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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리뷰

by 0I사금 202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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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공포 소설 취향이 다른 서적을 고르는데도 영향을 끼쳐 빌려본 책들이 대개 인간이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책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덕택에 생각지도 못하게 역사 쪽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발견한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은 제목만 보더라도 과거의 드라마 『엑스파일』과 『별순검』이 떠오르는 제목입니다. 책에서도 설명이 나오겠지만 이 책은 드라마와 큰 관계가 있는데 실은 『별순검』은 방영 당시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해 두세 편 정도밖에 보지 못한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추천대로라면 당시 수사방식을 잘 고증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더군요. 전 드라마를 많이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당시 도서관에 있던 소설 『'조선 과학 수사대 - 별순검[여설하 저]』을 대신 읽은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진진했거든요. 

하여튼 저의 취향 탓에 빌려보게 된 책들 중에 인상적인 것이 『미궁에 빠진 조선 -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유승희 저]』와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이수광 저]』와 『조선 기담 -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이한 저]』 그리고 『조선이 버린 여인들[손경희 저]』 등입니다.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은 권수인데 조선시대의 기담이나 야사, 특수한 민간 이야기들일 경우 기록된 자료는 많지만 아직 조사가 활발하지 않아 많은 자료가 묵히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습니다.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제가 읽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설명한다면 일단 『조선 과학 수사대 별순검』인 경우는 조선 말기 실존했던 수사관직인 '별순검'을 맡은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실존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했을 거라고 추측 가능한 미궁의 살인사건들을 해결하는 시대극 형식의 범죄 수사물, 내지 추리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조선전반에 기록된 사건들 중 그 사건의 중심에 놓인 여성을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서 설명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범죄를 다룬 책들을 보면 당시 조선의 사회상과 그 시대적 한계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이 책은 그런 경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지요. 『조선기담』은 인신매매와 같은 으스스한 범죄 이야기와 왕실에서 일어난 화재사건과 같은 각종 사건 등을 풀어쓴 이야기로 그 분위기가 다른 책들보다 좀 밝은 편이었습니다. 반면 '미궁에 빠진 조선'이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원한, 치정, 금전, 명예 등 다양한 이유로 일어난 살인 사건들을 풀어쓴 이야기인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 담고 있는 의미가 무겁고 무서울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읽으면서 당시 조선의 시대상으로 인한 답답함만이 아니라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현재에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밀려오거든요. 

물론 책들이 당시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 사회의 한계상을 담아내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란 사회가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흔히 사극 드라마에서 오버랩되는 고문씬 때문에 오해를 받기 마련이지만 당시 조선은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했으며 그와 관련된 법률과 수사원칙 등을 체계적으로 성립한 얼마 안되는 국가였거든요. 당연히 거기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합니다만 현대 과학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재단하는 것도 오만한 짓이라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같은 경우 조선시대의 수사관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 사건을 해결했으며 당시 사람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지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그 사건의 실마리와 범죄의 동기, 범죄를 어떤 식으로 처벌하여 마무리지었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나와 있다면, 이번에 읽은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은 별순검과 같은 수사관들이 어떤 방법으로 증거를 포착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는 지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종종 겹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이 참고한 서적 중에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은 책 전반에 별순검, 다모, 의녀 등 실존했던 관직들에 대한 개념 설명과 그 탄생계기를, 그리고 조선 시대의 법률 기관을 비롯하여 당대의 과학수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증거물과 시신을 다루는 상당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 후반엔 조선시대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짤막하게 설명해주며 당시 조선의 윤리관과 사회상, 그리고 그 한계점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의 법전과 형벌제도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내용을 마무리짓습니다. 이 책에서는 기존에 읽었던 조선시대 범죄 기록을 다룬 책들보다 더 전문적인 설명이 나오지요. 자세한 설명이지만 중간중간에 생략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기록을  좀 더 파고들면 상당한 양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지요. 또 이런 책들이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새로운 장르로 등장한 유명 사극들 『별순검』이나 『다모』,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들이 공을 세운 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아마 사극들이 계속 왕실 위주의 이야기만을 다루었다면 왕실 밖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죠. 이건 생각보다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합니다. 

이 책에서 열거된 다양한 사건들을 보면 당시 조선도 현재와 다를 바 없었던 공간으로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무능한 관리가 사건을 대충 수사하여 다시 조사한다든가, 범인이 높은 신분이고 피해자가 낮은 신분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 등 답답한 면모도 보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합리적이면서 인본주의에 가깝게 사건을 해결하는 면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늘상 생각하듯 조선의 사회가 그렇게 경직되고 비합리성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할까요. 이건 조선시대가 상당한 관리주의 사회였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밝히는 것도 상당히 좋은 연구이며 좀 더 많은 책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위에 열거한 책과 이번의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정약용'의 이름인데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정약용은 당시 과학수사 교본이었던 『증수무원록』을 토대로 『흠흠신서』를 썼고 실제로도 많은 사건을 해결한 유능한 수사관이었습니다. 한때 케이블 채널에서 수사관으로써의 정약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 책에 등장한 사건들 중 흠흠신서에 기록된 특이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은 바로 불륜 커플의 자연연소입니다. 자연연소란 사건 자체가 현재의 관점으로 미스터리이고 여러 가지 가능성 높은 추측이 있는데 흠흠신서에는 현재의 분석과 가까운 자세한 분석이 등장하여 그것이 상당히 놀라운 안목이라는 것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유능한 사람은 뭔가 다르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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