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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리뷰

by 0I사금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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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은 예전에 리뷰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과 같은 저자의 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서 집의 사회성을 알기 쉽게 담아 풀었다면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은 고전 건물의 건축방식과 그 사회적인 의미, 역사적인 흐름과 당대의 문헌이 기록하고 있는 건축물에 관해서 상세하게 풀어나갑니다. 단순하게 읽는 정도로만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 재미가 있고 이해하기도 수월한 편인데 반면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은 조금 내용이 어렵더라고요. 그 이유는 책이 어렵게 쓰여 있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된 자료들이 많기 때문으로 우리가 몰랐던 고전건축의 재료, 방법, 입지, 의미에 대해서 당대의 기록들을 참고로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거든요.


책은 크게 일곱 단원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원은 우리나라 고전건축물에서 어떤 문(門)이 쓰이고 이 문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두 번째 단원에서는 고전건축물에서 사랑채와 안채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의미를 담게 되었는지를, 세 번째 단원에서는 홉집과 겹집의 차이점과 건물 구조의 변화를, 네 번째 단원에서는 조선시대 늘어난 상가건물들의 특징과 그 건물들이 나타난 역사적인 배경을, 다섯 번째 단원은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였던 수원 화성의 역사성을, 여섯 번째 단원은 조선후기 사회적 흐름 속에 탄생한 씨족마을의 유래와 현재의 아파트 단지의 유사성을, 마지막 단원은 풍수지리, 온돌, 기와 등 조선 후기 유행했던 건축의 풍조와 그 장단점을 당시 실학자 북학파의 기록들을 토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의 저자들은 서유구와 박제가예요.


이 책은 단순하게 우리 조상들이 어떤 집에서 살아왔는지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그런 집에서 살게 되었고 왜 그런 건물들이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이해가 빠릅니다. 책에 따르면 건축구조물의 변화는 대개 편의를 위한 용도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에 부유층의 과시와 신분제의 붕괴, 자본주의의 싹이 싹트던 시대적인 흐름과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책의 맺는말에 저자가 덧붙이듯 흔히 고전건축을 다루는 다른 책들은 기행답사와 사진으로만 기록이 되어 있어 피상적으로만 건축에 대한 정보를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대개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 살았다는 글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크지만 실제로 인간의 본능은 시대와는 무관하게 비슷하며 지혜와는 크게 상관없이 당시의 환경과 상황에 의해 집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시대가 가장 위태롭고 어리석으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건축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 합니다. 이 책에서 특히 재미나게 읽은 부분은 조선후기 등장한 씨족마을과 아파트 단지의 유사성입니다. 조선후기 토지부족문제와 신분제의 변동으로 양반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씨족마을이며 이 씨족마을은 대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쉬운 곳에 성립되며 지역사회의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씨족마을의 은닉성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단지와 유사성이 있다고 설명되지요. 하지만 씨족마을 특유의 폐쇄성은 법치보다 지역의 규율에 그 사회가 유지되고 그것은 때때로 지역민에 대한 폭력적인 통제를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는 현재의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보이는 아파트값 담합과 같은 이기주의적 행태나 고급아파트라는 이유로 개인의 생활방식을 단속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에서 보여지는 뚜렷한 계층 차도 사회의 문제가 되기도 하겠고요. 저희 같은 소시민들이야 그 편의성 때문에라도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왠지 이 분 책을 읽고 나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외에도 외국의 건축 사례와 시대적 특징을 잘 잡는 소설, 당대의 일화 등을 인용하여 당시의 풍조를 살피는 것도 이 책의 재미난 부분이고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집의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서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든 사람이 사는 모습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인데요. 전혀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지나친 과거회귀나 환상을 깰 필요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우리에겐 과거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당연하게도 그것은 현실이었고 조만간 우리가 살고 있는 고만고만한 집도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의미를 담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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