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개인적으로 『십이국기』 시리즈에서 제일 흥미로운 타이키의 이야기의 첫 장입니다. 아무래도 『십이국기』 시리즈를 대표하는 주인공 중 하나가 타이키인데다가 요코와는 달리 현재까지 나온 연재본을 봤을 때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 그 진행이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십이국기』 번역본이 나오면서 이야기의 서막이 되었을 법한 ‘마성의 아이’가 가장 첫 이야기로 삽입되었기에 타이키의 비중이 과거의 번역본보다 좀 『십이국기』 시리즈에서 커진 느낌입니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의 시작은 마성의 아이의 시작과 유사해서 거의 차이가 없는 듯 한데 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의 프롤로그는 타이키, 일본에서는 다카사토 카나메가 할머니에게 미움 털을 사 한겨울에 마당에서 벌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타이키의 여괴인 산시의 출생과 갑작스러운 식에 의해 타이키의 난과가 휩쓸려가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보면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원작을 잘 살려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책 내부에 삽입된 섬세한 삽화입니다. 태왕 교소우와 여괴 산시, 주인공 타이키의 모습. 왠지 산시는 삽화 버전이 더 예쁜 거 같네요.
보통 평을 찾아보면 엘릭시르 번역본이 더 좋단 이야기가 많은데 일단 삽화나 책 디자인도 그러려니 와 이번 『십이국기』 시리즈는 온전히 소장용이라는 느낌을 많이 주는 편입니다. 구판에선 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편도 상하의 두 권으로 나누어졌던 데 반해 이번 번역본은 책이 좀 두꺼워지긴 했지만 단권으로 나와 읽기에도 수월해진 감이 있어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올 때 한 권이라 들고 오기도 편한 게 있었고요. 다만 이름의 번역은 구판보다 통일성이 느껴지지만 현 표기법 체계 때문인지 애니메이션으로 접했을 때와 이름의 표기가 다른데 예를 들면 타이키는 다이키로, 케이키는 게이키로, 요우카는 요카, 교소우는 교소로 번역되어 조금 낯선 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표기법이 이러하니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것 같고요. 아마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소설 버전으로 먼저 접했더라면 이런 낯설음도 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번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편만 본다면 정말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이건만 『십이국기』 시리즈를 이미 다 읽은 입장에선 이 대국의 이야기가 얼마나 비극으로 흘러갔는지를 떠올리게 되어 더 안타까운 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종종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후반 ‘황혼의 물가’ 편에 언급될 암울한 전개가 어느 정도 이번 편에서 복선이 깔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예를 들어 타이키의 힘은 독특한 흑기린이며 힘이 지나치게 강하지만 그것을 아직 제대로 쓸 줄 모르기에 타이키 본인을 비롯하여 주위의 사람들 태왕 교소우를 비롯하여 봉산의 여선과 케이키 등이 불안을 느끼는 부분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거나. 특히 천계를 인식하여 타이키가 교소우를 왕으로 인정한 뒤에 비록 착각이긴 했지만 ‘자신은 죄를 지었다’고 의식한 나머지 죄책감을 느끼고 교소우를 왕으로 만들었으니 대국이 어떻게 될지 불안을 느끼는 장면 등이 언급되는데 이런 장면들이 다음 시리즈인 ‘황혼의 물가’와 연결해서 본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해지는 부분이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읽으면서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 이 『십이국기』 세계관의 설정은 상당히 촘촘한 편이긴 하나 아직 확실하게 암시된 부분은 없어 추측으로만 그쳐야 되는 부분 역시 존재합니다. 그런 단적인 부분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마의 설정인데 케이키가 타이키에게 요마를 사령으로 거두는 절복을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 이 요마는 천제가 만든 섭리 바깥의 존재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즉 『십이국기』 세계 자체가 천제가 만든 질서가 잡힌 세상이라면 요마는 그 천제의 뜻을 방해하는 존재라는 건데, 『십이국기』 세계가 인간이든 생물이든 난과라는 나무의 열매로 열리는 것과 달리 요마는 그 출생이 어떠한지 언급된 적도 없으며 그 정체는 불명이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작가가 아직 요마에 대한 뚜렷한 설정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속 하나의 장치로 쓰기 위해 설정을 숨긴 것인지 궁금한데 종종 요마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시리즈가 나왔을 때 이 요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줘도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요마는 『십이국기』 세계관 내의 괴담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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