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재방송으로 보게 된 『벌거벗은 세계사』 122화는 홈페이지를 뒤져보면 2023년 10월 24일에 방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정상 『벌거벗은 세계사』의 본방을 사수하기 어려워, 재방송은 볼 기회가 된다면 시청을 하게 되는데 마침 이번에 보게 된 회차가 바로 정신질환의 역사를 다룬 122화였어요. 가능하면 최근 방영분을 보고 싶었지만, 재방송을 내 뜻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 방송이긴 합니다만 왠지 다루는 주제가 재미있어 보여 그대로 TV 앞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122화의 강의를 담당한 교수님 정보. 참고로 게스트 관련 정보는 아래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news.nate.com/view/20231024n37450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신병의 종류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데요. MC와 게스트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신병 종류 - 우울증이나 조현병, 불면증이나 ADHD 등을 언급하기도 하는 등 현대인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병명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강의에 따르면 정신병은 우리가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신경증과 정신증 두 갈래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둘을 구분 짓는 차이는 현실 판단력이 제대로 존재하느냐 여부인데 신경증은 정신병으로 고통은 받지만 현실적인 분별력은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가능한 반면 정신증은 환상이나 환청, 망상 때문에 현실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하네요.
정신병 혹은 정신의학 자체는 연구가 많이 늦어진 분야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과거 사람들은 정신병에 대해 무지했거나 신의 저주 혹은 악마가 빙의된 현상 정도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에 정신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비교해 보면 그것을 뇌의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한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고대 사람들의 태도가 중세 사람들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대에는 히포크라테스 같은 의사가 있어 정신병의 원인을 탐구하기도 했고 일반인들은 신전의 사제를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도 한 반면 중세는 정신질환자들을 아예 악마나 마녀로 몰아 처형했다고 하니까요.
마녀사냥이 유행했을 당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치매 환자를 마녀로 몰아 산 채로 화형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끔찍했던 사례.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환자들의 인권이 무시당한 사례가 언급되던데 유럽의 시골 마을 같은 경우 정신질환자들을 오두막 안의 구덩이에 묻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다음 방치하거나 음식만 가져다주는 등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했다는 것이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어쩌다 프로그램을 같이 보시게 된 엄마 말씀이 과거 한국에서도 저런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다 보면 정신질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은 엔간한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한 케이스가 많다는 생각이. 이후 다뤄지는 정신병원 이야기는 그야말로 날 것의 공포에 가까웠어요.
이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이 더 하락하게 된 계기에는 산업혁명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반전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은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 편리하게 바꾸었지만 내부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과 빈부 격차, 환경오염과 전염병 등 명암이 뚜렷하다는 게 사실이에요. 뭐랄까, 기술의 발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신적인 부분에선 역으로 퇴보했다는 느낌일까요? 산업혁명 이후 철도가 대거 영국에 보급되면서 철도의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시간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덤.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람 취급은 아니어도 그래도 가족이나 지역 단위로 정신질환자들을 보호했다고 한다면, 산업혁명 이후는 지방과 시골의 주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면서 다수의 정신질환자들이 대거 방치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이 정신질환자들까지 도시로 흘러들어와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영국 정부에서 정신질환자들을 한 번에 수용하는 병원을 만들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저 시절에 인권 개념이 있을 리 만무하고, 정신의학은 아직 대두되기도 전이었으니 수용된 정신질환자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감금된 짐승 취급에 가까웠습니다. 치료 방법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고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정신질환자들을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로 제공하는 등 보다 보면 서양의 매체에서 왜 정신병원이 꾸준히 공포의 장소로 등장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이런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정신질환자들의 환경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정신병을 치료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바로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의사 필리프 피넬입니다. 필리프 피넬은 수용소의 끔찍한 환경을 목도한 뒤, 정신질환자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들을 감금된 상황에서 풀어준 뒤 제대로 된 치료법 '도덕적 치료'를 강구하게 되는데요.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특정 상황을 상황극으로 꾸며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든다거나, 허언이나 망상 장애를 가진 환자의 분별력을 기르기 위해 그 말에 대꾸하지 않는 등 정신질환자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그 증상을 차트처럼 기록하는 현대적인 치료법을 도입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신기한 점은 당시 사회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일반적이다 못해 당연한 시대에 저런 혁명적인 치료법을 제안한 것은 놀랍다 못해 신기할 정도였어요. 특히 필리프 피넬은 현대의 '사이코패스'란 단어를 처음으로 정립한 인물이라는 데서 더욱 놀라웠고요.
이후 필리프 피넬을 이어 정신 의학의 계보를 이은 학자들의 등장으로 정신 의학 분야가 좀 더 발달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계보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뻗어나간 것은 아니라, 어떤 이들은 정신병을 좀 더 세세하게 관찰하여 증상과 치료법을 연구한 케이스도 많지만 어떤 경우는 정신질환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케이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기치료 같은 경우는 분명 시도 자체는 생체 실험에 가까웠는데 효과는 있었고 1차 세계 대전 셸 쇼크(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군인들의 치료법으로 쓰였다는 놀라운 사례도 있었고요. 이건 얻어걸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공격적인 정신질환자들의 전두엽을 제거하여 온순하게 만든다는 '전두엽 절제술'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현실이 공포영화를 압도한 사례였습니다. 해당 회차에서 이 부분 설명이 나왔을 때 같이 보시던 엄마는 끔찍함을 못 견디고 그냥 안방으로 들어가셨을 정도. 이걸 보면 서양의 매체에서 왜 정신병원이 꾸준히 공포의 장소로 등장하는지 이유를 다시금 알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여러 시도와 실패가 따르긴 했고, 아직 사회 일부에선 편견이 많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현대에 와서 정신병은 뇌의 병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치료 방법을 찾는 등 강의 후반부에는 예전보다는 밝은 전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정신질환 치료는 약물에 의존하고 있는데, 완전한 치유가 가능한지까지는 이쪽으로 무지한지라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대는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게 되는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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