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는 사정에 따라 본방을 볼 기회가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지난 171화(로마제국 몰락사)는 본방을 볼 수 있었지만 이번 172화는 본방을 보기 애매해져서 나중에 재방송으로 감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같은 세계사라고 해도 흥미가 더 가는 쪽이 있는데 영국이나 러시아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평소보다 더 재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강의를 담당한 교수님 정보. 게스트 정보는 아래 기사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https://news.nate.com/view/20241008n30472?mid=n1101
이번 『벌거벗은 세계사』는 러시아의 혹한을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한때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했던 러시아 오이먀콘 지역의 혹한과 그 혹한이 만들어낸 거주 문화 등이 설명되는데, 영하 71도까지 내려가는 날씨 탓에 땅이 늘 얼어있어 화장실 배관 공사마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에 많이 보던 재래식 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라고요. 보면서 저런 지역에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런 지역은 살아남기 위해서 모피를 쓸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현재는 인조 모피로 대체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
실제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원주민 부족들인 경우 근방 시비르 칸국에 보호비 명분으로 모피를 공납했다는 설명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시베리아를 정벌하기 직전까지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수렵 생활을 유지했고 자신들이 필요한 이상만 모피수(모피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을 지칭. 담비나 해달, 여우 종류)를 사냥했으며 과하게 모피를 모으지 않았다고는 해요. 이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건 러시아의 모피 원정대가 시베리아를 개척하기 시작하면서였어요.
본격적으로 모피의 수요가 급증한 건 유럽 왕실에서 모피를 사치품으로 선호한 탓도 있었지만 이 모피가 왕족이나 귀족의 기호를 넘어 서민층에게까지 보급이 된 건 13세기 급격하게 찾아온 소빙하기로 인한 한파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역시 기후 변화가 제일 무서운 거라고 해야 할지... 따뜻한 기후였던 영국의 템스강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였다고 하니 방한복이었던 모피의 수요가 급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 소빙하기를 맞아 러시아(루스 차르국)가 본격적으로 모피를 수출하면서 강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다량의 모피를 얻기 위해 본격적인 시베리아 개척 - 실상은 정벌 -이 시작된 시기는 이반 뇌제 시절부터였는데 이반 뇌제는 러시아를 제국의 반열로 일으킨 대단한 군주면서 동시에 폭정을 일삼고 자기 아들까지 죽게 만든 폭군이라는 상반된 평을 갖고 있다고 해요.
처음 시베리아 땅을 개척하기 위해 러시아 왕실은 예르마크라는 코사크 도적 출신에게 면죄부를 조건으로 원정단을 꾸리게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원정단은 이반 뇌제의 직접적인 명령보다는 모피를 얻으려는 부유한 대상인 가문의 후원 아래 첫발을 떼게 되는데요. 당시 시베리아는 러시아인들에게도 미지와 죽음의 땅으로 여겨졌고 예르마크를 위시한 모피 원정대의 험난한 여정에서 알 수 있듯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예르마크의 원정대는 선진적인 총과 대포를 이용해 시베리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타타르인 국가인 시비르 칸국을 일시 점령하기는 했지만 끝내 식량 부족과 열세로 몰살당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르마크의 첫 번째 원정은 저렇게 원정단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이후 러시아의 상인 가문이 아닌 왕실 쪽에서 직접 지원을 나서게 되면서 시베리아 개척의 판도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시베리아의 모피수는 물론이요, 당시 시베리아 지역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에게 지옥이 시작된 셈이에요. 미지와 죽음의 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시베리아에도 여러 소수 부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모피 원정대가 모피를 얻기 위해 이들에게 한 짓은 아메리카 대륙 개척 시절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악행과 너무나도 유사했습니다. 원주민들을 협박하여 모피를 세금 대신 빼앗고, 그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더 많은 모피 조공을 요구하거나 기준에 못 미치면 살해하고 여성들을 성 노예로 삼는 등...
심지어 유럽인들이 옮겨온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절반이나 되는 인구가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까지요. 이는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유럽인들이 접촉을 하지 않은 덕에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이 몰고 온 질병에 취약했다는 게 원인으로 개척의 이름을 내세운 역사의 뒤편에는 아주 끔찍한 비극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모피를 얻기 위해 사냥이 지속되었고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물들의 씨가 말랐다는 사실 역시 비극. 더 무서운 건 러시아 제국이 기어이 모피수를 더 얻으려고 바다 건너 알래스카 땅은 물론 캘리포니아에까지 땅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동물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냥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스텔러바다소라는 동물의 멸종은 제어 없는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지어 바다소들이 사냥당한 것도 동료가 잡히면 도망가지 않고 구하려고 하는 습성 때문이라는 사실이 좀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과거 모피 사냥꾼들의 사냥 방식이 현대의 허락된 사냥 방식보다 더 인도적이었다는 게 아이러니였어요. 그렇다고 탐욕에 찌들어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짐승들의 씨를 마르게 했던 과거의 모피 사냥이 결코 합리화되는 건 결코 아니지만요.
기후 변화라는 원인에 인간의 탐욕과 자제력 없는 행동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번 172화에서 여실히 알려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당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던 지역을 목숨을 걸면서 개척한 도전 정신은 높이 살만하겠지만, 그에 따라온 끔찍한 피바람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모피수를 얻겠다고 얼마나 멀리 떠난 건지 모피 원정대가 청나라 국경까지 내려오는 사태도 발생했다고 하니까요. 바로 조선군이 지원을 나섰다는 나선정벌 이야기였어요.
'TV > 예능 및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인류는 어떻게 정신질환자를 미치광이로 다루었나 (2024. 10. 27. 작성) (0) | 2025.01.03 |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뻘밭에서 2천조의 땅으로! 세계 경제의 상징 맨해튼 (2025. 1. 2. 작성) (0) | 2025.01.02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위기의 지구, 인류 멸망의 시그널 (2024. 10. 8. 작성) (0) | 2025.01.01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천년 제국 로마는 어떻게 몰락했나 ( 02024. 10. 2. 작성) (0) | 2024.12.31 |
『벌거벗은 세계사』 리뷰 : 신의 선물인가? 저주인가? 플라스틱의 역습 (2024. 9. 27. 작성) (0) | 2024.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