내지 그 심정이 묘사되어야만 저 모순점과 비판점이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심지어 3시즌 내의 빌런이 아신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민치록과 아신의 대립은 반드시 나오게 될 것 같네요.
『킹덤 : 아신전』에서 잠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건 파저위 여진족의 수장인 아이다간입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인상적인 것과는 별개로 하는 짓은 잔인하기 그지없는데 본편의 빌런인 조학주나 계비 조씨와는 결이 다른 잔인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해도 좋아요. 조학주와 계비 조씨가 권력, 궁에서 정점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권모술수 타입이라면 아이다간은 무자비하게 폭력과 살상을 행사하는 인물로 묘사돼요.
느낌이 하나의 캐릭터라기보단 일종의 재난, 전쟁의 공포를 의인화한 인물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샨유가 전쟁의 폭력성을 빗댄 것처럼 아이다간도 비슷하게 전쟁의 참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느낌.
『킹덤 : 아신전』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아신은 아이다간의 무리를 향해 활을 쏘는데 암만 아신이라고 해도 아이다간 같은 인물을 앞에 두고 자살행위와 같은 행보를 벌일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예상엔 생사초의 즙을 묻힌 화살을 쏘아 그 효능이 어떤 건지 그에게 보여주면서 후에 있을 전쟁에서 좀비 병사를 이용하여 조선을 압박하도록 유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추측돼요. 이미 본편에서 왜구를 무찌르려고 생사초로 되살린 좀비를 이용했다는 언급이 나왔고 작가 인터뷰에서 3시즌에서 더 큰 역병이 나온다는 기사도 검색되는 걸 보면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요. 설령 이 추측이 아니더라도 아신이 생사초를 이용해 여진족을 함정에 빠뜨릴 것은 확실해 보이고요. 어찌 됐든, 제발 『킹덤』 3시즌이 나오길 고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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