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으레 그러하듯이 신간 코너를 대강 훑어봤습니다. 눈에 띄는 재미있을 법한 책이 없나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기대로 책장을 살펴봤는데 책장 구석에 조그맣게 꽂혀 있는 이 책이 들어오더군요. 제목은 아주 단순하게 '판타지'인데 그 옆에 자그맣게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라는 시리즈의 제목이 붙어 있어서 혹했습니다. 이런 작법서라던가 평소에 잘 찾아보기도 하는 경향도 있었고요. 장르 가이드의 2권이니 그럼 1권이나 다음권은 없나 하고 찾아봤지만 딱히 보이지는 않는 것이 있더라도 대출 중이거나 이 책만 들어왔거나 하는 느낌인데 다른 시리즈들은 무엇이 있나 책의 속표지를 살펴봤더니 설명이 붙어있었습니다. 1권은 로맨스고, 다음 3권은 미스터리인데 로맨스는 제 취향이 아닌지라 딱히 없어도 아쉽진 않지만 미스터리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라 3권도 있었으면 같이 빌려올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대출했습니다.
책은 굳이 웹소설을 쓰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장르 소설 마니아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일단 서론에서는 판타지 장르의 정의부터 설명하는데 우리가 판타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게도 『반지의 제왕』 같은 고대 혹은 중세 유럽풍의 검과 모험 이야기일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판타지의 세계관을 정립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반지의 제왕'이기도 할 텐데 실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다면 굳이 고대나 중세 유럽 풍의 이야기가 아닌 환상적인 요소, 초자연적인 요소,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입하는 작품으로 그 배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장르인 공포나 SF와 판타지의 관계도 연결되거나 중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책의 정의에 따르면 판타지는 "환상적인 요소를 가진 세계에서 그 세계에 있는 신비한 법칙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환상적인 요소나 비현실적인, 상상의 요소가 개입하는 것이 판타지의 특징이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해서 판타지 소설이 개연성과 현실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책에서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허구의 세계이지만 그 허구의 세계는 허구의 인물들에겐 우리와 마찬가지로 현실인 셈이므로 허구의 세계에서도 나름의 현실적인 법칙과 제약이 존재하며 허구의 세계를 독자에게 와닿게 만들기 위해서 그것에 대한 제대로 된 설정과 현실적인 묘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요. 예를 들어 괴물이 출현하고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라면 그 세계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반응하는가와 같은 것들. 이를 무시하고 작가의 편의대로 법칙과 제약을 무시한 채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극히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책에 의하면 세계관의 배경에 따라 판타지 역시 세분화되며 이것 역시 책의 중반에서 세밀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분류가 재미있습니다. 이 분류 명칭도 판타지 장르의 변천에 따라 의미가 변화한 경향이 있는데 분류에 따르면 아예 가공의 세계를 다루는 하이 판타지, 보다 현실을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요소가 적게 개입하는 로우 판타지, 그 외에도 차원 이동 판타지나 동화-실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장 무리 없이 차용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 역사도 깊다 할 수 있는 장르-, 검과 마법 이야기, 암울한 세계관과 잔혹함을 강조하는 다크 판타지, 현실적인 도시에 초자연적 요소가 결합하는 도시 판타지, 실제 역사에 환상적인 요소가 결합된 역사 판타지, 슈퍼 히어로 판타지, 일상과 비일상을 융합하여 만든 마술적 사실주의, 동양의 『서유기』나 『봉신연의』와 같은 신마소설 부류 등 상당히 내부적으로 또 장르가 갈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판타지에 영향을 깊이 받은 다른 매체, 영화와 게임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아무래도 게임 분야가 영화 분야보다 판타지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판타지 장르에 영향을 받는 분야는 물론, 이 장르를 쓰기 위한 조언, 그리고 판타지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빠지지 않는데 여기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들이 좀 있을지 모르나 꽤나 유명한 작품들이 상당수 소개되어 있습니다.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러 유명 작품들이 간단하게나마 소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 중에서는 제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들 영화화도 된 바 있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포함, 고전인 『서유기』는 물론 일본 쪽 판타지 소설인 『십이국기』나 『음양사』 시리즈와 같은 유명 작품도 빠지지 않으며 또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도 한 번씩 언급되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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