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리뷰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 감독의 전작이었던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고, 특히 『사바하』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최애 영화 중 하나로 손꼽는 영화이기도 해서요. 엑소시즘을 한국적인 분위기로 살린 『검은 사제들』과 풍수와 오컬트 요소를 섞은 『파묘』 역시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따지면 『사바하』 쪽이 훨씬 더 크다고 하달까요. 『파묘』도 흥행 돌풍이었겠다, 잘만 하면 『사바하』도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생기게 되었을 정도. 하여간, 『파묘』도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와 비슷한 소재를 취하면서도 생각과는 다른 전개가 많이 나와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이 감독의 작품들은 시리즈물로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감상은 덤이며 크로스물도 괜찮을 듯 해요.
영화 『파묘』는 무당인 화림(배우 김고은 분)과 봉길(배우 이도현 분)이 미국의 부유한 한인 가족에게 의뢰를 받고 그들 가족을 괴롭히는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 풍수사인 상덕(배우 최민식 분)과 장의사인 영근(배우 유해진 분)과 함께 잘못된 묘를 이장하려고 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문제의 한인 가족은 여러 번 유산 끝에 겨우 태어난 아들은 물론이요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의문의 존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무당인 화림은 그 원인으로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잘못 썼다고 판단을 내리게 되거든요. 여기까지만 보면 왠지 흔한 공포물 소재에 주인공이 5억이나 되는 사례금을 받을 예정이라 건수를 잡았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사짜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건 전작인 『사바하』의 주인공이었던 박웅재와 유사하기도 하는데 『사바하』나 『파묘』나 주인공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 같아도 능력은 진짜배기라는 전개는 유사하더라고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묫자리를 잘못 써서 악귀가 된 귀신과 주인공들이 싸우는 내용인가 싶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예측하지 못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반부가 무속과 오컬트 소재를 그래도 현실적으로 풀어낸 느낌이라면 후반부는 판타지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전작인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에서도 초자연적인 존재가 언급되며 그 존재들의 영향력이 있기는 하지만 뚜렷한 실체는 알 수 없었던 반면 『파묘』는 실제로 귀신, 그것도 개념으로 따지면 요괴나 악귀에 가까운 존재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장면이 직접 나오거든요. 보면서 진짜 영화 속에서 불쌍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묘와 가깝단 이유만으로 악귀한테 잔인하게 죽임당한 절의 스님과 근방 축사의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덩달아 사람 죽였다는 누명 쓴 근방의 야생 반달곰까지.
영화를 보기 전 약간의 스포일러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관련 있는 소재가 나온다는 내용만 확인한지라 의뢰를 한 문제의 한인 가족이 실은 친일파 후손 아닐까 하는 예측을 했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중간에 혼령이 관을 빠져나와 자기 손자에게 씌여 해코지를 하는 장면에선 같은 나라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후작 자리까지 얻은 악질 매국노는 죽어서 자기 후손들까지 해코지하는 악귀가 되나 싶었고 그걸 주인공들이 물리치는 내용이라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으로 악질적인 매국노였던 인간은 자기가 충성을 바쳤던 일본에게 죽은 뒤에 이용당한 인물이라는 게 밝혀지는데요. 하지만 그것이 전혀 불쌍하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 식민지의 피지배층이 지배층에게 잘 보이려고 매국질을 해봤자 제대로 받아주기는커녕 시체까지 이용당한다는 데서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풍수사였던 상덕은 의뢰인의 묘지가 악지(惡地)라는 점을 들어 처음엔 이장을 반대하다가 일이 꼬이면서 결국 묫자리에 대해 파고들게 되는데, 문제의 악지에 매국노의 무덤이 생긴 건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걸 파악하게 됩니다. 영화에선 쇠말뚝 소재가 차용되었는데, 여기서 장의사 영근의 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당시 땅에 박힌 쇠말뚝의 99%는 측량 도구였다는 언급이 나오는 부분은 뭔가 현실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영화 나름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대사 같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풍수사인 상덕이 그중 1%는 진짜일 것이며, 그의 말대로 과거 일본의 음양사 기순애(키츠네/여우)가 악귀와 함께 이 땅의 맥을 끊으려고 심어놓은 말뚝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게 밝혀지는데요.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는 이 말뚝을 지키는 존재, 매국노 귀신보다 더 지독한 악귀 - 일본 귀신 '오니'를 제거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더라고요.
이 일본에서 건너온 악귀는 전국시대의 혼령이 사물에 깃든 것으로 추정되며, 실체가 되어 돌아다니는 등 그 모습을 섬뜩하게 묘사하여 공포를 유발합니다. 화림의 동료 무당들의 입으로도 일본 귀신은 다른 귀신들과 달리 악독하여 상대하기 어렵다는 언급이 나올 정도였는데 흔히 각 나라의 괴담을 비교할 때 그 괴담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분석글이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보통 원한을 진 자들을 위주로 해코지하거나 현실에서 직접적인 힘을 쓰지 못하며 사람이 한 짓과 귀신이 한 짓이 구분되지 않게 묘사되는 한국 공포물의 귀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요? 일본 괴담을 보면 일본의 귀신은 좀 더 묻지 마 범죄자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주술성이 강하게 두드러진다고 느꼈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묘사가 제법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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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의 상극이라던가 민속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오컬트 드라마 『악귀』가 생각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굿을 이용해 혼을 부르는 의식 등 민속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해서 볼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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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이 다른 이들에게 일본의 귀신과 정령을 설명할 때 빗자루에 기모노를 입은 정령이 예시로 잠깐 등장하는데 이것이 굉장히 일본 요괴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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