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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십이국기 0 : 마성의 아이』 리뷰

by 0I사금 202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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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서 으레 그렇듯 어떤 책이 들어와 있나 찾아보다가 새로이 출간된 『십이국기』 시리즈가 들어와 있는 게 눈에 띄더군요. 몇 달 전에 『십이국기』 외전 ‘히쇼의 새’가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읽은 기억이 있는데요. 엘릭시르에서 새로 나온 버전은 번역 질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고 삽화도 들어있는 데다 책이 작아 들기에도 편한 게 있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1권을 꺼내 들었다가 조금 순서가 섞여서 그 옆에 숫자 0이라고 쓰인 게 보였는데 다름 아닌 『십이국기』의 모태가 되었을 법한 오노 후유미 작가의 초기 공포 소설 ‘마성의 아이’가 있더군요. 그래서 예정을 바꾸어 이 0권이라 이름 붙여진 것부터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십이국기』 시리즈에 앞서 ‘마성의 아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막 방영했을 무렵 내용이 궁금해서 일찍 도서관에서 찾아 빌려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온 번역본은 지금에야 절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리고 이번에 빌려온 책의 두께가 예전의 책보다 좀 더 두껍단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책의 사이즈가 작아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내용은 대강 기억이 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다만 내용의 분위기가 『십이국기』 본편보다는 몇 번 접해본 오노 후유미의 초기 공포소설 시리즈와 좀 더 유사한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타이키의 기억이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전 겪는 일이란 게 명문 남학교에서 기이한 일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는 일이 태반이므로.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은 남학교를 배경으로 하면서 남자애들이 상당히 점잖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이 나잇대 애들은 좀 더 거칠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지면서 내용의 한축을 이끌어가는 교생 히로세가 학생들에게 얻어터지는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만.


『십이국기』 시리즈와 좀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나름 공포소설로서의 특징이나 분위기는 초중반까지 잘 지켜지는 편으로 오노 후유미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자주 언급된 ‘가미카쿠시’가 주원인이라거나 다카사토와 얽혀 죽는 사람들이 그를 적대하고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인물들이 아닌 선의로 다가간 사람들도 다수 있었기에 그 죽음이 좀 더 당황스럽고 미스터리하다는 점 등. 그럼에도 폭풍의 중심에 있을 다카사토 자체는 어떤 악의도 없으며 다카사토의 심리 자체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묘사가 적어서인지 굉장히 신비롭게 표현됩니다. 그리고 내용 중반 중반 분위기를 전환하듯 등장하는 렌린의 이야기는 십이국 세계관과 따로 떨어놓고 보면 그야말로 공포영화 분위기를 띄기도 합니다. ‘마성의 아이’가 공포소설 느낌이 후반 들어 꺾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읽는 입장에서 다음의 『십이국기』 시리즈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다카사토가 미스터리해서가 아니라 그가 십이국 세계의 인물이고 기린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성의 아이가 『십이국기』 시리즈보다 먼저 나온 것을 본다면 결국 십이국의 세계관을 토대를 연 것은 결국 타이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마성의 아이까지 본격적으로 십이국 세계관에 편입시키면 다른 주인공인 요코보다 타이키의 비중이 더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주인공 히로세가 애초에 선의로 다카사토를 대한 것이 아니란 거야 이미 소설을 읽어서 잘 알고 있었고 소설 후반으로 들어갈수록 명확해지는데 다만 이 사람의 정신 상태는 생활에 지장이 없더라도 좀 상담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근거 없는 환상에 매달리는 것 또한 예전에 모 성격분석 책에서 성격 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한다는 것이 떠올랐거든요. 실제로 그가 봤던 환상이 진짜 다른 세상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호하나 아무래도 십이국 세계의 묘사와는 다른 것으로 보아 환상이라는 쪽에 좀 더 추가 실려요. 그의 이런 모습은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초반 장애물 역할을 했던 스기모토 유카와 겹치는데 스기모토 유카가 오리지널이긴 해도 상당한 성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히로세는 마지막까지 그것을 극복했다고 보이진 않아서 어찌 보면 그의 입장에선 참 암울한 결말을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얄팍한 의식을 꿰뚫어보고 지적한 그의 은사인 고토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캐릭터가 두드러지게 되고요. 어찌 보면 고토는 현실 세계 버전 라크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라크슌과는 달리 고토 입장에서 히로세는 요코와 쇼케이 같은 성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지만요. 다시 타이키 - 다카사토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다카사토가 히로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인들과 다르며 고토의 말마따나 히로세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도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은 『십이국기』 시리즈를 읽은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 다카사토의 어머니가 만약 애를 내치지 않고 과보호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내용 전개가 상당히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왜냐하면 일반적인 아이가 과보호를 받는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나중에 악영향밖에 주지 못하지만 다카사토는 애초에 일반인이 아니라 인간과도 다른 존재이므로 오히려 병적일 정도의 과보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십이국기』 시리즈를 관통하는 두 주인공 요코와 타이키의 어머니는 둘 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정작 자식을 지키거나 자존감을 높여주는데는 매우 실패한 행동력이 약한 어머니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요코의 어머니가 그나마 요코의 실종으로 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는 달리 타이키의 어머니는 오히려 더 퇴화하는 정신 상태를 보여줍니다. 차라리 정신이 병들 거라면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르는 자식 보호에 집착하게 되어 하쿠 산시와 고우란의 불안을 나눠 갖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삽화가 예전 읽은 번역본과 달리 실려있어 눈에 띄는 편입니다. 역시 외전인 '히쇼의 새'처럼 큰 컬러 이미지가 책 표지 뒤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책의 중반 중반 등장하는 삽화들도 상당히 그림이 섬세한 편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왠지 다카사토는 애니메이션 버전보다 책의 삽화에서 더 잘생겨진 느낌이 들었고요. (아래 그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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