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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악령의 방』 리뷰

by 0I사금 202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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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방』은 검색해 보니 책의 표지 이미지도 찾기 어렵고 그저 작가 이름이 '존 솔'이라는 정도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대강 픽사베이에서 분위기가 유사한 느낌이 나는 것을 고른 편이고요.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오래전으로 중학생 시절 무렵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누가 읽다 말았는지 내버려 두고 간 것을 우연히 보고 읽다가 결국 상권과 하권을 둘 다 완독하게 된 것인데요. 등장인물 이름은 잊었지만 책의 제목이 『악령의 방』이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 책이 떠올랐냐 하면, 추억의 만화를 찾아보다가 '굴뚝청소부' 소년이 주인공인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의 배경이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대란 걸 알았거든요. 이 만화에 대해 찾아보다가 제가 읽은 『악령의 방』도 그런 소재를 끌고 온 소설이라는 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럼풋하게나마 기억하는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습니다. 한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의 유지가 있는데 그 유지가 소유한 폐건물은 불길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어떤 겁 없는 어린아이가 그곳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 주요한 존재가 어린아이들로 너무 오래전에 본 소설이라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났었지만, 다른 분이 댓글로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중심인물인 소녀의 이름은 베스 로저스라고 하더군요. 베스는 아버지가 목수였고 아버지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딸을 데리고 마을의 유지와 결혼하게 되는데요. 이 마을의 유지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베스와 동갑인 친딸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의 어머니와 딸은 당연히 베스와 그 모친을 경계하고 괴롭힙니다. 이 마을 유지의 어머니는 냉혈한인데다가 딸내미는 사이코패스 같은 녀석이라 베스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자기 말을 독살하는 짓까지 벌입니다. 그리고 막판엔 베스를 살해하기까지 하고요. 물론 베스도 처음엔 나름 고집과 강단이 있어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집안에서 소외되면서 외로움을 느낀 베스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지내다가 폐건물 가까이에서 그 건물에 머무는 어린아이 유령인 '에이미'와 친해지게 됩니다.  에이미의 유령과 친해지게 된 베스는 외로움을 덜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친부가 양아버지인 마을 유지의 부탁을 받고 악령이 깃들었다고 알려진 그 폐건물을 재건축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악령들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베스는 큰 쇼크를 받게 되고요.

 

이 와중에 마을 유지의 어머니는 베스를 내쫓겠다고 발광하다가 악령들에 의해 죽음을 맞고 와중에 사이코패스 손녀는 죽어가는 할머니더러 자기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외면하지요. 그리고 서서히 악령들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 악령들은 다름 아니라 그 마을 유지 선생과 마을의 고위층 인간들의 증조내지 고조 정도의 선조들이 과거 방직공장을 운영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죽게 만든 어린아이들의 유령이었습니다. 그 아이들 중 에이미란 소녀는 공장주의 사생아였고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사촌동생과 탈출하려다 화마에 휩쓸려 죽게 되었다는 게 과거의 진실. 어쨌거나 친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베스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어른들이 그런 아이를 가엾어하자 시기심을 느낀 마을 유지의 딸은 폐건물로 베스를 끌어내 그를 칼로 찌릅니다.


이런 걸 보면 사이코패스는 떡잎 때부터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때 마침 폐건물에 깃든 악령들이 화재를 일으켜 그 사이코패스를 태워죽이고 끝내 건물도 불타서 없어지게 됩니다. 이후 마을의 유지와 그 부인은 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불탄 터 위에 새 건물을 짓고 살다가 딸을 낳게 되는데요. 하지만 결말은 그 악령들의 원한이 끝내 잠들지 않았음을 암시하면서 일말의 찜찜함을 남긴 채 소설의 막이 내립니다. 아마도 죄짓고 사는 인간들이 발 뻗고 자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은  같았달까요. 중학교 때는 그저 재밌는 공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굉장히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착취하고 타 죽게 만든 인간들이 몇 대가 지나서도 떵떵거리면 사는 꼴이라니... 

 

베스의 아버지는 애먼 희생자이긴 했지만 그 죽음은 금기를 어긴 것과 같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고, 악령들의 표적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일가들의 후예였던 점을 보면 인과응보에 가까운 구조였다고 보이네요. 줄거리를 이렇게 쓰니 비극적으로 죽은 존재들이 유령이 되어 원수의 후예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라 굉장히 한국의 원귀 설화와 유사한 느낌도 납니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 어린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최초로 접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정말 이 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거 같더군요. 책을 발견했을 당시엔 제목이나 작가 이름이나 출판사 등을 메모하는 버릇이 없어서 책에 대한 정보는 제가 기억하는 것 외엔 없었습니다. 참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다시 구할 수 없는 책이라 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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