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 『설국열차』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빌려오게 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었는데 영화를 보러 간 시기가 2013년 8월이고 책을 발견한 시기도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지난 때도 아니었으니 당시 도서관에 들어온 그래픽 노블도 영화 인지도에 힘입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일단 그래픽 노블을 읽기 전에 영화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서 영화와 원작의 스토리 라인이 많이 다르단 이야기는 일찍 알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여러 부분이 영화가 달리 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좀 놀라기도 했고요. 다 보고 나니 영화는 원작 만화의 설정만을 빌려왔다고 봐야 할까요. 대개 번역되어 나오는 그래픽 노블들이 그렇듯 이 『설국열차』 역시 책이 좀 두껍고 크기가 큰 편입니다.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기반이 되었다 싶은 내용은 1부에 해당하는 ‘탈주자’ 편입니다. 1부의 주인공은 꼬리칸에서 탈출한 남자 프롤로프와 그를 도우려다 얽히게 되어 후에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인권단체 소속의 아들린 벨로로 이 둘은 질병을 옮긴단 누명을 쓰고 열차 안에서 군인들에게 쫓기다가 엔진실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아들린이 사고로 얼어 죽게 되고 엔진실에 도달한 프롤로프는 엔진실의 관리자로부터 기계를 관리할 임무를 물려받는 것이 1부의 결말. 전반적으로 만화책에서 프롤로프가 탈출한 꼬리칸의 실상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고 다만 프롤로프의 회상으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이 일어나는 곳 정도로 언급될 뿐입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꼬리칸의 모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는 편이었다고 할까요?
아마 이것은 영화가 드러내는 주제가 원작 만화와는 좀 다른 방향에 있기 때문에 이런 각색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보면 기후가 빙하기로 변한 것도 영화와 원작이 약간 다르게 묘사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주인공들의 캐릭터도 상당히 다른 것이 영화 속 주인공인 커티스의 캐릭터는 오히려 2부 선발대와 3부 횡단의 주인공인 선발대원 퓌그에 좀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프롤로프의 배경에 퓌그의 성격을 가져다 놓은 게 커티스가 아닐까 싶더군요. 영화와 달리 원작 만화에선 러브라인이 빠지지 않는 것도 특징인데요. 원작 만화의 1부가 어느 정도 영화의 잔상을 느낄 수 있다면 2부부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2부의 제목인 선발대는 열차 내에서 훈련받은 대원들을 밖으로 내보내어 옛 문명이 있던 곳에서 쓸 만한 물건을 가지고 오는 역할을 하는 이들로 주인공인 퓌그가 이 소속이며 그의 연인이 되는 여자 주인공 발은 열차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케넬 위원의 딸입니다.
2부의 설국열차는 쇄빙열차라고 불리는데 아무래도 꼬리칸을 잘라낸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원작 내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인구 수가 감당이 안 되거나 열차 유지가 어려워지면 열차를 꼬리에서부터 떼어내는 일들이 자주 있던 모양인 듯. 쇄빙열차의 사람들은 현재 타고 있는 열차가 다른 열차와 부딪힐까 봐 공포에 빠지는데 전반적으로 2부의 모습은 열차 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선 꼬리칸을 벗어나는 중반부터 좀 늘어지는 감이 있어서였는지 꼬리칸 외에 열차의 이미지는 좀 인상이 흐린 구석도 있는 반면에 원작에선 이 열차에서 사람들이 삶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즐기는 것을 보면 저 좁은 곳에서도 아직은 살만한가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가축을 길러내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며 후반에 가선 산아제한까지 성공했단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영화에선 열차 내의 자원 부족이 상당히 중요하게 언급되어 어떤 식으로든 열차를 벗어나 다른 탈출구를 찾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반해 원작의 『설국열차』는 그런 경향이 적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열차 내에서 미친놈들이 등장하여 사고를 일으키고 열차의 일부를 잘라내는 등 피해가 생겨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열차는 잘만 굴러가고 있고 그 와중에 가상현실을 비롯하여 사람들을 현혹할 기술까지 마련하는 판이니 참으로 인간 적응력이 대단하단 생각도 드는데 이건 어차피 세상은 변할 수 없으니 살만한 내부에서나마 할 수 있는 거 하고 살자는 심리인 걸까요? 어찌 보면 현실하고 비슷한 구석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인간들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이런 게 극단적이 되면 별별 이상한 인간 군상들이 다 나오는 게 보통의 순리인지라 어떤 작자들은 자신들이 탄 열차가 실은 우주선이며 실은 우주를 여행한다는 종교를 퍼뜨리는 모습도 묘사되는 등 전반적으로 막장스러운 인간들이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자주 묘사됩니다.
그리고 열차 밖의 기후에 대해선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얼어붙은 시체와 옛 시가지의 모습을 통해 원작 내 세계관에선 외부의 변화는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만화의 절망적인 결말을 암시한단 생각이 들더군요. 3부 ‘횡단’ 편에서도 여전히 2부의 주인공인 퓌그와 발이 주역으로 활약하는데 내용은 바다 건너 어느 곳에서 음악으로 전해지는 신호를 포착하고 열차 내에서 지도자들의 내분과 싸움이 일어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신호의 진원지를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열차 밖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지만 갖은 희생 끝에 도착한 그곳에는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기계만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허무한 결말이며 굉장히 암울한 모습으로 만화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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