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인스 : 마야의 저주』의 원작 소설은 '스콧 스미스'라는 작가의 작품 『폐허』입니다. 원작부터 마야의 기묘한 유적지가 작품의 배경인 것은 같으나 영화의 부제인 '마야의 저주'는 영화에만 붙었거나 아니면 번역과정에서 붙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먼저 원작소설을 접하고 영화화된 것을 알았을 때 한 번쯤 영화는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후 TV에서 방영을 해 준덕에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니, 영화가 원작의 설정과 흐름을 따라가더라도 세부적인 데에서 많이 다른 점을 알게 되었는데요. 영화의 초반 부분은 약간 놓쳤지만은 미국인 대학생 커플 두쌍과 여행 중에 만난 독일인 동료가 식인식물들이 우글대는 유적지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 원주민들에게 살해위협을 받고 결국 유적지의 맨 위로 피신하는 것은 원작과 동일합니다.
일단 소설 상에선 남녀주인공 커플들이 그리스인 여행가들과 독일인 여행가와 만나, 독일인의 남동생이 그와 다툰 뒤 다른 여행가들과 마야 유적지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동생을 찾아주고 자신들도 유적지를 구경할 겸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영화의 큰 흐름도 이와 비슷하며 유적지 위에서 식인식물들의 위협과 유적지 아래에는 원주민들의 위협 속에 내분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동일합니다. 영화의 분량이 좀 짧은 데 반해 소설의 두께는 제법 묵직한데 등장인물 개개인의 심리를 잘 묘사해준 덕택에 당시 책을 읽었을 때 몸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컨디션이 나빴던 덕택에 감정이입이 배가 되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고립된 주인공들은 처음 원주민들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내려가지 못하다가 진짜 위험한 것은 원주민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싼 무수한 식물덩굴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소설 상에서 다리를 다친 그리스인 동료의 하반신을 식물줄기들이 끌고가려고 꽁꽁 감싸버린 장면이 읽으면서도 제일 충격적이었는데요. 영화나 소설이나 다친 사람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영화는 한층 더 표현이 과격해져 돌로 뼈를 부수고 칼로 자르고 달군 프라이팬으로 상처부위 지지는 등 보기에도 끔찍한 다리 절단씬까지 삽입되어 있더군요. 영화상에선 다리를 다치는 인물이 그리스인이 아니라 독일인 동료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 그리스인 동료들은 사건이 끝나고 주인공 일행을 찾아 유적을 찾아오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게 영화상에서 식물들이 식인식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그 식물들을 헤치고 나갈 생각을 포기한 주인공 일행은 넋없이 구조를 기다리게 되는데요.
유적지 위에서 식량, 특히 물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며, 소설 상에선 갈증이 특히 큰 문제로 다가옵니다. 이것 때문에 리더 격인 대학생 제프는 소변을 모을 생각도 하다 일행의 반발을 사기도 하지요. 원작인 소설에서 비중을 대부분 차지하는 내용은 인간들 서로 간의 불신과 불안인데 영화 상에서는 이런 세부적인 묘사는 무리였던지 이런 식수와 식량 고갈로 인한 갈등과 절망은 줄인 대신 식인식물들이 파고드는 고통에 대한 묘사가 더 큰 편입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스테이시인데 상처 속으로 식물이 파고 들면서 후반 내내 고통스러워하고 자해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원작소설과 차이가 있는데, 소설에서 식물줄기가 몸을 파고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스테이시가 아니라 스테이시의 남자친구이며, 스테이시 같은 경우는 그나마 일행 중 낙천적인 타입이라 가장 오래 생존하게 됩니다. 뭐 그래도 원작소설 결말에선 혼자서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손목을 그어 자살합니다만...
영화 상에서는 스테이시의 자해를 막다가 폭주한 그의 손에 남자친구가 찔려죽게 되는데, 소설 상에선 남자친구의 자해를 막다가 몸싸움으로 번진 끝에 독일인 동료가 칼에 찔려 두 남성이 다 같이 식물들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반면 영화상에서 오래 살아남는 커플인 제프와 에이미 같은 경우는 소설상에선 오히려 일행들보다 먼저 식물들 손에 살해당하는데, 에이미 같은 경우는 친구들 몰래 물을 훔쳐 마시다가 그 속에 들어있는 식물 줄기에 감염되어 갑작스레 질식사하고 말지요. 이 식물줄기에 의한 질식사 표현은 영화상에선 다친 독일인 동료의 죽음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리더역할을 해온 제프는 영화상에서 에이미를 구하기 위해 원주민들의 시선을 끌다가 살해당합니다. 이 부분은 원작을 본 지 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소설에선 망을 보던 사이 원주민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오더라고요.
영화에서 에이미 혼자 만이 남자 친구의 희생으로 도주하기 때문에, 혹시 반전이 있을까 했는데 마무리는 지프를 타고 무한 질주하면서 도망치는 열린 결말인데 영화 중반에 음식을 좀 섭취하는 장면도 있고 이미 식물줄기에 얼굴이 감염된 상태로 도망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결말이라면 식인식물은 인간들이 막아둔 곳에 외에도 퍼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탈출 전에 왜 피를 에이미 온몸에 치덕치덕 바르나 싶었는데 시체로 위장하기 위해서였고요. 엔딩은 원작과 영화가 동일한데 주인공 일행이 처참한 꼴을 당한 걸 모르던 다른 그리스인 여행가 동료들이 유적지로 찾아오는 결말입니다. 다만 원작에선 거기에 플러스되어 따로 알게 된 다른 여행가들까지 끌어들여 같이 찾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참으로 공포물다운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는 그래도 약간의 희망이라도 남겨주려고 에이미를 탈출시키는 것을 성공시킵니다만, 소설 상에선 정말이지 꿈도 희망도 없기 때문에 저 결말까지 간다면 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도 나긴 해요. 그리고 살아움직이는 거대한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점 때문에 불로 태워서 도망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법도 한데, 이 식인식물들이 의외로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영화나 소설 상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거의 인간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는 것이 주목할 점입니다. 식량 속에 몰래 숨어 들어가거나 사람이 잠을 잘 때 습격하며 빈틈을 노리는 모습, 또 사람의 목소리와 휴대폰 벨소리까지 흉내 내며 사람의 맘을 약하게 만드는 점, 그리고 여자주인공들을 끌고 가려고 했을 때 보여준 괴력을 본다면 사람이 불을 휘두른다 해도 금세 제압이 가능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가능합니다.
게다가 사람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존재다보니 의학적 지식이 있어 적출하는 수술을 하더라도 어떻게 상대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수술실이라면 모를까 바깥에선 과다출혈이나 감염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애초에 그 지역 원주민들이 유적지를 눈에 안띄게 막아놓은 이유부터 유적지의 식물들을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여러 차례 위협과 경고를 먹였음에도 막아놓은 출구를 기어이 뚫고 들어간 것은 주인공 일행이라는 게 특징입니다. 이건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에 흔하게 등장하는 공통적인 클리셰겠지만은 이 영화에서도 공포의 시작은 결국 주인공들의 고집으로 인해 벌어졌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사람들이 가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가지 않는 게 좋은 때가 많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와 개구리』 리뷰 (0) | 2025.02.04 |
---|---|
『트랜스포머』 리뷰 (0) | 2025.02.03 |
『불신지옥』 리뷰 (0) | 2025.02.01 |
『크롤』 리뷰 (0) | 2025.01.31 |
『기기괴괴 성형수』 리뷰 (0) | 2025.01.30 |