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 귀신 이야기 같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 검색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종종 보면 이런 무서운 이야기나 도시전설 가운데 음모론과 겹치거나 혹은 음모론의 영향을 받았다 싶은 이야기들도 적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이런 무시무시한 가공의 이야기들은 그 스케일이 개인이나 한 공간, 사적인 집안 이야기에서부터 사람이 여럿 모인 단체, 집단에 이르는 경우도 있고 여기서 더 스케일이 커지면 어떤 경우는 큰 조직이나 국경을 넘어서는 정도에까지 이르기까지 합니다. 가끔 진위 여부에 휩싸이는 이야기들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킬링타임 용으로 읽을 만한 것들이 있는데 문제는 이런 상상력이 단순 괴담이나 도시전설 수준이 아니라 음모론으로 번진다면 걷잡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읽은 『루머사회』와 같은 책이나 『음모론의 세계』와 같은 책에서 개인적인 공간에서만 머문다면 그저 그런 잡담이나 카더라로 넘어갈만한 이야기들이 정보의 허점과 빈틈, 그리고 현재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인해 이야기의 전파가 빨라지면서 음모론으로 발전하는 경우에 대해서 다룬 적 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음모론의 본질이나 그 전파 양상은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거의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번에 빌려온 이 책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의 저자는 중국인이며 음모론의 실체와 그것이 왜 생겨나는지 실체를 까발리면서 현재 중국 사회에 퍼진 음모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을 가하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중국 내의 음모론은 실은 예전부터 서양권 매체 대개 미국에서 파다하게 퍼졌던 이야기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요.
책의 저자 역시 유명한 음모론들을 다양하게 다루면서 이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실체와 그 음모론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중국이 최근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여 현대의 음모론이 퍼지는 토양이 되었다 볼 수 있는데 물론 음모론은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존재했으므로 인터넷 매체 발달 이전에도 중국 내에서 중국 나름의 음모론은 있었을 겁니다. 다만 폐쇄적인 사회 특성상 현재와는 약간 다른 구조로 음모론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지요. 하여간 음모론이 가장 성행하는 국가는 역시 인구로 보나 구성원으로 보나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미국 내에서 음모론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실제로 책에서 설명하는 음모론 사이트나 음모론 신봉자들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거나 관련 내용을 강연하는 일 등을 통해 수익을 충당하는 구조가 보이기도 하고요.
게 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황당무계한 내용을 전파하는 경우도 있겠고 진지하게 음모론을 실제로 믿는 케이스도 있을 법한데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음모론 혹은 음모론 신봉자들의 10가지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설명해줍니다. 이 부분만 잘 읽어도 음모론의 전반을 잘 파악할 수 있을 듯한데 그 특징은 1. 황당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오기 힘든 근거(예를 들면 귀신의 유무 같은 것)를 끌고 와 반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 2. 특정 집단이나 인물을 악마로 만들어 음모론의 실체로 규정한 뒤 실제 사건을 간편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것, 3. 그렇게 악마로 규정한 인물 내지 집단에 끊임없이 낙인을 찍는 것, 실제로 2와 3 같은 경우는 역사 속에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질 경우 약자 집단을 상대로 무수하게 발생해 온 패턴이기도 합니다. 4. 큰 그림보다는 사소한 디테일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단서로 여겨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것, 5. 잘못된 딜레마만을 끌고 와 둘 중 하나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또 6. 음모론의 허점을 지적하면 다른 논리를 끌고 와 허점을 메우는 골대 옮기기, 7. 특정 사건의 피해자와 이익자가 발생할 경우 그들에게 초점과 원인을 돌리는 것, 8. 한가지 음모론을 믿으면 그 황당한 논리 때문인지 끊임없이 다른 음모론만을 믿게 된다는 점, 9. 크고 중대한 사건일 경우 거기에 좀 더 복잡한 원인이 있을 거라고 믿는 귀납법의 오용, 책의 사례를 든다면 유명인의 죽음이 단순 약물 중독일 리 없고 뭔가 더 큰 음모가 끼어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것들이고요. 마지막으로 음모론자들의 특징은 10. 편집광이라는 점인데 음모론자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우월한 입장이며 현재 세계의 질서는 잘못된 것이라 믿고 그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음모론자들의 특징은 거기다 사료나 정보를 고르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합리화할 수 있는 정보만 편식하는 경향이 있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이런 음모론자들은 앞으로도 많이 출현하면 출현했지 줄어들 거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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