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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원숭이 빨간 피터』 리뷰

by 0I사금 202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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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어도 그 이름은 한번 정도 들어본 작가일 겁니다. 정확하게는 소설을 아예 안 읽은 것은 아니요, 좀 오래전에 축약된 버전이랄지 청소년용 문고본이랄지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내용의 결말이 맘에 안 들어서였는지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일단 가족에게 돈 벌어주는 물주 취급받는 호구 타입의 주인공이 갑자기 벌레로 변신해서 가족들한테 거부받다가 결국 쓸쓸하게 죽는 그런 엔딩이라 당시 읽던 맘에 좀 거북함이 느껴졌던 걸지도...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좀 당황했다고 할지 참신하다고 느꼈다고 할지 묘했던 것이 소설 상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이 처음엔 놀라다가 나중에 당연스레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황이라던가 하여간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그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 때문에 좀 놀랐기도 했고요.


이번에 빌려온 『원숭이 빨간 피터』에서 작가 설명을 보니 원래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 그런 초현실적인 경향이 있고 옥스퍼드 사전에는 '카프카적'이란 용어가 '섬뜩한, 우연히 등장하는, 실제를 넘어서는' 등등의 의미로 실려있단 것을 보면 그 작품 세계가 얼추 이해되기도 했어요. 『원숭이 빨간 피터』의 원제는 책표지에 자그맣게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라고 적혀 있는데 개인적으로 『원숭이 빨간 피터』란 제목이 어딘가 우화나 동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서 좋단 생각입니다. 소설도 그다지 긴 분량이 아닌 데다 이 번역본에는 삽화도 섬세하게 실려 있어서 전체적으로 한편의 우화를 보는 느낌인데, 읽고 나서 속이 답답해지는 것은 전작인 『변신』 때와 엇비슷해요. 왜냐하면 이 소설 『원숭이 빨간 피터』의 내용은 자연 속에서 살던 원숭이 '빨간 피터'가 인간에게 사냥당한 뒤 배에 실려오면서 탈출을 포기하게 되고 대신 인간을 따라 하는 것을 탈출구로 삼아 결국 인간화되긴 되었으되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소설이거든요.


원숭이가 배의 감옥에 갇혀 탈출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이나 원래 타고난 본성을 포기하고 인간을 따라하면서 그 역겹다던 술을 들이켜거나 하는 묘사를 보면 꽤 고통스러운 것이 느껴지는 데다 나중에 인간처럼 되고 나서도 사람들의 구경거리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소설 주인공이 원숭이고 전반적으로 좀 유머러스하게 표현을 해서 그렇지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인데 어째 다른 원숭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들을 비교하면 이 『원숭이 빨간 피터』의 주인공은 작가를 잘못 만났는지 굉장히 불행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요. 뭐, 소설 속에서는 나름 탈출구를 찾아서 만족한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요. 주인공이 원숭이일 뿐이지 이것이 작가의 풍자라고 한다면 획일적인 시스템이나 구조, 남의 시선등을 반드시 의식하게 하는 그런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와닿는 게 남다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거기다 후반에 실려있는 작가의 인생 행적 등을 살펴보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겪은 불행은 어쩌면 작가의 삶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책의 후반부에 실린 부록에 의하면 카프카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아버지에게 시달린 데다 커서는 독일 엘리트들에겐 유대인이란 이유로 배척받고 유대인들에겐 시오니즘을 따르지 않는단 이유로 거부당했다 하니 평생 누군가에게 압박을 받고 산 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인물의 모습들은 다름 아닌 작가의 모습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재미있게도 카프카의 소설은 소설 자체보다 어딘가에서 인용된 구절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심리학 서적에도 카프카의 일화들이 어떤 예시로 실려있거나 예전에 재밌게 봤던 웹툰에서도 주인공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사로 소설 내용이 인용된 걸 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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